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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Dec 09. 2019

그 겨울의 우동

어묵우동국수

이 아라가  버스 정류장에서 놓쳤던  8번 마을 버스를 다시 만난것은   12단지 모퉁이를 막 돌았을 때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마을 버스가  아파트 단지를  따라  구불 구불  돌아다니는 동안   아라는  단지내  샛길을  따라  직선으로  걸어왔다.   단풍이  붉게 물든 오후에  하늘은 먹구름으로  잔뜩 흐리다.   비 아니면  눈이라도  흠뻑  뿌릴것만 같은  날씨.  차가운  가을 공기가  그녀의 뺨을 때리고  지나갔다.   아라는  검고 긴 패딩 호주머니에  넣고 있던 오른손을  빼서  자신의 볼을  감쌌다.  패딩 호주머니에 넣고 있었는데도  차갑게 얼어있던  손이라  차가운 볼을  덥혀주지 못한다.   대신  패딩에 달린 후드를  머리에  덮어쓰고   발을 동동거리듯  빨리 걸어가기 시작했다.     추위라고 하기에는  덜 차가운 바람이지만  등 줄기에  오한이 내리기는  충분한 한기였다.   어깨까지 으슬으슬  떨려왔다.   그녀의  낮은 굽 로퍼가  12단지 앞 상가에서  멈추었다.    밥을 먹을까,  아님  그냥 갈까  생각하는 중이다.    패딩 주머니에  들어있는 그녀의  지갑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신용카드 몇 장에  지폐 몇장,  동전  몇개.   그게 다였다.   지갑을  흔들면   돈 보다는 먼지가 떨어질 것 같은  기분.  말도 안되게  허기진  지갑은  그 꼴도  허접하게  낡아 있었다.    돈도 없고  배도 고픈  주인을  그대로 닮았다.   아라는  패딩  주머니 안에서  지갑을  꼬옥 쥐어 보았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망설이던  그녀의 손이  패딩 주머니에서  빠져 나와   식당 문을  잡아 당겼다.   따뜻한 공기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그녀를  덮쳐왔다.




따뜻한  식당에  들어서자 마자 처음으로 눈에  띈 것은  벽에 걸린  인삿말이었다.   1969년 부터 의정부에서 처음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로 시작된.   1969년 이라니,  그녀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생긴 식당이었다.     그녀도  이젠 서른 하고도  한 살이다.  이 겨울이 지나면  서른 둘이 되겠지.   결혼도  아직이고   성공은  더더욱 아직인데  나이는  아직이 없다.    언제나 먹던  '어묵 우동 국수'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았다.

"오늘은 혼자세요?"
바로 옆 자리에  혼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물어온다.   그 질문에  이상하게도  가슴 한 쪽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네.  혼자 왔어요."
"그러셨구나.   한동안 안보이길래  혹시  결혼해서  멀리  이사갔나 했네요.  두분이서  아주 잘 어울려 보여서......."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낯이 익었다.  아,  그렇구나.   동네 도서관 사서다.    동그란 얼굴에  안경을 쓰고 있어서  '나는 이 도서관의 사서라 행복해요.'라고  안경에  걸어둔 것 처럼 보이는 사람이라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유난히  책벌레였던  전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마주친 것도  그 도서관이었다.    책을 좋아하던  남자친구,  아니  전 남자친구는  유난히 국수도 좋아했다.   매운 음식을  잘 못먹고  너무 뜨거운 것도 잘 못먹었다.       그런  그를  만난것은  근처  카페에서 하는  독서 모임에서 였다.   사는 곳이 가까워   자주 어울렸고    사귀기 시작하고 부터는  일주일에 두어번  저녁에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가  자주 먹던  국수가  바로  어묵 우동 국수였다.   그와 만날때면  그녀는  3,000원짜리 김밥을 ,  남자친구는  5,000원짜리  어묵우동 국수를 시켜  서로 반반씩 나눠 먹었다.   미래가 불확실한 예비 디자이너 두 사람은 가난했고 불안했고 그러나 서로를 사랑했다.  그가 좋아하던  음식이  어느새  그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다음에도  그녀는 이곳에서  어묵 우동국수를 곧잘 먹었다.      이름은 우동국수지만  면발은  가늘다.   국물은  짜지 않고   담백하다.   혀를 휘감는 화려함도 ,  드라마틱한  반전의 향도 없다.   어묵향이 나는  구수한 국물에   먹고 나면 속이 편한  국수 한그릇,  그 뿐이다.


   창가에  아라의 얼굴이 거울처럼  비친다.   내내 흐리던 하늘이 기어코  눈을 뿌리기 시작했다.
"어머나,  눈이 내리네요.  올해 첫눈인가."
아주머니가  국수를 먹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첫눈이다.
첫 눈이 오는구나.

