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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7. 2019

1 주 월요일 이야기

이순단       

                     

처음 쓰는 보고서라  어수선한 느낌.


월 화요일에는  용의자들을 관찰하고  수, 목, 금 토... 일요일까지  보고서를 썼다.


관찰하며  메모한 것들이  노트 한 권 정도.


보고서는  쓰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구나  깨달으며.


음식을 사 먹을 돈이 없어서  경찰이  간간히 두고 가는 간식거리로  연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떡볶이가  간절하다.






용의자 이름:  이순단

직업:  순대국밥집 사장

나이: 서류상 34세  실제 나이보다는 어려 보인다.  

외모:  갈색 머리,  검은 눈동자,  작은 키,  마른 몸매

성격:  기분이 좋았다가  슬펐다가  자신감이 넘쳤다가 쪼그라들었다가 갈피를 잡을 수 없음.      



      

할머니께서  하던 순댓국밥집을  물려받은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침 출근길이  항상 기분 좋은 건 아니다.  처음 식당에 출근했을 때 수단은   심각한 공포에 빠졌었다. 

상상해 보라.  순대국밥은  입에도 대지 않는 스물여덟 젊은 여성이  갑자기 24시간 내내 순대국밥을 팔게 되었다.  순대 만드는 법,  육수 내는 법도 몰랐다.  가진 거라고는  할머니가 남겨놓은  비법 노트 세 권과 할머니에게 배운 대로  요리하는  직원들 뿐이었다.  어떻게 시간이 지난 건지 모른다.  계절이 세 번 하고 반 정도 지나는 동안  그녀에게도  순대국밥 한 그릇쯤은 뚝딱 만들어낼 요령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서 자신감도 붙었다.       

비는 일주일 내내 멈추지 않는다.   다행히 비에 잠기지 않은 아파트 건물 사이로  오래된 감나무와 사과나무가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노랗게 바래기 시작하는 이파리들이  벽돌 길에  한 두 개씩 떨어진다.  그 이파리들이  닿는 곳에는 코스모스와 맨드라미가 한 다발씩 피어있다.  야생화처럼 엉켜가며  피어난 꽃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린다.  어제보다 훨씬 차가워진 바람이  그녀의 손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녀가  걸어가는 빨간색 벽돌 길은  아파트 숲을 관통해서  지하철 역 입구가 있는 큰길로 이어져 있었다.  매일 아침,  이 시간이면  그렇듯  오늘도 여름옷 위에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걸쳐 입은 사람들이  줄을 선 듯 큰길을 향해가고 있다.  한결같이  짜증이라도 낼 것처럼 찌푸린 얼굴, 예민한 표정으로  앞만 보고 걷는다.  그 줄은 건물 앞 지하철역 2번 출구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빨려 들어간다.  지하철 역 바로 앞에서  이순단 씨는  그 줄에서 빠져나와  상가 건물로  들어간다.  6층짜리 상가 1층에  그녀가 하는 순대국밥집이 있었다.  상가 복도를 두고 순대국밥집과  약국이 마주 보고 있었는데.  지상 1층에는  순대국밥 식당과  같은 쪽에  분식집과  족발집, 반찬가게처럼  식당들이,  복도 반대편 약국 쪽에는 북카페와 부동산, 화장품 가게와 옷가게가  늘어서 있었다.   지하에는 근처에서 꽤 유명한 중국식당이  있어서 하루 종일 고소한 짜장 볶는 냄새가 나고  2층과 3층에는 개인 병원들, 4, 5, 6층에는 작은 사무실들이 가득 차 있는 전형적인 한국의 상가 건물이었다.      

그 한 귀퉁이에 자신의 가게가 있다는 걸 떠올릴 때마다  그녀는 가슴이 먹먹한 무게감이 끓어올랐다( 매 번 하늘을 보고 한 숨을 쉬는 것을 보면).  가게 주인이라는 직업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그녀의 할머니가 가게를 처음 낸 후 벌써 60년이나 흐른 덕분에 먼 곳에서도  순대국밥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   그들은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그 순대국밥 맛을 잊지 못해서 다시 왔다고 했다.  어릴 때 먹었던  음식들은  혀에만 그 맛이  기록되는 게 아니라  기억이라는 깊고 깊은 뇌세포에도  음각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근거로  어떤 손님들은  약간만 그 맛이 달라져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는 했다.   할머니가 남겨주신 순댓국밥집을  경영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식당 주인’이라는 안테나를  귀에 꽂고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 어떤 손님에게 내놓든 그녀의 할머니가 만들었던 그 맛을 항상 맛이 유지해야 하고  식당 안은 청결해야 한다.  직원들은 친절해야 했고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도 식당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했다.  식당 안에서 일어나는 일만도 감당하기 버거운데 얼마 전부터 배달을 시작하다 보니 신경 쓸 일이 몇 배나 늘어나 버린 기분이었다.  

어제 보다는 하늘이 조금 더 짙은 색이다.   어젯밤에 내린 비 덕분인지 구름은 진공청소기로  제거해 버린 것처럼 한 점도 남아있지 않았다.  여름처럼 맑고 쾌청한, 가을만큼 차분한 하늘을 두고  일하러 가야 한다니,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혼자 살게 된 그녀다.  돈을 벌지 않고는 먹고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아름다운 하늘을 놓아두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평소라면 상가를 가로질러 오면서  수단은 1층 카페 ‘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살 것이다.   카페 여사장은 언제 나처럼 얌전한 미소로 그녀를 맞을 것이다. 

“순단씨 오는 시간이  얼마나 정확한지  이때쯤엔  나도 모르게 커피를 내리고 있지 뭐야.”

“오늘도 따뜻한 아메리카노 큰 걸로 한잔요.”

“새로 괜찮은 원두를 사 왔거든요.  과테말라 산인데  내 입맛에는 괜찮더라고요.  오늘은 그걸로 내려줄 테니까  한 번 마셔봐요.”

“네, 사장님 커피야 항상 맛있죠.  신선하고요.”

“이래 봬도  홍대 앞에서  카페 세 개나  하던 솜씨 아니겠어요?  바깥양반이 작업실을 여기에 얻는 바람에 저도 이곳까지 흘러 온 거죠.  그러고 보니  벌써 이십 년도 전 이야기네요.”

대충 이런 대화가 오가는 동안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커피를 내리고  커피콩이 들어있는 수제 쿠키도 하나 함께 건네줄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뭔가가 좀 다르다.    

물론 겉으로 변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매일 같은 장소를 비슷한 시간대에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감지할 수 있는 변화가 있었다. 

카페가 아직 닫혀 있었다.   

순단은 문득 오늘이 ‘일요일’이었나  싶어  핸드폰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카페는 매달 둘째, 넷째 일요일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일요일이 아닌 월요일이다.

“말씀 좀 여쭤보겠습니다.”

낯선 남자가 두 명  그녀를 가로막은 것은 그다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누구라도 그럴 때가 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그냥 알아차릴 때가.

지금이 군단에게 그럴 때이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그 두 남자들이 ‘경찰’ 임을 직감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들은 중강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들입니다.  수상한 사람 신고가 들어와서 그렇습니다만  이 사람 혹시  본 적 있습니까?”

‘영화에서나 일어날 것 같은 일이야.’

그녀는 순간 당황하며 생각했다.  두 명의 남자가 핸드폰을 그녀에게 내밀고  CCTV에 찍힌 한 장면을 보여줄 때 까지는.

“여기 이 사람 말입니다.  본인이죠?”

“네?”

이순단은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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