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로를 주행할 거라는 말에 친구는 '자전거용 속옷'이 필요할 거라고 알려주었다. 자전거 타는데에도 속옷이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실력 없는 목수가 연장 탓 한다는 말이 있는데 듣고 보니 실력 없는 나는 연장 도움이라도 받아야겠다 싶어 온라인으로 '자전거용 속옷'을 샀다. 여성용과 남성용이 다르고 자전거 안장위에 앉았을때 닿는 부분에 패드가 들어있다. 수업에 가기 전에 자전거용 속옷을 입고 그 위에 바지를 입었다. 새로운 옷을 입었으니 마법같은 효과를 기대해 본다.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아보니 안장위에 앉아 있기도 수월하고 배기는 부분도 적다. 역시 입기를 잘 한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안장을 올려!”
열심히 페달을 밟는 나를 향해 강사님이 소리치셨다. 트랙만 돌 거라면 그럭저럭 탈 테지만 곧 도로로 나갈 생각이었다. 얼른 자전거를 멈추고 안장을 올려 고정했다. 다시 자전거에 오르려는데 이거, 너무 높은 것만 같다. 무섭다.
“넘어지면 어떻게 해요!”
비명처럼 항의하자 강사님은
“페달을 밟을 때 무릎이 완전히 펴져야 힘을 적게 쓰고 더 효과적으로 달릴 수 있습니다. 안장을 높이세요. 안 그러면 무릎 관절 다 망가져요.”
하신다.
이론적으로는 너무도 타당한 말이다. ‘안장을 올리라!’니.
이론과 실제를 가로막는 것은 ‘두려움’이라는 복병이었다. 넘어질 것처럼 갸우뚱할 때면 발로라도 짚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안장을 낮게 하고 타면 자전거를 출발시킬 때 양 발이 지면에 닿으니 덜 두렵다. 안장을 올리고 자전거에 올라앉으니 양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이랬다가 넘어지면 큰일 날 것 만 같다.
“그렇게 낮게 타면 힘을 못써. 도로에서 얼마 못 갈 텐데.”
“전 다리가 짧아서 괜찮아요.”
내 신체 구조를 이유로 들며 고집을 피워본다.
아까보다는 높게, 그렇지만 강사님의 말씀보다는 조금 낮게 안장 높이를 조절하고 자전거 대열에 합류했다. 트랙을 돌며 어느 정도 몸이 풀리자 선생님을 따라 자전거 도로에 들어섰다. 아, 드디어 나도 도로에 나가 보는구나 싶어 심장이 뻐근해진다. 줄 지어 타는 수강생들 사이에서 나는 앞에서 세 번째에 있었다. 솔직히 바로 앞사람 뒤통수만 보고 따라가느라 주위 경치를 볼 새도 없다. 무조건 페달만 밟았다. 모퉁이를 돌고 다리를 두 개나 지나치고, 공사현장을 지나 언덕에 닿았다. 갑자기 자전거가 멈춰버릴 것 같다.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언덕에 올라가지 않는다. 줄에서 이탈할까 봐서 죽어라 페달을 밟았다. 이를 악물고 언덕은 올랐는데 그다음에 다리가 풀렸다. 다시 페달을 밟으려고 해도 자꾸만 다리가 떨린다.
“다들 오른쪽으로!”
나만 힘들어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강사님이 오른쪽 공터에 모두 모이게 하셨다. 우리는 거기서 한동안 쉴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다리가 떨릴 만큼 힘든 것은 나아지지 않는다.
언젠가 라이딩을 하고 돌아온 친구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라이딩할 때면 어떤 기분이야?
