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배우기

여섯번째 수업; 비교하면 불행해진다

by 영인

신은 인간이 힘든 인생길에서 수고와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도구로 자전거를 만들었다.

- 아인슈타인



어제 아침을 안 먹고 나가 혼났던 탓에 오늘은 아침밥을 열심히 챙겨 먹었다. 날씨도 좋고 기운은 더 좋다. 오늘은 코너링을 더 멋지게 해보자 싶다. 어제 넘어질 때 다친 무릎에 멍이 들었지만 그 정도쯤이야, 웃으며 넘겨본다. 어젯밤에는 친구에게 전화로 코너 돌았던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코너링을 잘하는 팁이 있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팁? 무슨 팁? 그냥 핸들을 가고 싶은 쪽으로 꺾으면 돼. 그다음은 몸이 알아서 하는 거야. 그 부분은 몸에 맡겨 둬야지. 모든 걸 생각해서 통제하려니 더 복잡해지는 게 아닐까?”

한다. 평소에는 말이 많지 않은 편인데도 가끔 입을 열면 해탈한 스승님 같은 말을 하는 친구라 이번에도 귀가 솔깃하다. 오늘은 핸들만 돌리고 몸은... 몸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둬 보리라 다짐한다. 강사님들이 권하신 대로 오늘은 장갑에 고글까지 갖췄다.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더 잘 탈것만 같다.




콧노래를 흥얼대며 자전거 대여소 앞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한 수강생 분들은 이미 자전거에 올라 연습하고 계신다. 나도 자전거를 받고 탈 준비를 했다.

“오늘은 잘 타는 분들만 길에 나가볼 겁니다.”

언제 나타나셨는지 강사님이 말씀하셨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처음 수업을 신청할 때 커리큘럼을 읽은 기억은 있었다. 여덟 번째 수업에는 전원이 도로에 나가 라이딩을 한다고 적혀 있었다. 첫 번째 수업에 올 때만 해도 자전거에 탈 수 있을까만 생각했을 뿐 도로에 나간다는 건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가만있자, 오늘은 여섯 번째 수업 날이다. 여덟 번째 수업은 아직도 멀었는데 싶다. 물론 길에 나가 타려고 자전거를 배우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아직은 내 실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도로에 나가는 게 두렵기도 했고.



‘ 잘 타는 분들만 나가겠지.’

애써 강사님의 말을 흘려보내며 자전거에 올랐다. 트랙을 돌고 코너링을 한다.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핸들만 꺾고 내 몸이 하는 대로 맡겨 본다. 음. 그러나 내 몸은 어디가 고장 난 것처럼 뭘 하려 들지를 않는다. 결국 강사님의 설명을 곱씹으며 어제 연습했던 것을 다시 해 보는 수밖에 없다. 모두 줄을 서서 트랙을 다섯 번쯤 돌았을까 싶은데 강사님 한 분이 줄을 끌고 달려나간다. 그 뒤를 따라 달리던 분들이 트랙 밖으로 나가더니 곧 자전거 도로 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갈까 하다 그냥 비켰다. 대신 트랙을 돌았다. 한 시간 동안 어제 한 것을 되풀이했다.


나라는 사람은 욕심이 많지 않다. 돈이나 명예에도, 명품 가방, 보석에도 별 관심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글쓰기, 독서, 커피, 소소한 여행, 그리고 작은 행복감들이다. 반면에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어제와 같은 오늘’이다. ‘어제의 나 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오늘의 나’ 였으면 하는 게 내 인생의 모토다.

그래서 였다. 어제 돌던 트랙을 계속 돌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제와 똑같은 연습만 하고 수업이 끝나겠구나 하는, 어찌 보면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엄습해 왔다. 겁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남들은 다 타는 자전거 하나를 못 타서 자전거 도로에 못 나가는 게 바보 같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보니 트랙을 여러 번 돌았다.

“여러분!  모두 멈추고 쉬세요!”

두 분 계신 강사님 중 ‘잘 타는 분들’을 데리고 도로에 나가신 강사님 말고 나가지 않은 (못한) 우리와 함께 계셨던 강사님께서 소리치셨다. 자전거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도로에 나가지 않은 분들이 나 말고도 삼십여분은 남아계셨다. 순간 다행이다 싶다. 나만 도로에 못 나간 건 아니었구나 해서다. 평소에 운동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못한다는 쪽에 들며 기분 좋기도 어렵다.

