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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7. 2019

이야기의 시작

(1)

몇 년 전 그때, 거의 매일 승객들을 마주하는 나의 직업은 ‘관광 가이드’였다.    기본적으로는 프리랜서라  성수기 때는 거의 매일,  비수기 때는  일주일 내내 일이 없어 쉬기도 하지만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만 해도  돈이 생기는 직업은 흔하지 않다.  4년 동안 가이드 노릇을 하고 나니  대한민국 안에서  관광지라는 곳에는 안 가본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요즘은 성수기라  매일 일을 했다.   어제는 땅끝 해남에서 열리는 축제에 다녀왔고,  오늘 강릉에 다녀오면    내일은  경상도에 가게 될 예정이었다.  여행이  일상이  되어  무의식까지 침투한 모양으로 어느 정도냐면  꿈속에서도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그날은 유난히 졸렸다.  내내 꾸벅꾸벅 졸았다.  

밤이 되어가는 고속도로는 비에 젖어가기 시작했다.   어두워지는 데다  빗방울로 시야가 흐려진다. 창문 빗방울을 닦기 위해 와이퍼를 작동시킨 기사님은  지루했는지 음악을 크게 틀었다.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    

그 사람은 모를 거야 모르실 거야    

비에 젖어 슬픔에 젖어 눈물에 젖어    

하염없이 걷고 있네 밤비 내리는 영동교    

잊어야지 하면서도 못 잊는 것은    

미련 미련 때문인가 봐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헤매 도는 이 마음    

그 사람은 모를 거야 모르실 거야 “    

애잔한 여성 가수의 목소리가  커다란 고속버스 앞 유리창에 흐르는 빗물과 잘 맞아떨어진다.  따라 부르는 기사님의 약간 걸걸한 목소리에도 잘 어울린다.

‘미련 미련 미련..’ 부분에서  감정이 격해진 듯 목소리를 높이던  기사님이 갑자기 노래를 멈추고 나를 향해 물었다.

“가이드님은 이 노래 모르지?”

“어릴 때 들어본 것 같기는 해요.”

나는 호불호가 확실한 사람이다.  좋아하는 가수는 에미넴,  좋아하는 곡은 ‘rap god’.  재즈는 가끔,  힙합은 거의 매일 듣는 반면  트로트곡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렇게도 옛날 곡이라니.  졸던 잠이 약간 깨는 듯하다 다시 밀려든다.     

“그때가 스물다섯 살 때였나  마누라랑  데이트하던 시절에 이 곡을 들으면서 한강가를 거닐었는데.  가사를 한 번 들어봐.  어찌 이리도 애잔 한지.  옛날 노래들은 한 편의 시 같지 않니?  들을 때마다 쓸쓸한 것이 말이야.”    

기사님 말을 듣고 보니 트로트 곡 특유의 콧소리와  애절한 가사가 비 오는 대관령 밤 느낌과 얼추 맞아떨어진다.    

“하염없이 헤매네. 밤비 내리는 영동교    

생각 말자 하면서도 생각하는 건    

미련 미련 때문인가 봐. “    

 날씨 탓인지  ‘미련 미련 때문인가 봐’ 하는 구절에서는  마음이 처연해져서  나도 모르게 창가에 시선을 두었다.  쏟아지는  잠 때문이 꾸벅하고  두 번 졸았다.  요새 무리한 탓인지  영 잠이 깨지 않는다.  그렇지만  고속버스는 정해진 스케줄대로 달려야 할 의무가 있다.  나와 기사님에게도   버스에 타고 있는 승객들을  안전하게 모시고 갈 의무가 있는 것처럼.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막 터널 안으로 들어섰다.   밝은 외부에서  어둑어둑한 터널에 갑자기 진입한 탓일까.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졌다. 

“어이고,  사고가 크게 난 모양이네.”

기사님의 목소리에 나도 사고 난 쪽을 바라보았다.   땅에 곤두박질쳐진 고속버스가 한 대, 배를 내놓은 채 옆으로 누워있었다. 나와  기사님,  서른네 명의 승객이 타고 있는 이 버스와  같은 크기다.  몇 중 추돌인지 모를 만큼  고속버스 주위에는 깨진 자동차 조각들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종이처럼 구겨진  차체와  깨진 유리창,  차 안에서 튀어나온  의자 등받이 같은 물건들 사이로  언뜻이지만  사람 팔 같은 것도 있었다.  바닥에 얼룩진 핏자국까지 보고야 말았다.  비위가 약한 나는 그만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참혹하네요.”