-심장이 터질 것 같지. 다리 근육이 불타는 것 같고 찢어질 것 같고. 그 느낌이 좋아서 자전거를 타는 거야. 죽을 것 같은 느낌.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데도 죽지 않는 그 느낌 말이야.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 느낌이라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고통과 비슷한 것일까? 자전거도로 첫날에 그 정도 고통을 배우다니 나도 자전거 꿈나무 자격이 충분한 게 아닌가? 스스로 기분이 좋아진다. 휴식 시간이 지나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우리는 다시 장암 쪽으로 자전거를 달렸다. 방음벽이 이어진 도로를 지나니 억새 우거진 강변이 나타났다. 겨우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생겼다. 초겨울 햇빛 찬란한 강변 자전거 도로 위를 달리다니, 꿈만 같다. 이 순간 어울리는 음악이라면 약간 빠른 템포의 보사노바가 좋겠다. 자전거 앞 바구니에는 바케트 빵을 담고 한가롭게 거리를 달리는 상상을 해본다. 그렇지만 다리에 힘이 없는지 자꾸만 뒤처진다. 심장이 터져 나가는 것만 같다. 결국 나는 손을 들고 강사님께 도움을 청했다.
“길 가에서 우리가 목적지까지 갔다 올 때까지 쉬고 있어.”
강사님 말씀대로 갓길에 자전거를 멈췄다. 일행이 떠나고 나 혼자 남아 강변을 바라본다. 하얀 물새가 내려앉아 한가롭게 물고기를 잡는다. 걷거나 뛰며 지나가는 분들도 많다. 한동안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움직이는 영상 속에 나만 불쑥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모두가 주어진 일에 열심히 빠져 있는 모양이 아름답다.
“어때, 쉬니까 괜찮아?”
어느새 돌아오신 강사님이 나를 부르신다. 얼른 자전거를 출발시키고 대열에 합류했다. 다른 분들은 힘들지도 않을까? 다들 끝까지 페달을 밟는다. 그러나 나는 안녕하지 못했다. 중간에 한 번은 페달에서 양 발이 미끄러져 자전거를 멈추었고 내리막에서 너무 무서워 비명을 질렀다. 대열에서 떨어질까 봐 페달을 밟은 덕분에 처음 장소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저번 수업시간에 자전거 도로에 나갔던 분들이 왜 말이 없었는지 궁금했었는데 오늘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너무 힘들어 말할 기운도 없었던 것이다. 트랙 위를 달리는 것은 도로를 달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쉽다는 것을. 겨우 습작을 쓰다 공모전에 한 번쯤 내본 경험이랄까. 대학에서 인턴만 하다 신입사원으로 며칠 출근한 기분이랄까.
수업이 끝나고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장암 쪽으로 가는데 언덕 올라가다 죽는 줄 알았어. 나만 힘든 게 아니었는지 같이 가던 분들도 다 쉬고 갔어. 진짜 엄청난 경험이었지. 나도 라이딩하는 기분을 알 것 같아.
-장암 쪽으로 갔다고? 그쪽에 언덕이 없을 텐데.
친구의 말에 나는 발끈했다.
-진짜 언덕 엄청 높았어.
- 그래. 힘들었구나. 한강 쪽으로 가면 오르막이 꽤 있는데 장암 쪽으로 가면 평평해. 내일 다시 한번 가보면 아마 느낌이 다를지도 몰라. 오늘은 처음이라 더 가파르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자꾸 타다 보면 그 정도는 신경 쓰기도 전에 휙 지나가버릴 거야.
아참, 돌아오기 전에 나는 자전거 안장을 조금 더 높였다. 확실히 페달 밟는데 덜 힘이 들었고 스피드도 쉽게 올랐다. 체력이 떨어져 끝까지 못 달릴까 걱정하다 보니 넘어질까 하던 걱정은 저만치 사라진 덕분이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마음을 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를 쓴 잭 캔필드는 ‘잭 캔필드의 응원’에서 이런 말을 적었다.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꿈꾸지 않을 때뿐이다.
나도 한동안 꿈을 꾸었다. 불가능이라 여겼던 것들을 이겨내고 싶은 꿈을. 그 첫 번째 시도가 바로 ‘자전거 타기’였다. 처음에는 중심도 잡지 못했던 것을 계속 연습하니 자전거 도로까지 나올 수 있었다. 꿈을 이루자고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꿈을 꾼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어 낸 순간,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에너지로 다가왔다.
총 8번의 수업 중 7번을 채웠다. 그리고 마지막 하루만 남았다. 내일은 무엇을 이겨내 볼까? 그리고 어떤 꿈을 더 꾸어볼까? 하루를 더 살아보면 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