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월요일이다. 지난주 화요일 수업이 끝나고 나서 다음 수업까지 일주일이나 남았다며 안심했던 게 무색할 만큼 일주일이 빨리 돌아왔다. 지난주 화요일에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나는 이미 감격에 젖어 있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양 발을 자전거 페달 위에 놓고 겨우 넘어지지 않으며 앞으로 직진하는 수준이겠지만 평생 자전거를 못 타던 나에게는 엄청난 기적에 가까웠고 ‘과연 내가 지금 타는 것보다 더 잘 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주말에 만난 친구는 다음 수업부터는 넘어질 일이 많을 거라며 그때를 대비해서 자전거 라이딩용 장갑을 끼는 게 좋을 거라고 지나가듯 말했다. 귀가 얇은 나는 당장 장갑을 샀고 덕분에 월요일 아침에는 장갑을 끼고 수업에 나갈 수 있었다.
가을이다. 아니, 겨울이다. 마지막 끄트머리만 남은 가을, 추워지기 시작한 가을 길을 걸어 ‘자전거 대여소’에 도착했다. 이젠 슬슬 낯이 익은 수강생분들이 나에게 아는 척을 하셨다. 자전거를 출발시키고 모두 줄을 지어 트랙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 몸이 풀리지 않아서인지 자전거에서도 내 관절에서도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것 같다. 구체관절 인형처럼 어색한 동작으로 트랙을 몇 바퀴 돌았다. 저번 주에 두 시간을 달렸던 그 트랙 위를 다시 달리는데도 불구하고 자전거는 여전히 삐툴 삐툴 휘청휘청 이리저리 흐른다. 내가 자전거를 조종한다기보다는 자전거가 나라는 인물을 싣고 맘대로 달리는 것만 같다. 나는 자전거 위에 앉아 내 몸이 넘어지지 않는 것만도 감사한 마음으로 핸들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내 두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자전거 페달을 굴리고 있음이 꿈만 같다. 손이 약간 시려도 상관없다. 나에게는 새로 산 장갑이 있지 않은가.
줄을 서서 타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긴다. 내 앞에서 달리던 분이 넘어진다거나 중심을 잃고 멈추게 되면 큰 일이다. 나도, 그다음 사람들도 넘어지거나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넘어지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판단도 없이 멈추면 넘어질까 봐서 그저 열심히 페달을 밟는 수준이다 보니 솔직히 트랙 위 우리들은 한 명 한 명 달리는 폭탄들처럼 위험하다. 그러나 모두 다칠까 봐 조심하며 달리고 있고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 강사님이 두 분이나 함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졌다. 처음에는 다치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연습하다 보니 ‘설마 다치겠어?’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직진은 쉽다. 속도도 내보고 천천히도 타본다. 한 손을 살짝 놓아보기도 한다. 그러나 트랙 끝 부분, 둥그렇게 돌아가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중심을 잃거나 넘어질 뻔했다.
“왜냐 하면, 말이지. 몸이 너무 꼿꼿해서 그래. 기울여봐. 왼쪽으로 돌아가야겠다 생각하면 몸을 왼쪽으로 기울여야지. 자전거 핸들만 돌려서는 안 돼. 자전거 자체가 돌아가야 해.”
강사님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넵!” 하고 대답은 했지만 순간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은 많다. 자전거 위에 앉아 혹시라도 기울어지면 넘어질까 봐 벌벌 떨고 있는데 코너 하나를 돌자고 몸을 기울이라니 나에게는 지나친 요구가 아닌가. 몸을 기울이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가뜩이나 말 안 듣는 자전거다. 튕겨져 나가 자전거 도로 바로 옆 개천에라도 빠지면 어떻게 하나.
“속도를 줄이고 몸을 기울이면 돼.”
속도를 줄인다. 그리고 몸을 기울인다. 그러나 여전히 코너를 돌 아지지 않았다. 돌 아지지 않았다는 말은 자전거가 중간에 확 꺾인다거나 오히려 돌던 쪽 밖으로 나가버린다는 의미다. 덕분에 몇 번이나 다칠 뻔했다.
“왼쪽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하면 눈은 왼쪽을 바라보고 몸은 왼쪽으로 기울이고 오른쪽 다리를 쭉 펴서 페달을 밟고 왼쪽 다리는 구부려 중심을 잡아야지.”
