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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Jan 16. 2018

클릭 소리

편린 03

매일 아침이면 창문을 열고 환기시킨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창문을 열어두고 청소를 해야 기분이 풀린다. 아침에 운동하고 돌아오면 대부분의 이웃들은 출근한 시간이다.  창문을 열고 청소를 하며 세탁기를 돌리거나 냄새 요란한 음식을 해도 혹시 옆집이나 아랫집에 시끄러울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창문을 열고 집안을 둘러보면 먼지와 머리카락이 눈에 잘 띈다.  처음엔 살림 늘리는 게  싫어 사지 않으려던 청소기를 결국 사게 된 것도 그 이유다.
 
청소기를 산 것은 두 달쯤 전이다. 작은 모델이지만 모터가 좋아 구석구석 먼지까지 빨아들였다. 그 쾌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매일  청소기를 사용했다. 사용한 지 사흘 후에 청소기를 분해했다. 안에 든 쓰레기를 버리고 닦아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상하게도 다시 조립이 안된다. 처음 배달되었을 때에도 조립이 완전히 된 상태였다. 분해한 후 잃어버린 부품이 없다. 그런데도 청소기의 몸체와 모터가 연결되지 않았다. 몇 시간을 씨름했다. 유튜브도 찾아보고 회사에 전화도 해 보았다.  마땅히 그 이유를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청소기 재조립을 포기했다.  사용하지 못한 지 두 달이나 지났다.

청소를 할 때마다 청소기에 눈길이 갔다. 저 녀석만 있으면 쉽게 할 청소를 빗자루로 쓸어내고 다시 닦아 내려니 시간 낭비처럼 느껴진 탓이다. 몇 번이나 다시 조립해보려다 실패하고 다시 구석에 세워둔 청소기가 나를 자꾸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얘, 미안해. 그래도  어쩌니? 내가 조립을 못하겠어."
눈길이 갈 때마다 나는 청소기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두 달이나 청소기 없이 살다가 전자제품 대리점에 들른 것은 어제였다. 대체할 만한 청소기를 둘러보기는 했지만, 집에 오도카니 서 있을 그 녀석이 자꾸 눈 앞에 어른거렸다.  대리점 직원분께 집에 있는 청소기 이야기를 했다. 속으로는 당신이라고 특별한 해결책이 있으실까 하면서도 말이다.

"청소기 조립은 굉장히 쉽습니다."
직원분은 지나가듯 말씀하셨다.
"진 집기 통을 잘 닫고 - 보통 '클릭' 소리가 나야 닫힌 겁니다. 완전히 끝까지 돌려야 돼요. 그다음에 모터랑 진집통 부분을 연결하면 쉬울 겁니다."

'클릭 소리'라... 그 말이 괜스레 마음에 걸렸다. 집으로 오자 마자 청소기를 들여다본다. 과연 진집통 뚜껑 부분에 '완전히 돌려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심지어 '여기까지, 홈에 맞춰질 때까지 돌려주세요.'라는 문구도 이제야 보였다. 반쯤 돌려진 뚜껑을 그 끝 부분까지 돌려봤다. 그런데 '클릭' 하며 뭔가가 맞물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작은 클릭 소리가 얼마나 청아하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진 집기가 두 달 동안 연결되지 않던 모터와 부드럽게 연결도 된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두 달 동안 고민스럽던 '청소기'가, 그 작은 '클릭' 소리 하나 되찾는 것만으로 마침내 제 노릇을 하게 된 순간이었다.
 
'성공 바로 2초 전'이라는 문구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성공하기 위해, 2초만 더 기다리면 될 텐데 사람들은 그 순간을 기다리지 못해서 성공을  마주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2초라면 숨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쉬는 시간이다. 머리 한 번 쓸어 넘기는 짧은 순간이다. 그 짧은 순간, '클릭' 소리가 날 때까지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모터와 집진기가 연결되지 못한 청소기처럼, 우리는 성공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오늘 아침에도 청소기를 켠다. 구석구석, 커튼 아래와 침대 밑, 책상 밑, 그리고 작은 틈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청소기가 청소기 구실을 하는 아침, 창문을 열고  깨끗한 공기로 환기시키는 아침,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온 아침이다. 어떤 일이든 '클릭' 소리가 날 때까지 뚜껑을 돌리는 뒷심이 필요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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