“여러분! 못 나가서 속상하지요?”

강사님의 말씀에 그만 울컥 해졌다. 자전거 도로에 나가 탄다는 것, 이게 뭐라고 못하니 속상하고 막상 하자니 겁이 난다.

“여러분은 아직 잘 못 타서 나가면 위험해요. 나가지 말고 지금은 연습하고 다음 주에는 나가도록해요. 알겠지요?”

참, 우습게도 속상한 감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강사님 말씀 몇 마디에 말이다.

“도로는 위험해요. 연습을 충분히 안 하면 나가서 다친다고요. 나가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나갈 준비를 잘하는 게 중요한 거지.”





작년 여름까지도 장편 소설을 한참 쓰고 있었다. 쓰던 나도 지루해지는 이야기를 숙제라도 하듯 쓰고 또 써 내려갔다. 남자 주인공은 우유부단하고 바람둥이였으며 이기적인 멍청이였고 여자 주인공은 그 남자 주인공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매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캐릭터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왜 내가 그런 것을 썼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어쨌든 쓰고 또 쓰던 소설을 때려치운 건 그 소설이 소설적으로 너무도 소설적이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 탓이었다. 소설이라면 현실과 달라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매혹적이어야 한다. 읽고 싶고 듣고 싶은, 생각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그 소설은 그렇지 못했다. 소설 쓰기를 접어두고 한가롭게 놀고 있는데 친구가 불쑥 물었다.

“너 요즘 왜 소설을 안 써?”

“그냥. 맘에 안 들어서 접었어.”

“그래? 그럼 다른 소설이라도 써야지. 직접 쓰지 않더라도 머릿속에서라도, 생각안에서라도, 보이는 것 듣는 것 모두 소설을 써야 해. 넌 소설가잖아.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고 소설가가 되기를 원하는. 그렇지 않니?”

“그래. 나 소설가야.”

머쓱하게 대답한 그날 밤 나는 내 SNS 계정의 프로필에 ‘소설가’를 적어 넣었다. 아직은 초보 소설가라는 말도 뺐다. 나는 초보 소설가이므로 내 글이 서툴러도 애교로 봐달라는 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 나는 소설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 작은 것들, 느낌들, 생각들을 적거나 기록해 두려고 애썼고 낯선 책들 안에서 뭔가를 찾아보려 떠돌았다. 그리고 강사님 말씀을 들었을 때 문득 작은 희망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나가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나갈 준비를 잘하는 게 중요한 거지.”



그랬구나. 나가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갈 준비가 잘 되면 언제든 나갈 수 있는 거다. 만약 나갈 준비만 하고 있다 결국 나가지 못하고 끝나면 어떻게 될까? 그 준비란 걸 언제까지 해야 할까? 그다음에 떠오르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우리는 트랙 위를 다시 달리고 달리며 ‘준비’를 계속했다. ‘나가지 못하고’ 계속 트랙에서만 달린다면 어떻게 될까? 매일 트랙 위를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는 악몽을 꾸게 될까? 아니, 언젠가는 트랙을 벗어나 나가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 날이 언제든, 살아만 있다면.



수업이 끝나기 훨씬 전에 도로에 나갔던 팀이 돌아왔다. 트랙에 남아 연습하던 우리는 그분들에게 어땠냐고 재잘거리며 물었다. 그러나 그분들은 말이 없다. 참 이상하다고 느껴질 만큼. 어쩌면 도로에 나가지 못한 우리가 속상할까 봐서 배려하느라 그런 게 아닐까? 뭐, 그렇게까지 신경 안 쓰셔도 될 텐데 싶다. 우리도 언젠가는 나갈 거라고요. 준비가 아직 안 되었을 뿐.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 카톡을 했다.

- 다음에는 도로에 나가야 할 것 같아. 걱정돼. 무섭고. 내가 할 수 있을까?

- 도로에서 탈 수 있어야 자전거를 탄다고 할 수 있는 거야. 나랑 한강에서 커플 자전거 타기로 했잖아. 그 생각만 해.

-응. 알겠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전거 도로를 내려다보았다. 씽씽 멋지게 달리는 자전거 라이더들이 어느 때 보다 위대해 보인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할 테니, 씽씽 달리며 여유 있게 웃어 보일 테니,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조금만 더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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