강사님의 설명에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오른쪽 다리를 쭉 펴고 페달을 밟고 왼쪽 다리는... 까지 생각했는데 이미 코너를 돌고 있다. 결국 이번에도 엉망으로 돌고 말았다. 물리학적으로는 ‘구심력’을 이용해 돌아가라는 뜻이다. 구심력을 적절히 이용해 돌면 운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줄일 수 있다는 거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은 모른다. 생각으로는 고개를 돌려 왼쪽을 바라보려는데 내 고개는 앞만 보고 달리기도 버겁다. 말 그대로 내 생각과 몸의 투쟁이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코너를 돌아간다는 생각만 하며 트랙을 돌다 보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장점은 내가 몇 바퀴를 돌았는지 잊는다는 것인데 그 덕분에 두 시간 내내 트랙을 돌면서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단점이라면 역시 내가 몇 바퀴나 돌았는지를 잊는 바람에 지칠 대로 지치고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 시간 반 정도 지나고 나서 코너를 돌다 한 번 넘어졌다. 내 뒤를 따라오는 분이 다칠까 봐 얼른 일어나 다시 타려는데 핑 돌았다.
“왜 이렇게 기운이 없지?”
혼잣말을 하다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다. 아, 아침을 안 먹고 나온 것이다. 평소처럼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잔만 마시고 자전거를 탔구나 깨닫고 나니 갑자기 기운이 더 빠져나갔다.
심생즉 종종법생 심멸즉종종법멸"(心生卽種種法生 心滅卽種種法滅)
마음이 일어난 즉 갖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한 즉 갖가지 법이 사라진다.
** 種씨앗, 물건
種種 : 가지가지 물건들
종종법생이라 할 때 종은 從(좇다, 따르다)이 아니라 種이다.
** 일어난 즉 : 이 말을 그냥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또는 "마음이 일어나니, " 또는 "마음이 일어날 때" 등으로 새기면 마치 마음과 법이 인과관계처럼 느껴진다. 마음과 법은 인과관계가 아니다. 마음과 법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뜻으로 卽을 쓴다. 마음이 일어난 후에 법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일어나는 그것이 곧 법이 일어나는 것이란 뜻이다.
이 글귀는 ‘원효대사 해골물’로 더 유명하다. 젊은 시절 원효대사는 의상대사와 함께 현장 법사 밑에서 공부하러 당나라로 떠났다. 경주를 떠난 두 사람은 몇 날 며칠을 걸어 충청남도 직산 지방에 이르렀다. 어두워져 동굴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한 밤중에 목이 말라 잠에서 깬 원효 대사는 깜깜한 동굴 주변을 더듬다가 그릇에 담긴 물을 발견한다. 그 물을 아주 달콤하게 마시고 갈증을 풀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지난밤에 그가 마신 물은 해골바가지에 고여 있던 더러운 물이었다.
“해골에 담긴 물은 어젯밤이나 오늘이나 똑같은데, 어이하여 어제는 다디단 물이었던 것이 오늘은 구역질을 나게 하는가? 그렇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달라진 것은 내 마음일 뿐이다. 진리는 결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원효 대사의 말씀 대로다. 아침을 안 먹은 걸 깨닫지 못했을 때는 힘들지 않게 타던 것을 내가 아침을 먹지 않았음을 기억해 내는 순간부터 극기 훈련처럼 힘들어진 것이다. 결국 나는 남은 15분 동안 두 번을 더 넘어지고 말았다. 수업이 끝나고 자전거를 끌고 대여소를 향해 가는 동안 그 언덕은 산처럼 높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얼마나 다행인가. 다섯 번째 수업도 잘 마쳤다. 지쳤고 넘어졌지만 장갑 덕분에 다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 돌아가는 길에 친구에게 카톡을 했다.
-우리 한강에서 커플 자전거 탈래? 나 이제 코너링도 잘해.
-아직 안돼. 수업 여덟번 다 마치면 같이 타자. 그때까지는 열심히 연습하도록!
운이 좋은 날이다. 수업 다섯 번을 채우도록 운이 좋았으니 남은 세 번도 운이 좋았으면. 언젠가는 운만이 아니라 실력도 좋아지는 날이 올 거라 믿으며 다음 수업을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