 거의 매일 고속버스를 타는 요즘 같은 때에는  사고 현장을 많이 본다. 끔찍한 광경을 본 탓인지 잠이 확 달아났다.   특히 오늘 같은 날씨에  터널 안으로 들어가면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지는 데다  바닥이  내린 비로 미끄럽다는 게  기사님의 말이다.  기사님도  정신이 번쩍 난 듯한 표정으로  ‘이런 날에는  정말 조심해야 돼. 눈 깜박할 새에 큰일 나지’ 하고 덧붙였다.             

우리가 터널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보슬비였던 것이  끝나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퍼붓듯 쏟아지고 있었다.  두터운 구름이 하늘을 완전히 덮어버린 탓에 터널이 끝나는 곳부터 칠흑 같은 어둠의 시작이다.   장대처럼 굵은 빗방울이  버스 앞 창문을 사정없이 두들겨 댔다.   와이퍼 속도를 최대로 올리고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 참,  내비게이션까지 말썽이네.”

기사님 말대로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내비게이션이 먹통이 되었다.  내리는 빗방울이 고속버스 헤드라이트를 건드린 것인지  불빛이 약하다.  터널을 빠져나온 버스 앞은 말 그대로 검고 검은 어둠뿐이다.

“뭐가 보여야 가지.  이 근처에 가로등이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죄다 고장이라도 난 걸까?”

불안했는지  기사님이 크게 중얼거리자  그 소리를 들은 승객들이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승객들이 불안해할까 봐서  걱정스러워   

“기사님,  근처에 잠시 세웠다가 비라도 그치면  움직이는 게  좋겠어요.”

내가 말하자

“저기 불빛이 보이는데요.”

승객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앞쪽을 가리켰다.  쏟아지는 비 사이로  어렴풋이 불빛이 보였다.

“기사님, 갈 수 있겠어요?”

“가봐야지.  일기 예보에는  오늘 비 온다는 말이 없었지 않아?  지금 내리는 비도 소나기일 거야.  그칠 때까지만  쉬었다 가자고.  스케줄보다는 손님들 안전이 더 중요한 걸 테니까.  가이드님은 어떠니?  괜찮지?”

“네,  그렇죠.”

나는 얼른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켰다.  내가 앉은자리는 운전기사님 자리 바로 뒷자리다.  그곳에 서서 뒤를 돌아보면  버스에 앉아 있는 승객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승객 여러분,    강릉을 출발하여 영동 고속도로를 지나 서울로 향하고 있는 ‘하늘 관광’을  선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현재 여러분이 타고 계신 버스는  예상치 못한 악천후로  안전한 운행에 지장이 있어  비가 그칠 때까지만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평소 말투와 다르게,  정확히 말하면 ‘관광 가이드’의 독특한 톤으로 안내 방송을 하자  몇몇 승객들은

“안전이 우선이죠.”

“쉬었다 갑시다!”

하며 오히려 안심하는 눈치였다.             

비가 이렇게 많이 쏟아지지만 않았더라도  지금쯤  서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거대한 버스가  멈춘 곳은  상가 주차장 한쪽 구석이었다.    6층짜리 상가는  벽돌색 평범한 외관이 오히려 특징처럼 보였다.   어둠 속에서 섬처럼 떠있었다.  기사님은 차를 세우고  버스 앞문을 열었다.  차 안에서 볼 때보다  빗줄기가 훨씬 거세다.  기사님이 소리를 질러도  자꾸만 빗소리에 묻혔다.    

“가이드님,   먼저 내려서 건물 한 번 둘러볼래?  손님들이 쓸 수 있는 화장실이 있는지 알아보고  핸드폰 배터리도 방전된 것 같으니  충전할 수 있는 카페나  식당 있는지도 한 번 체크해봐.”

“네.”    

 버스에서 내려서니  주차장에도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아기 수영장에서 물놀이라도 온 것처럼  나는 양 발을 찰박거리며  주차장 가로 올라섰다.   멀리서 볼 때는 약한 빛만 보였는데  막상 가까이 와보니 상가는 의외로 불을 환하게 켜 두고 있었다.    그중 ‘24시간 홍매화 순대국밥’이라는 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이야,  식당이 큰데.  잘 됐네.  비가 그칠 때까지 밥 먹고 가면 되겠어.”

나에게 먼저 가서 건물을 둘러보라던  운전기사님이  어느새 차에서 내려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 승객들도  하나둘씩 따라서 내린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1층에  순대국밥집이 있고  그 옆에는 북카페,  맞은편에는 약국이 있었다. 낮에는 꽤나 북적였을 것 같은데  시간이 늦어서인지 건물은 전체적으로 조용하다.  화장실도  크다.  

나는 얼른 버스로 돌아갔다.  버스 문 앞에는  기사님과 승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기사님, 화장실 있고요, 승객분들 가실 만 해요.”

기사님은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시간을 체크하려는 듯 들여다보았다.  

“지금이 일곱 시 반이니까  십 오분만 쉬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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