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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7. 2019

구원을 기다리며

(1)

“이런 일이 다 있네요.”

심지어 경찰도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순대국밥 여사장님이  나를 경찰서에 데려다준 지난밤 이후 나는 경찰서 딱딱한 의자에 앉아 밤을 새웠다.  핸드폰도 없고  지갑도, 신분증도 없는 데다  내 주민등록증을 조회하면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  

“주소가 뭐라고 하셨죠?  다시 한번 말해 보세요.”

경찰은 울먹이는 내가 안쓰러운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묻는다.  

“서울 중앙구 중앙동 중앙 마루길 452요.   마루 아파트 1504동 505 호.”

“그 주소와 사는 분 이름이 맞지 않는다고 나오는군요.  허헛참.”

경찰이 짧게 자른 앞머리를  한 손으로  문지르며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차고 있을 때  책상 위에 놓인  전화가 울렸다.   짧은 통화를 마친 그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 이번 비 때문에 동네 뒷산에서 산사태가 나서  인터넷에  문제가 생겼답니다.  복구작업이 끝나면 해결될 거라고 하는군요.  ” 

“복구작업이  얼마나 걸릴까요?”

내가 물었다.

“지금은 일단 수해를 피하는 데 모든 인력이 집중되어 있어서  복구 작업은 비가 그쳐야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다행히 전화통화는 가능하니까  가족들에게 연락해 보십시오.  경찰서 전화 쓰시면 됩니다.”

내 핸드폰에 전화를 했지만  신호만 갈 뿐  아무도 받지 않는다.

“다른 분들한테도 전화해 보세요.  회사에 전화를 해보시던지.  출근해야 할 사람이 출근을 안 하면 걱정할 거 아닙니까?”

“그게... 다른 사람들 전화번호는 기억이 잘 안 나요.  외우지 않았거든요.”

“네, 네.  다들 그렇죠.  요즘은.”

경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하게 된 이후  외울 수 있는 전화번호라고는 내 것 밖에 없었다.  핸드폰에  ‘엄마’ ‘아빠’ ‘남동생’으로  저장된  이름을 누르기만 하면  통화가 가능한 탓이다.  뇌라는 것은  지나치게 영악해서 하지 않아도 될 노동은  과감히 생략하는  능력을 가진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화번호  몇 개라도 외워둘 걸 그랬다.       

“지금쯤 회사에서도 제가 차에 없었던 것을 알게 되었을 거예요.  여기저기 전화도 해볼 테고  어쩌면  여기도 찾아올지 모르고요.     그때까지 마음 느긋하게 먹고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겠네요.”

그것은 내 바람이기도 했다.  그런 말을 입밖에 내뱉고 나니  혼자 버려두고 떠나버린 일행에 대한 서운함으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경찰은 나에게 휴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어젯밤 내내 한 숨도 못 주무시는 것 같던데요.  뒤쪽에  작은 방이 하나 있는데  피곤하시면 거기서 눈이라도 붙이시겠습니까?  구석에 있어서 조용하고  저만 일하는 곳이라  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밤새도록 한 숨도 못 자고  의자에 앉아 있었던 탓에  온 몸이 쑤셔왔다.  잠시라도 누워 쉬고 싶은 기분이 든다.  낯선 경찰의 호의를 선뜻 받아들여도 될까 싶었지만  호의를 거절할 처지가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하고  경찰을 따라 구석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방이었다.  문이 없는 벽 세 개에  화면이 가득 걸려있었다.  언뜻 봐도 수십 개는 넘어 보인다.  아파트와  상가 입구가  찍힌 것을 보면  아마  관할 지구에 있는 CCTV 화면인 모양이었다.  그 화면들을 제외한 그 방안 모든 것은 백색이었다.  벽도 바닥도,  창문도  창틀도,  책상과  그 위에 노트북 컴퓨터도,  심지어 구석에 놓인 싱글 침대도 하얗다.    침대를 보니 갑자기 두 발이 땅에 붙은 듯 무겁게 느껴졌다.  잠이 쏟아져  몸이 땅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침대 앞까지 걸어간 나는 그대로 침대 위에 고꾸라지듯  몸을 눕혔다.  눈을 감았지만  아직도 버스에 타고 있는 것처럼 몸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생뚱맞게도  오늘은 경남 진해 버스를 탈 예정이었던 것이 기억났다.

