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 월요일 이야기

이혁의 진술 (2)

by 영인

그날은 계획대로라면 그의 행복이 완성될 순간이었다. 다 만들어진 가방을 드디어 배송하는 날이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주문자의 주소를 확인했다. 주문을 받고 수십 번 확인한 주소였지만 꼼꼼히 적어 다시 두 번 확인한다. 꼼꼼히 포장해 둔 가방을 박스에 담기 전에 주문 수량도 다시 확인했다. 좋아, 완벽하다... 가 아니다.

‘다이아몬드 가방 2개, 진주 가방 1개.’

그는 눈을 한 손으로 두 번 비볐다. 눈을 크게 뜨고 또 들여다봐도 화면 속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어젯밤 확인할 때까지만 해도 2였던 그 숫자가 왜! 1로 변해있는 것인가.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인가, 아니라면 자신이 실수로 숫자를 바꾼 것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솟구친 불안함에 그는 가슴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를 뭔가로 강타당한 듯 어지러움이 덮쳐왔다. 그는 한동안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혁은 주문자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전에 몇 번이나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진정하려고 애썼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겨우 핸드폰을 붙잡은 손이 덜덜 떨린다. 전화벨이 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대답이 들려왔다. 가느다란 여성의 목소리다.

“저, 여기는 김 이혁 수제 가죽공방입니다. 주문하신 가죽 가방이 완성되어서 전화드렸습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인사했다. 상대는 “네! 무슨 일로?” 하며 말꼬리를 흐린다.

“주문 수량이 잘못된 것인가 해서 말씀입니다.”

“아, 네. 전부 3개 주문한 거 말씀하시나요? 다이아몬드 2개, 진주 1개요.”

“그 숫자가 맞습니까?”

“네, 맞아요.”

“제가 잘 못 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주문 수량이 다이아몬드 2개, 진주 2개 모두 4개이었거든요. 오늘 배송하려고 체크할 때는 진주가 1개였고요.”

여자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크게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사실은 저와 엄마, 두 딸이 쓰려고 4개를 주문했었는데 작은 딸아이가 가방을 받을 수 없게 되었어요. 만들기 전에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부주의했어요. 죄송합니다. 주문을 바꾼 것이 오늘 새벽이라 4개를 다 만드셨나 봐요.”

“네, 어제저녁에 확인할 때 까지도 4개이었으니까요.”

여자는 이혁의 말에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러시면 제가 가방 4개 값을 내겠습니다. 그렇지만 가방은 세 개만 보내 주세요.”

여자의 말에 이혁은 잠시 할 말을 잊은 채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 제가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끊겠습니다.”

“가방 4개를 다 보내드리면 안 될까요? 물론 값은 3개 것만 받겠습니다. 이미 만들어 버린 거라 제가 한 개만 갖고 있기가 좀……. 그래서요.”

여자는 이혁의 간절한 목소리에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말씀은 감사한데 그 가방을 받을 아이가 이틀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오래 병원에 있었고 모레가 생일인데 결국 스물여섯 생일은 천국에서 보내려나 봐요. 아이가 그 가방을 직접 골랐었죠. 그래서 가방을 받으면 아이 생각이 많이 날 것 같고 제 마음도 무척 힘들 것 같아요. 다른 분에게 파셔도 되고 그게 싫으면 거저 주셔도 되니 알아서 처분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여기서 여자는 말을 잠시 멈추고 침묵을 지켰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진정시키고 있는 것 같다고 이혁은 생각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여자가 겨우 말을 이었다.

“오늘이 아이 장례식이라 지금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전화로 직접 체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양식 진주를 열여섯 개나 장식한 예쁜 가방이었다. 그 가방이 한 개, 오도카니 남겨졌다.

“그걸 작업실 선반 아래에 처박아 두면 어떻게 해요? 예쁜 가방이니까 카페에 내놓아 볼게요. 어쩌면 팔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내의 말에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가방 ‘한 개’를 어찌해 볼 기분이 영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쯤 카페에 내걸려 있었어도 가방을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으로 아내는 가방을 작업실 창문가에 두겠다고 했다.

“지나가던 사람이 보고 살 수도 있지 않겠어요?”

이번에도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대신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핑계로 이틀이나 작업실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창문가에 놓인 가방을 사겠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며칠 후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아내는 생각난 듯 말했다.

“그 가방 말이에요. 누가 카페 앞에 내놓고 잊어버린 모양이라고요. 밤새도록 카페 앞에 놓여 있었다나 봐요. 1층 약국 약사님께서 오후에 비가 온다는데 문 밖에 놓아둔 가방이 젖으면 어떻게 하냐고 전화해 주셨지 뭐예요? 분명히 창가에 놓아두었는데 가방이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어떻게 카페 밖에 놓여있었을까요?”

이혁은 가방에 발이 달린 건 물론 아니라고 대답하는 대신 역시 고개만 끄덕였다.

그날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 다음 날 아침 비가 갠 후에 이혁의 가방을 가져온 사람은 이 순간 씨였다. 그녀는 같은 건물 1층 에서 순댓국집을 하고 있었다.

“재활용품 쓰레기통에서 그 가방을 찾았다는군요. 누군지 가죽 가방이 비에 젖을까 봐 그랬는지 그야말로 꽁꽁 쌌더래요. ”

“그야……. 좋은 가죽으로 만든 데다 양식이지만 진품 진주가 달린 가방이니까 비에 젖을까 봐 그랬지.”

“당신은 참.... 누가 버린 것인지 아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비싼 가죽 가방이 비에 젖으면 상품 가치가 확 떨어지는다는 건 어린아이들도 아는 사실이라고. 내가 알기는 뭘 안다고 그러나.”

이혁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자 아내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

“이상입니다. 이게 다예요.”

김이혁은 별로 말이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긴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그렇듯 목이 잠겨 기침을 해가며 이야기를 끝마쳤다. 가능하면 짧게 끝내려 했지만 이야기가 길어져 어느새 삼십 분도 넘게 지나고 말았다.

“비 오는 날 밤에 굳이 산에 가서 묻은 가방을 왜 다시 파 오셨습니까?”

경찰이 물었을 때 그는 한동안이나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진심을 말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함께 사는 아내도 마찬가지다.

“그게 말입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신발이며 삽에 진흙이 잔뜩 묻어있더라고요. 그걸 다 씻고 자려는데 밖에는 비가 계속 내리더군요. 비가 내리다 뿐입니까?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더니 폭우가 쏟아지는 겁니다. 빗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그랬는지 잠이 들어야 하는데 뒤척이다 보니 또 그놈의 가방 생각이 떠오르는 겁니다. 내가 또 가방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서 생각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도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비 오는데 묻어둔 곳이 무너지면 어떻게 할까, 가방 묻을 구덩이를 너무 얕게 판 것은 아닐까, 가방이 드러나면 어떻게 할까, 그 가방이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오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보니 잠이 다 깨었습니다.”

“그래서요?”

“다시 가서 가방을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날이 개고 맑은 날에 가방을 다시 묻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에는 깊이 묻어버려야지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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