수입의  반을  적금에 넣고나면  생활은 빠듯하다.    그 생활비를 쪼개  시골 부모님 용돈으로 보냈다.   대신  커피나  케익,  약간 비싼  가방같은 것들을 희생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도 지쳐간다.   사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릴까  생각했었다.    세상 뭐 별 거 있어?  다 끝내 버리면 간단하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도   지긋지긋하게  사랑하던  전 남자친구도   이제는 버거운 짐일 뿐이다.   
"너같은 애 때문에  우리 회사가  피해를 보는 거라고."
그녀의 얼굴위로  서류 뭉치를 던지던  실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녀의  얼굴 위로 흩어지던  서류 종이들.  바라보며  생각했다.   눈 오는 것 같네. 라고.

전 남자친구가   잠꼬대로  어떤 여자의 이름을 불렀을때도  눈이 왔었다.    잠결이었지만  그 이름이  천둥소리처럼  그녀의 머리를 강타했다.   잠에서  깨어나  종이인형처럼 자고 있던 남자친구를 흔들어 깨웠다.
"하영이가 누구야?"
전 남자친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침대 모퉁이에 목각인형처럼 앉아 있었다.
"우리  함께  6년이야."
그녀가  말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은 헤어졌다.    그 이후에도  그녀는 곧잘  이곳에서  '어묵우동국수'를  먹었다.   국수를 먹으면서도  전 남자친구를 떠올리지 않았다.  기억조차  지워버린 것처럼   아프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뵈니까  반가워요.   이 년 만이죠?"
아주머니는  그녀를 향해  다시 말을 걸었다.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에  따듯한  목소리.    이년만에  보는 얼굴이었나,  그렇게 보니  아주머니가  많이 늙은 것 같기도 하다.
"도서관에  갔었는데   안계셨던 것 같아요."
아라의 말에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좀 안 좋았어요.   병원에 입원 했다가  퇴원도 했다가,   항암치료 하느라.   안 죽고  다시 일하러  나왔으니  고마운 일이네요."


아주머니의 말에 뭐라고 대답할까 궁리하다 불쑥 튀어나왔다.  꾹꾹 눌러담기만 했던 진심이.  아픔이.


"저  오늘  직장에서 짤렸어요.   이 직장에서 일한지 11개월 됐는데,  한 달만  더 하면  1년 되는데,  그럼  퇴직금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텐데,  1년 딱 채우고 나서 제가 먼저  그만 두려고 했었거든요.  근데  회사에서 먼저 선수를 쳤네요."
"아이고,  아까워라.  퇴직금 받았더라면   다 접어두고  여행이라도 다녀올 수 있었을텐데."
"그러게요.  아참,  그리고  저번에 저랑 자주 왔던   그 사람이랑 저,  헤어졌어요.  헤어진지 1년 넘었는데  헤어지고 잘 살면 될걸   얼마전에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도  그 사람 얼굴이 생각 안나더라고요.  심지어 이름도.  이름이....  기억 나지 않더라고요."
"기억 나지 않는 건  기억하지 말아요.  기억하려고 애쓰지 말아요.  잊었더라도  어느날  기억날 수도 있어요.  그렇게 기억이 나면,  그리우면  울어주고   잊혀지면   잊어버리고."

"그래도 제가 기억을 못하면 그 사람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미안하잖아요. 이렇게라도 살아있다는게.  그렇게 좋아하던 우동국수를 저만 먹고 있다는게."

아라의 말에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그럼 오래오래 샇아야겠네요.  그 사람을 기억하면서. 다시 행복해질때까지.  저도 그렇게 아프고 나서 돌아보니 사는게 참 별거 없더라고요.  그때는 너무 힘들었어도 어떻게든 살아만 있으면 지나가 지더라고요.  그냥 앞만 보고 계속 가다보면 끝에 닿더라고요."



아라는 어묵우동국수를  한 젓가락 입에 다시 넣었다.   후룩  빨아 입에 넣고 씹는다.    국물에서는 깊은 해물 맛이 나고   짜지 않아  좋다.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죽고 싶도록 힘든 사람에게는  뜨끈한 어묵 우동국수가  제격이다.   그녀는  그제서야  볼을 타고 흐르기 시작한 눈물을  냅킨으로 슬쩍 닦아냈다.    하늘에서는  첫 눈치고  제법 굵은  눈송이가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우동은 맛이 있었다.    차가운  그녀의  원룸  오피스텔로  돌아가더라도   죽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을 것 같은,  적어도 몇 번은 더  '어묵우동국수'를  먹으러  이곳에 올 것 같은.
첫 눈오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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