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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7. 2019

1 주 월요일 이야기

김 이혁

용의자 이름:  김이혁

직업:  가죽 공예사,  공방 운영 중

나이: 서류상 56세  실제 나이보다는 훨씬 들어 보인다.  

외모:  약간 벗어진 머리,  구부정한 자세, 거북목.  통통한 체형.

성격:  예의 바르고 책임감이 강함,  선량해 보임.    


    

잠에서 깨면 언제나 그렇듯 오전 5시 46분이다.  알람을 켜 두어도  꺼두어도  그는 같은 시간이면 눈을 떴다.  아내와 결혼한 후 23년이 흐르는 동안 그의 몸무게와  머리숱, 허리둘레와  혈중 콜레스테롤 지수가 변화하는 와중에도  한 가지,  변하지 않은 습관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오늘도  5시 46분부터 이십여분을  침대에서  꼼지락거렸다.  그가 침대에서 일어난 이유는 시장기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간이침대가 삐거덕거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에 나간다.  안방에서는 아내가 자고 있고  냉장고는 거의 비어있다.  밥솥도 텅텅 비어있다. 결혼 후 변한 것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신혼 때  앞치마를 입고 아침밥을 차려주던 아내가  지금은  오전 7시까지 눈 한쪽도 뜨지 않고  안방 침대를 차지하게 되었고  그는 문간방  간이침대에서  잠을 잔다는 것도  그렇다.   

안 방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거실 쪽이 부산스럽다.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오전 7시가 다 된 모양이다.  아내의 가벼운 발소리가 화장실로,  주방으로, 거실로 한참을 돌아다니더니  그가 있는 문간방 문 앞에서 멈췄다.

“여보, 주무세요?”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그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는다.  조용히 이불속에 누워 잠든 척한다.

“저 출근해요.  아침 알아서 챙겨 드세요.”

 아내의 발걸음 소리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곧이어 현관문이 열린다.  

바람소리.  비 오는 소리. 

현관문이 곧 닫혔다.

아내가 출근한 모양이었다.         

그는 뭉그적 거리던 침대 안에서 뛰쳐나왔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새 옷을 꺼내 입었다.  재킷을 걸치고  지갑을 챙긴다.  배가 고파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화단에는 아파트 3층 높이만큼 자란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피곤이 덜 가신 얼굴로  출근하는 듯 바쁘게 걷는 사람들이 대여섯은 된다.  만약 주위에 아무도 없었더라면  이혁은 감나무에서 감을 따 먹었을지도 모른다.  우산을 쓴 그는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근처 상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내린 비로  푹 젖었던 길바닥은 물이 차올라 미끄럽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걸으며 그는 한참 상가 앞을 서성였다.  오른쪽 상가에는 24시간 순대국밥집이,  왼쪽 상가에는 24시간 ‘롯데 버거’가  성업 중이었다.   두 상가 중간에서  이십여분이나 고민하던 그는  마음을 정한 듯  ‘롯데 버거’의 문을 열었다.  가게 문 앞 ‘무인 음식 주문 시스템’이라고 적힌 스크린이  그를 가로막는다.  그는 왼손 집게손가락으로 스크린을 터치했다.      

‘화이어윙  2 피스  2,400 원

뉴 오징어버거  3,400원

아메리카노     1,000원’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영수증을 챙긴 후 자리를 잡는데  그가 먹을 음식이 나온다.  막 튀겨 나온 치킨 조각을 보자   아까보다 더한 시장기가 덮쳐왔다.  덥석 치킨 한 조각을 집어 든다.  ‘아, 뜨거워!’  그만 치킨을 놓칠 뻔했다.  겨우 이혁의 손가락씩만 한 치킨 두 조각이지만  먹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치킨 조각도  오징어 버거도  너무 뜨겁고 맵다.  그는 화끈대는 입 안을  커피로 달래며  영수증을 들여다본다.

“왜 이렇게 매운 거야?  화이어가 붙어서 그런가.”

맵다. 입술뿐 아니다.  혀까지, 입 안까지 화끈거릴 만큼 맵다.   거기에 오징어버거는 오징어 맛보다 매운맛이 더 강하다.  왜지?  그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뉴’가 붙어서인 것 같다.  여하튼 ‘뉴’ 같은 단어를 붙여놓고  맵고 자극적인 것들을 만든다.  요즘 음식들이란 입천장이 벗겨질 만큼  맵지 않으면  사람들 주목을 끌지 못하는 것인가.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다.  매운 치킨 한 조각에  ‘뉴’ 오징어버거까지.  입안을 식힐 액체가 필요하다.      

‘롯데 버거’ 매장  문이 활짝 열리더니  언뜻 봐도 건장한 남자가 두 명  들어왔다.  얼추  삼십대로 보인다.  그의 나이가 삼십 대일 적에는  아내가 아침을 매일 차려주었다.  밥에 국,  반찬을 제대로 다 챙겨주었다 이 말이다.  그때는 그걸 당연히 여겼다.  고마운 것도 없었고  심지어  그는 아내의 음식에 불만이 많았다.   계란 프라이 노른자가 깨진 것을 타박했고  콩나물이 너무 싱겁다고  숟가락을 놓았다. 이십 년이 지난 후에는  아침은커녕 커피 한잔도  못 얻어먹을 것도 모르고.  

그렇다고 아내를 타박했던 것을 후회하는 건 아니다.  아내는 그의 잔소리를 싫어했지만  그도 잔소리하기를 즐겨한 건 아니다.  아내가 일을 제대로 못하면  누군가가 바로잡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아내의 행동이 올바르지 않았으므로 충고했던 것이다’라고.     

“김 이혁 씨 맞으시죠?”

두 남자가  그를 향해 다가오더니  물었다.

“네?”

이혁은 순간 당황해서 들고 있던 커피잔을 입에 대는 것을 잊고 커피를 기울여 그만 테이블에 커피를 죄다 쏟고 말았다.  허둥거리는 그를 위해  두 남자 중 한 명이  냅킨을 한 주먹 가져다  테이블 위를 닦아준다.

“저를 왜 찾으십니까?”

이혁은 순간  자신이 만드는 가죽 가방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 의심했다.  그는 누가 뭐래도 꽤 유명한 가죽 공예사이므로.   그러나  두 남자는 가죽 가방에 대한 것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근처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들은 CCTV 일부분과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여기 나온 사람, 본인 맞으시죠?”

그는 침침한 눈을 끔벅이며  형사가 내미는 핸드폰 화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어젯밤에 뭐했습니까?”

“어제는 제가  음...... 글쎄요, 나쁜 짓을 한 적은 없습니다만.”

이혁의 눈동자가 갈팡질팡하고 있다.  입술도 가볍게 떨렸다.

“어젯밤에 비가 많이 왔습니다.  맞지요?  그런데 김이혁 씨가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고  긴 삽을 들고.  손에 검은 봉지에 싼 물건을 들고 산으로 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네, 제가 산에 가기는 갔습니다.”

“산에 가서 뭐 하셨습니까?”

“설명하려면 꽤 긴데 말입니다.  이런 데서 이야기 길게 하기는 뭐하고.  경찰서에 가서 차분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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