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배우기

두 번째 수업; 발을 땅에서 뗐다.

by 영인

평소에는 불면증이 있나 싶을 만큼 잠을 깊이 못 자는 편인데 자전거를 타고 와서인지 아주 깊이 잠들었던 모양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머리가 상쾌하다. 처음 자전거를 탄 것 치고는 몸도 가볍다. 허리와 엉덩이가 약간 뻐근한 것을 빼면 평소보다 컨디션이 더 좋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도 수업은 오전 10시, 녹천교 옆 자전거 대여소 앞에서 모인다. 어제처럼 아침밥을 두둑이 챙겨 먹고 집을 나섰다.





녹천교로 가는 길에는 가을이 한창이다. 근처 아파트마다 감나무와 배나무를 심어둔 덕분에 감과 배가 주렁주렁 열렸다. 길가에는 들국화와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물빛 푸른 하늘에 어울려 그림 속에 들어온 기분. 풍성하다, 충분하다, 풍부하다 같은 형용사가 어울리는 아침이다. 어제 와본 길이라 익숙하게 걸어 녹천교 앞에 도착하니 나보다 먼저 오신 분들이 이미 자전거를 끌고 가는 중이었다. 나도 얼른 그 대열에 합류한다.




다리 아래 중랑천 가에는 자전거 도로가 뻗어있다. 곳곳에 공터가 있고 운동하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이 배치되어 아침에도 자전거 타는 분들이 꽤 많다. 우리는 어제처럼 세 줄로 자전거를 세웠다. 강사님의 구령에 맞춰 자전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연습을 시작한다. 어제 해봤다고 오늘은 쉽게 느껴진다. 어제보다 빨리 움직여 보기도 하고 혼자 구령을 맞춰 보기도 한다. ‘노원구’라고 적힌 형광색 조끼를 입고 연습용 자전거에 올라타 있으려니 마치 내가 ‘노란색 형광펜’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라. 40여 명이 형광색 옷을 입고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있는 장면을.



신기한 것이라도 보는 듯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분들이 힐끔 거리는 걸 보면 주위 시선은 확실히 끌고 있었다. 원래 수줍음이 많은 편이라 처음에는 눈을 둘 데가 없어 곤란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자전거를 잘 못 타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틀째가 되니 그나마 면역이 생겼는지 어느새 자전거 타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자전거에 오르고 내리는 연습에 거치대에 세워둔 덕분에 절대 넘어질 일이 없는 자전거를 한 시간 타다 보니 슬슬 지루해질 때쯤이었다. 강사님께서

“지금부터 중심잡기를 하겠다” 고 하셨다. 중심잡기가 뭔지는 모르지만 ‘거치대에 세워둔 자전거’를 타는 건 아닌 듯하다. 순간 다들 긴장했다.

“어머, 정말 타나 봐요.”

“큰일이네, 넘어지면 어떻게 하지요?”

“무서워.”

한동안 수런거리던 우리는 강사님을 따라 구석으로 이동했다. 드디어 움직이는 자전거 위에 탈거라는 생각이 들자 긴장이 된다. 자전거를 끌고 갈 때 양 손으로 핸들을 잡고 15도 기울여 간다는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어떻게 갔는지 모른다.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한 줄로 서서 ‘중심 잡기’를 배우게 되었다.

“중심잡기는 자전거를 출발시킬 때 페달로 굴리는 대신 발로 굴려 움직이기 시작하면 핸들을 좌우로 움직여 넘어지지 않도록 조종하는 연습을 말합니다.”

강사님의 설명을 듣고 한 명씩 출발했다. 드디어 발을 땅에서 떼고 양손으로 핸들을 좌우로 조종하며 앞으로 나간다. 처음에는 넘어질 것 같아 자꾸만 발로 땅을 짚었다. 나도 모르게 ‘아, 무서워’ 비명이 나온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졌다.

“비명을 지른다고 자전거가 멈추지 않아요. 핸들을 자꾸 움직여야 안 넘어지는 거예요.”

강사님은 큰 소리로 우리를 독려하셨다.

‘중심 잡기’를 여러 번 하다 보니 그것도 요령이 생기는 듯하다. 핸들을 자꾸만 움직이면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전거가 앞으로 간다. 그리고 놀랍게도 넘어지지 않는다.

달리는 기분도 아까보다 무섭지 않다. 조금씩이지만 자전거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되는 기분이라니. 이렇게 하다 보면 정말 자전거를 혼자서도 탈 수 있을까?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오는 것일까?


중심잡기를 배운 오늘은 자전거 끌기가 쉽게 느껴진다. 이러다 어느날 자전거와 내가 한몸이라도 된듯 씽씽 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 삶에서 불가능하다고 느꼈던 일들이 '가능'해 질때를 마주할 수 있을까?


- 어땠어? 오늘은.

- 나 자전거 사야겠어. 어떤 자전거가 좋을까?

친구에게 허풍을 쳐본다. 이제 겨우 발을 바닥에서 뗀 주제에, 세상을 날아볼 꿈을 꿔 본다. 언제든 나에게 올 허공을 날 그 순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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