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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7. 2019

구원을 기다리며

(2)

"그럼  제 대신 여기서 CCTV 모니터 하시겠습니까?”

“네?”

의외의 제안에  눈이 동그래졌다.  

“저는 경찰도 아닌데  해도 되나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용의자들을  계속 확인하고  그들이 뭘 하고 있는지  보고서로  제출하면 됩니다.”

“용의자들이요?”

놀란 얼굴로 묻자 그는  화면을 한 부분씩 짚어가면서 설명했다.

“이 사람은 순대국밥집을 하는 ‘이순단 씨,’  카페 여사장님 남편이면서 가죽공예 장인으로 불리는 ‘김이혁 씨’,  ‘새빛 약국 약사인 안정돈 씨’  이렇게 세 명이 용의자입니다.”

“어머나,  평범하게 보이는 이 사람들이 용의자란 말인가요?”

“네.  하루 종일 이 사람들을 관찰해야 됩니다.  제대로 설명하자면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만 관찰을 하고  수요일부터 목, 금, 토요일에는  보고서를 써요.  한 보고서에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쓸 수 있습니다.”

“전혀 용의자들처럼 보이지 않는데. 어떤 사건에 연루된 분들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묻자  경찰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기밀이라 알려드릴 수가 없어요.  보고서 쓸 겁니까,  안 쓸 겁니까? 싫으면  마시고요.”    

보고서 쓰기라.

원래 글쓰기에는 재능이 없다.  뭔가 생각이 떠올라  글자로 써보려 하면  결과물은 항상  내 생각과 전혀 다른 물건이 되어 나왔다.   도대체  글이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생각을  연결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전혀 다른 것으로 양분시켜 버리는 것 같다.     

“보고서를 잘 못써요.  학교 다닐 때  일기 숙제를 하려면  아침에 깼다  밥 먹고 공부했다.  학교에 다녀왔다.  세줄 이상은 쓴 적이 없어요.”

솔직히 말해놓고  나는 경찰의 눈치를 봤다.  오갈 데 없는 내 입장에서는  이 방에서 며칠이라도 묵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엉망진창인 보고서를  제출할 수는 없다.  그것도  경찰서에 제출하는,  용의자에 대한 보고서라니.   

“문장력은 필요 없어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만 기록하면 되는 거니까요.  보고서를 다 쓰시면  제출하기 전에 저에게 보여주세요.  제가 읽고 제출해도 될지를 결정하겠습니다.”

“네.......”

언뜻  경찰도  보고서 쓰기가 지겨웠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CCTV 모니터란  생각보다  지루한 일임에 틀림없다.  나에게 미루고  잠시 쉬겠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용의자들을 관찰하고  메모 정도만 해두시고  나머지 요일 동안 써서  일요일에 제출하면 됩니다.  질문사항 더 있으십니까?”

“비가 그치면 저는 곧 돌아갈 생각이에요.  일주일을 다 채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공짜로 일해 달라는 건 아닙니다.  보고서 쓰는 동안에는 이 방에서 지내도 되고요,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사례를 드리겠습니다.  아가씨는 지낼 곳이 생기고  저는 덕분에 휴가가 생겼군요.  오랜만에  여자 친구 보러 다녀올 수 있겠어요.  감사하다는 인사는 제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보고서에 대한 걱정은  안 하는 모양으로  경찰은 오히려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그의 얼굴을 마주하니  더 이상 거절할 수 없다.  

“보고서 쓰는 방법은 가르쳐 주시는 거겠지요?” 

확인하듯 묻는 수 밖에는.                             

보고서 쓰는 법




1. CCTV를 통해 용의자의  행동을 관찰한다.


2. 보고서를 작성한다.


3. 용의자의 생각과  감정을 유추해서 적을 수 있다.


4. 보고서 하나는  10장을 넘지 않도록 한다.







경찰은  메모지에 아무렇게나 흘려 적은 것을  건네주었다.   게다가  내가 이 쪽지를 읽고 있는 동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 남았다.   하얗고 조용한 흰색 방 안에서 벽에 붙은 수십 개  모니터 안에서는  용의자들이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들에 대한 보고서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CCTV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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