나를 태우지도 않고  떠난 버스 기사님은  언제 내가 없다는 걸 알았을까?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이 동네가 고립된 것은 아닐까? 회사에서는  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을까?  이놈의 비는 언제 그칠까?  빗소리 정말 끝없이 들리네.  

비 오는 소리.

빗소리.

 비......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본다.   다시 하얀색.  하얀 벽.  하얀 방안이다.

악몽을 꾸다가  깨어나려 애써도  깨어날 수 없는 기분이  이런 걸까.

발에  쇠사슬이라도 묶인 듯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양 발로 이불을 차 버렸다.  허망하게도  발이  가볍다.  이불이 풀 석일뿐이다.  양 발에 쇠사슬이 묶여 움직일 수 없다면  쇠사슬 끊을 일에만 골몰하면 될 텐데  보이지 않는 것에 묶여 있는 지금은  나를 묶고 있는 것의 정체를 모르는 채  괴롭다.  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모든 것을 적으로 착각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도 한동안은 멍하다.  잠시 올려다본  창문 밖은 아직도 비로 흠뻑 젖어 있었다.  유리창을 흐르는 빗물 소리가 수돗물 흐르는 소리만큼 크다. 방 안을 둘러보니  작은 방안에는  욕실이 딸려 있었다.  조심스레 욕실 문을 열어보았다.  커다란  욕조가  놓인 게  꽤 근사한 욕실이다.  수도꼭지를 틀어보니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장미향이 나는 ‘바디워시’도  한 병 욕조 곁에 놓여있었다.  평소 반신욕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터라 뜨거운 물을 보니  찌뿌둥한 몸을 담그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방 문을 약간만 열고 조심스레  방 밖을 살폈다.  경찰서는 텅 비어있었다.  다들 바쁜 것인지, 식사시간이라도 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내심 반가웠다.  나는 방 문을 잠가봤다.  문은 확실히 잠기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을 때  얼른 씻고  나오자 싶다.  방 문을 잠그고  욕실에 들어가 욕실 문도 잠그고 나서  뜨거운 물을 채운 욕조에  재빨리 몸을 담갔다.   낯선 경찰서  구석방에서  하는 목욕이라 맘 편히 즐길 여유는 없었다.  비누 거품을 내서  가능하면 빨리 목욕을 마쳤다.  갈아입을 옷이 없어 아까 입었던 옷을 다시 입었지만  몸은 한결 가뿐해졌다.  침대가에 앉아 멍하니 창문을 응시했다.  비가 흘러내리는 모양을  한동안 보고 있자니 새삼 나 혼자만 낯선 곳에 떨궈진 현실이 걱정스럽게 다가왔다.

‘돌아갈 수 있을까?’

나 혼자 살던  작지만  아늑한  아파트가  새삼 그리워진다.   출근하던 아침에  햇빛 쐬라며  베란다에 내놓았던 다육이들이  밤 추위를 견딜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다시 돌아가면  다육이들은  방 안에 가져다 둬야겠다.  이제 곧 겨울이 올 텐데,  겨울이 되기 전에  돌아갈 수 있다면 말이다.     

“잠시만요,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주자  어제 나를 이 방으로 안내해 주었던 경찰관이  서 있었다.  그는 쭈뼛거리며  방으로 들어왔다.

“제가 맡은 업무가 바로 이 방안에 하루 종일  CCTV를 모니터 하는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방은 너무 좁아서 두 명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에요.  게다가 저는 남성이고 댁은 여성인데  같은 방에서 둘만 오래 있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고요.  제 여자 친구가 알게 되면  오해할 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여기 말고 달리 있을 곳을 찾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근처에 제가 지낼 곳이 있을까요?”

내 얼굴이 흙빛이 되었던 모양이다.  경찰관은  난감한 얼굴로  잘 모른다고 했다.  

“저도  전근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경찰서 말고는  아는 곳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비가 그치면 곧 떠날 거예요.  그동안 만이라도 이곳에 있게 해 주실 수 없을까요?  정말 갈 데가 없어서 그래요.   일 하시는 동안에는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밤에만 여기를 쓰면 안 될까요?”

내가 고개를 조아리며 부탁하자 경찰관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젊은 얼굴이었다.  많아봐야  나보다 한 두 살 어려 보였다. 

“비 오는데 어딜 돌아다닙니까?   밖은 지금 완전히 물에 잠겼어요.  나가지 않는 게 돕는 겁니다.”

“비가 그치지 않더라도 인터넷만 복구된다면  이곳을 떠나게 될 거예요.  그때까지만이 라도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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