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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Oct 06. 2019

칠면조 구이의 기억

열 두번째 이야기



그 해에는 눈이 일찍부터 내렸다. 아주 오래전, 내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맞는 추수감사절이었다. 매년 11월 셋째 주 일요일이 추수감사절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나름대로 스케줄을 정해 지내고 있었는데 매주 수요일 퇴근 후에는 집 앞 슈퍼에 들러 장을 보았다. 식료품 대부분은 근처 한인 마켓에서 조달했고 집 앞 슈퍼에서는 생필품을 샀다. 조금씩 아껴 쓰려 노력했는데도 1년 동안 같은 슈퍼에 다닌 덕분에 포인트가 꽤 쌓인 모양이었다. 추수감사절 일주일 전쯤이던가, 그동안 얼굴을 익혀뒀던 캐셔 아주머니가 내가 모아둔 포인트와 생칠면조 한 마리를 바꿀 수 있다고 귀띔해 주셨다. 생칠면조로 추수감사절 명절을 지낼 칠면조 구이를 해먹어보라고 덧붙이셨다.  그때까지 칠면조를 먹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귀가 번쩍 띄었다. 어떤 맛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일단 공짜로 뭔가를 준다니 솔깃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포인트를 차감하고 받은 터키가 자그마치 10 파운드나 되었기 때문이다. 10 파운드면 4.5 킬로그램이다. 말 그대로 엄청난 무게였다.

“이 터키보다 작은 것은 없나요?”

난감해 하는 나를 보더니 캐셔 아주머니는

“오븐에다 구워서 먹고 나서 남으면 수프로 만들어 먹으면 돼요. 걱정 말고 가져가세요.”

했다. 그녀의 말에 결국 그 큰 칠면조를 받아 오고 말았다.

칠면조는 비닐봉지에 압축 진공 포장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진공 압축 포장을 열었더니 작게 움츠려 있던 칠면조의 포동포동한 살들이 포장 밖으로 튀어나왔다. 진공 포장에 담겨 있을 때 보다 두 배는 더 커진 칠면조는 집에서 쓰던 도마 안에도 다 담기지 않을 만큼 컸다.


그때 나는동부의 작은 도시에서 방 하나 짜리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는데 옵션으로 달려있던 냉장고와 오븐 모두 아주 작은 것들이었다. 갓 직장을 잡았던 터라 열심히 저축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살림이라고는 모두가 딱 있어야 할 것들뿐이었다. 칠면조 요리 방법을 찾아보니 칠면조 뱃속에 여러 가지 시즈닝을 채워 넣은 후 오븐에서 열 시간 이상 시간 구우라고 한다. 그러자니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1. 10 파운드짜리 터키를 담아 구울 만큼 큰 오븐용 그릇이 없었다.

2. 터키를 굽기 위해 열몇 시간 오븐을 켜두려면 가스비가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아 주저되었다.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며 도마 위에 누워있는 칠면조가 애물단지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공짜였어도 받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차라리 슈퍼마켓에 다시 가져다줄까 고민도 했지만 어떻게든 칠면조 요리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일단 물에 씻어 토막을 냈다. 커다랗던 칠면조 한 마리는 다리 두 개, 날개 두 개, 몸통 몇 조각으로 나뉘었다. 다리 두 개만 오븐에 굽기로 하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어렵게 완성한 칠면조 다리 구이는 내가 뭘 잘못 했는지 영 맛이 없었다. 한 입도 먹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을 정도다. 결국 냉동실에 남겨둔 칠면조 조각들을 다시 요리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갔다.


어느 날 마주친 이웃 할아버지께 냉동실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칠면조 이야기를 꺼냈었다.

“내가 맛있는 요리를 해줄 테니 가져와 봐요.”

의외로 흔쾌히 칠면조를 떠맡아 주신 할아버지는 그 다음날 내가 만들었던 칠면조 다리 구이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맛있는 칠면조 수프를 만들어 주셨다.



냉동고를 가득 채웠던 칠면조 고기를 이웃집 할아버지께 갖다 드렸을 때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했다. 이웃들에게는 맛 좋은 명절 음식 재료였을 오동통한 칠면조가 나에게는 하로동선 [夏爐冬扇] : 여름의 난로, 겨울의 부채) 일뿐이었다.


미국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어떤 레스토랑에서는 추수감사절이 대목에 칠면조 구이를 1-2 인분씩 포장해서 파는 것도 알게 되었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근처 레스토랑에 들러 칠면조 구이를 1 인분만 사 와서 소스에 찍어 먹는 맛도 알게 되었다.


그해에는 눈이 많이 내렸고 작은 아파트는 추웠지만 한겨울을 충분히 지낼 만큼 편안했다. 이웃 할아버지, 톰 아저씨는 나와 가끔 마주칠 때마다 칠면조 이야기를 꺼내며 웃고는 하셨다.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나는 다시 모든 일에 서툴고 어리벙벙하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식과 놀랍게 발전한 소프트웨어 기술에 적응하느라 한참 걸렸다. 이제야 조금씩 한국이 익숙해지는, 뜨거운 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지는 요즘 같은 날에는 문득, 내가 만들었지만 맛이 너무 없었던 칠면조 다리 구이가 떠오른다. 갑자기 추워졌던 어느 해 추수감사절에 먹었던 내 생애 최악의 명절 음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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