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배우기

세 번째 수업 나, 자전거 탔어.

by 영인

그 전날 비가 많이 왔지만 날씨는 완전히 개어 청명하다. 약간 추워진 날씨에 두꺼운 니트 폴라티를 꺼내 입었다. 아침에 긴장이 되었는지 영 입맛이 없었다. 겨우 커피 한잔 마시고 자전거 교실로 향했다. 저번 수업에 중심잡기를 했으니 오늘은 조금은 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함께 수업하는 40여 명 중 혹시 나 혼자만 못 타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다.

수업은 차분히 시작되었다. 강사님께서 자전거 수신호와 적용받는 도로법에 대해 설명하셨다. 자전거 수신호는 왼손으로 한다. 지금 실력으로 양 손으로 자전거 타기도 버거우니 왼손을 핸들에서 떼고 신호를 보낸다는 게 아직은 무리다. 대신 강사님 말씀대로

“나는 못하더라도 앞사람이 보내는 신호는 알아들어야 안전 운행이 가능합니다.”

를 생각하며 배운다.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은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https://www.koti.re.kr/main/slzs/bcyclTrnsport/bcyclDta/edcDta/edcDta01.jsp




우리는 모두 한 줄로 서서 ‘자전거에 앉아 중심잡기’를 시작했다. 자전거 페달을 사용하지 않고 출발시켜 중심을 잡아보는 연습 방법이다. 이 과정을 잘해야 페달 밟기를 시켜준다고 하셨다.

발을 땅에 딛지 말라고 하셨지만 넘어질 것 같을 때마다 자꾸만 발로 땅을 디디며 중심을 잡을 수밖에 없다. 넘어질까 봐서, 나와 부딪혀 앞사람이 다칠까 봐서, 자전거 컨트롤이 안돼서. 걸어서 겨우 50걸음 되는 거리인데 양 발을 다 땅에서 떼고 자전거만 굴려 50걸음을 못 간다니. 맘속으로는 금세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중간에 자꾸만 발을 디디고 넘어질까 봐 자전거를 멈추고야 만다. 그렇게 세 번쯤 내 차례가 왔는데 갑자기 요령이 생겼다.

어릴 때 수영을 배울 때도 그랬다. 발차기를 배우고 손동작을 배우고 호흡을 배우는데 호흡하는 게 영 안되었다. 숨이 막혀 죽을까 봐 무서워서 그랬던 것 같다. 그때도 수영 코치님이 그러셨다.

“호흡을 음 파 두 번만 해봐. 그 두 번이 잘 되면 호흡은 다 된 거야. 두 번, 두 번, 두 번씩 계속하면 되는 거니까.”

숨이 막혀 죽을까 봐서 두려워하면서도 계속 연습하다 보니 어느 순간 호흡이 가능했다. 결국 자유형, 배영, 평영까지 술술 배울 수 있었다. 접영은 너무 힘들어 못했지만.

피아노도 그랬다. 띵똥 띵똥 음을 찾아가던 기간을 잘 견디면 작은 곡을 칠 수 있었고 그다음에는 조금 더 어려운 곡도 칠 수 있었다. 연습을 아무리 해도 영 나아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때 포기하면 끝이지만 계속 계속 연습할 때면 갑자기 나아질 때가 있었다.

얽힌 매듭이 풀리듯, 안 보이게 막혀 있던 벽이 무너져 뻥 뚫린 세상이 나타나듯.

그 ‘갑자기’가 나에게도 찾아왔다.

양 발을 땅에서 떼고 자전거 위에 앉아서 핸들만을 조종해도 넘어지지 않는 순간이.

‘세상에!’

나는 감탄의 비명을 질렀다. 내 곁에 계시던 강사님께

“저 좀 보세요. 저 안 넘어져요!”

했더니

“너무 흥분하지 말아. 다 할 수 있는 거야.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타야 돼.”

하신다.



그러한 ‘갑자기’를 겪었음에도 확 나아진 것은 아니다. 그다음 몇 번은 다시 넘어질까 봐서 벌벌 떨며 발로 땅을 짚어가며 50걸음을 겨우 가는 상황이 되풀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전거 위에 있는 시간이 확실히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속도에 자꾸 노출되어서인지 달리는 두려움이 점점 사라지고 대신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도라면 할만하겠는데 생각도.

“페달에 발 올리고 굴려봐. 계속 굴려, 계속”

갑자기 내 자전거를 잡아주신 강사님의 구령에 나도 모르게 발을 페달에 올리고 굴러보았다.

음? 자전거가 간다.

아니, 달린다. 그것도 약간 신나게.

다른 분들이 중심잡기 연습하는 곳을 벗어나 뻥 뚫린 트랙으로 달려버렸다. 내 뒤에서 강사님이

“거기서 연습해! 여기는 다시 오지 말고”

하고 소리 지르셨다.




큰일 났다.


둥지에서 고이 자라던 아기새가 어미새에게 떠밀려 날갯짓을 배우는 느낌이 이럴까. 트랙 위를 달리는데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한다. 넘어지려 할 때마다 신기하게도 내 몸이 중심을 잡고 발로 페달을 굴렸다. 생각하고 한 일이 아니다.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처럼 저절로 한 것이었다. 트랙 위에서 아까 오셨던 몇 분과 내 뒤로 도착한 몇 분이 함께 달린다. 모두가 서툰 탓에 사실 달리는 시한폭탄들처럼 언제 넘어질지 모른다. 부딪히는 분들도 있고 혼자 넘어지는 분들도 있다. 나도 몇 번 넘어질 뻔했는데 운 좋게 두어 번 트랙을 돌았다.

‘어떻게 멈추지?’

멈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몸이 정지된 느낌이 든다.

‘강사님이 뭐라고 하셨더라? 오른발은 12시, 왼발은 6시? 그리고 브레이크를 잡으라고...? 언제 잡는 거지?’

생각하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가까스로 자전거를 정지시킬 수 있었다.

수업 2시간이 끝난 것이다.


아, 세상에. 내가 자전거를 타다니.

두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자전거 페달을 굴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당장 동생에게 카톡으로 자랑을 했다.

-나 자전거 탔어!!!!

친구에게도 자랑한다.

-나 자전거 탔어! 트랙 두 바퀴나 돌았어!

-오오, 축하해!

- 천재네.

금세 축하 메시지가 도착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너무 가벼워 하늘로 붕 날아오를 것만 같다. 혼자 있어도 자꾸만 미소가 입에 걸린다. 가만있어보자, 오늘이 며칠이지? 11월 11일 이다.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며, 지체장애인의 날, 보행자의 날이다. 책들이 서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해서 서점의 날이기도 하고 가래떡 데이나 빼빼로 데이로도 유명하다.

1918년 11월 11일 11시에 세계 1차 대전이 종전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서양에서는 11시 11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 2019년 11월 11일은 나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날이다.

자전거를 탈 수 없던 날과 자전거를 탈 수 있었던 날로 나뉘는.

기억해 둬야지. 오늘을.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트랙 위를 달린 날, 자전거를 탈 수 없을 거라고 포기했던 지난날들과 이별하는 날. 새로운 나와 만나는 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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