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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7. 2019

이야기의 시작

(2)

그러고 보니 저녁 먹을 때가 되었나 보다.  갑자기 시장기가 밀려왔다.  순대국밥집 입구 유리문이  열릴 때마다  구수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기사님도 그렇고 승객들도  마치 좀비 군단처럼  정신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마치  오래된 흑백 영화에서처럼  낯설고  어색하게 보였다. 

“가이드님, 들어와요.”

기사님이  나를 불렀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데서 먹을게요.”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순댓국을 먹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입맛이 까다롭다며  엄마에게 타박을 많이 받았지만  편식하는 버릇은 영 고쳐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먹지 않는 음식보다  먹는 음식 수를 세는 것이 더 빠르다고 할 정도였다.  생선도 전혀 입에 대지 않아서  회나 초밥은 물론이고  구이나 매운탕도 사절이다.  아이스크림도  바닐라만,  술은 맥주만,  밥도 흰 밥만 골라서 먹는다.   아무리 비 오는 밤,  다른 식당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그 습관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수제 햄버거집이나  분식집 없나?”

그제야 지갑을 찾아봤지만  호주머니에 지갑은커녕 동전 하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버스에 놓고 내린 것이리라.   어차피 배가 고프지 않으니 돈은 필요 없지만 핸드폰도 놓고 내린 것을 깨닫자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순대국밥집에 들어갔다. 

“기사님,  버스 문 좀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기사님은 순대국밥을  드시다가 나를 보더니 싱긋 웃었다.  뜨끈뜨끈한 음식을 먹어서인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버스는 왜?”

“핸드폰이랑 지갑 놓고 내려서요. 얼른 가져오려고요.”

“지갑은 왜?  순댓국 내가 사줄게.  얼른 먹어. 김양아.”

“저 괜찮아요.  버스 문만 열어주시면 돼요.”

내 말에 기사님은  

“가이드님,   순댓국 못 먹는 모양이네.”

했다.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순댓국을 한 수저 더 먹었다.  

“맛있으세요?  기사님.”

“응,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말 알지?  딱 그런 맛이야.  너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눈 딱 감고 먹어보겠어?  한 숟갈 줄까?”

“아니에요.  전 됐어요.”

나는 손사래를 치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승객들은 다 식당에 앉아 순댓국을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말 맛있는지   국밥 그릇에 온 정신을 집중한 채  한 숟갈 한 숟갈을  음미하듯 떠 넣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배가 고파졌다.  이럴 때는  나도 편식 없이 아무 음식이나 잘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손님들에게  반찬을 가져다준 아주머니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는 안 먹어요?  배고플 텐데.  여행 가려면  든든하게 잘 먹어야죠.  앞으로 얼마나 더 갈지 모르는데.”

“혹시 이 근처에  햄버거 파는 데 있어요?  아님 오므라이스나.”

“모르겠는데.  있다고 해도 지금은 닫았을 거예요.   이곳은 아파트촌이라 저녁 늦게까지 하는 식당이 거의 없거든요.  스물네 시간 하는 곳은 여기밖에 없어요.”

“네.”

열심히 순대국밥을 먹고 있는 기사님에게  한 번 더 버스 문을 열어달라고 해볼까 바라보고 있었지만  소용이 없다.  기사님은 눈 한 번 들지 않고 순댓국을 떠 넣을 뿐이다.  결국  포기하고  식당에서 나왔다.  식사는 건너뛰어도 하는 수 없다.  어차피  몇 시간 후에는 서울에 도착할 테고  저녁밥은 집에서 먹으면 된다.  대신 휴식시간이 끝나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와야겠다.    

화장실에 다녀와서도  비가 그칠 기색이 없다.  창문을 내다보다  문득 주차장을 확인한 나는 그만 아연실색을 했다.  관광버스가 없어진 것이다.    거대한 버스가 있던 자리에는 빗물이 강처럼 차오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허둥지둥  순대국밥집으로 뛰어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손님으로 가득 찼던 식당은 텅 비어있었다.

“아주머니,  여기 계시던 기사님이랑 승객분들 다 어디로 가셨어요?”

“아까 다들 가셨어요.  아가씨도 같이 오셨던 것 같은데  아가씨는 왜 안 가셨어요?”

아주머니는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  

“정말요?  정말 다들 가셨어요?”

나는 몇 번이나 같은 것을 묻고 또 물으며  한 동안 제자리에 서 있었다.  핸드폰도  지갑도 없이 태어나 처음 가본 곳에서  외따로 떨어져 남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믿어지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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