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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7. 2019

1주 월요일 이야기

이혁의 진술

김이혁(金異革)은  서울 외곽의  조용한 동네에서  아내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지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잠잘 때뿐이었다.  그들 부부는  지난 이십삼 년 동안 아파트에서 나와  오분 정도를 걸어서  단지 내 상가 건물로  출근했다.  건설회사가  아파트를 지을 때 함께 지은 상가 건물  1층에서는  그의 아내가 작은 북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북카페 테이블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면 지하철 7호선 중화역 2번 출구가  무척 잘 보인다고 했다.  이혁의 작업실은  아내의 북카페 4층 구석에 있었는데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작업실에서 지내고 있었다.   작업실은  남향이었고 커다란 창문을 통해 거의 하루 종일 햇빛이 들었다.   그의 작업실을  고른 것은 아내였다. ‘손으로 직접 가죽 가방을 만드는 그가 섬세한 작업을 하기 위해 특별히 밝은 곳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김 이혁은 꽤 유명한 가죽 공예사다. 지난 삼십 이 년 동안 그가 만들어낸  가죽 제품은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았고  탁월했다. 꽤나 비싼 가격을 붙여도  곧 팔려나갈 만큼 인기가 있었다. 그가 만든 가방은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가방들과 같지 않았다.  어딘지 모를  불안함과  우아함,  조급함과  쓸쓸함을 머금고 있었다.  가방 하나만  놓아두어도  그 독특하고 은은한 디자인 덕분에 자꾸만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상한 것은  그 가방들이  어떤 스타일의 옷에도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었다.  가방을 소지한 사람의 스타일에  녹아 스며들 듯  가방은 그 사람 자체가 되어버린다.   얼마 전까지는  가까운 곳에  가방 가게를 갖고 있었는데  몇 년쯤 전  어떤 친절한 고객이 알려준 대로 웹사이트를 만든 이후  가게는 문을 닫았다.   가죽 가방 샘플을 만들어 사진을 찍어 올리면  사람들이  그의 웹사이트를 통해 주문을 하는 시스템이라  관리도 쉬웠다.    그래서  매일 아침 작업실에 들어가면  가장 처음으로 하는 일이  컴퓨터 확인이었다.             

김이혁은   거의 평생을 가죽으로 된 가방을 만들며 살아왔으므로  그의 관심 절반은 가죽 가방에 대한 것이었다. ‘가죽’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보면  벌써부터 시큼한 새 가죽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가족’을 쓰려다 실수한 것 같은 모양에 비실비실 웃음이 난다. 그가  ‘가죽’을 너무도 좋아하는 것을 보고  아내는 “당신 이름에 혁; 革(가죽 혁) 자가 들어있어서 그런 모양이에요.”라고 놀리곤 했다.    

그런데 이혁의 관심 나머지 반이  숫자 2에 대한 것임은  그 자신과  그의 아내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이혁은 숫자 2;  즉 ‘짝수’로 된 모든 것에  강렬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애착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일상생활에서도 홀수로 된 것들을 만나면 무척이나 불안해 지고는 했다. 예를 들자면  밥을 먹을 때도  그는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젓가락만 한 쌍을 들고  밥을 먹었다.  젓가락은 짝수고  숟가락은 홀수다.   밥그릇도  국그릇과 함께 있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  옷도 단추가 짝수로 달린 셔츠만 골라 입었고  바지도 양쪽이 똑같은 모양인 것만 입어야 했다.  신발 사이즈도  마찬가지였다.   280을 신으면 너무 헐거웠고  270을 신으면 너무 작았지만  275는 신지 않았다.  그는 다소 헐거워도  280 사이즈 신발을 신었다.  발에는 꼭 맞지만 홀수인 275 밀리미터 신발을 신는 것보다는 헐거워도 마음 편한 280 미리 신발이 더 마음 편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너무 심해요.  모든 면에서  지나치다고요.”

얼마 전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있을 때에도  그의 아내가 말했다.  그가 식탁에 앉은 순간이 낮 12시 23분이었기 때문에 1분 동안은 밥을 먹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꼭 그렇게 살 필요는 없잖아요.  누가 그러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가방만 해도 그래요.  짝수 개수만 만들고  그 개수가 팔려야  다음 가방을 만드는 법칙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거죠? 그 법칙을 지킬 이유는 또 어디에 있고요?”

“그러게 말이야.”

이혁 자신도  아내의 말이 맞음을 안다.  자신이 만든 법칙인데  자신이 지키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인 게 문제다. 

“내 생일이 17일이라  환갑 파티를  16일 아니면 18일에 하자고 했을 때는  이혼 생각도 했었다고요.”

아내는 그 말을 마치더니  들고 있던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놓았고  아직 반도 넘게 남은 밥그릇을 들고 싱크대로 가버리고 말았다.  이혁은 아내의 뒤통수에  말을 던졌다. 

“오늘은  작업이 없어.  가방 네 개만  주문해 주신 손님에게 부치기만 하면 돼.  당신 피곤할 텐데 조금 있다가  카페일 도와줄까?”

“아녜요.  저번처럼  손님들이 커피나 쿠키를  짝수로 주문하지 않는다며 소란 피울 거잖아요.  요즘 손님들은 입맛도 까다로울 뿐 아니라  서비스받는 것에도 익숙해져 있다고요.  커피 한잔만 시키고  두어 시간  죽치고 앉아 있는 게  대부분이고요.  조금이라도 마음 상할 소릴 하면  다시는 안 온단 말이에요.  당신은 작업실로 올라가 보세요.  카페일은 신경 쓰지 말고요.”    

아주 사소한 것들이라도,  어떤 물건이라도 짝수로 끝나지 않으면 괴로웠다. 불안했다.  새로 산 옷을 입고  진창길을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새로 산 신발을 신고  늪지대를  건너가야 하는 기분,  상한 음식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기분이었다. 낭떠러지 끝에 선 아득한 불안감,  절망감까지 느껴야 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유라면 ‘그냥’이었다.  홀수에서 끝나 버리면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숨도 막히고  답답해진다.  짜증스럽고 잠도 오지 않는다.   그런 기분이 들면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몇 번은  아내에게  설명해 보려고도 했었는데  아내라는 이는  전혀 들어먹지 않았다.  대신  예쁜 눈으로  김이혁 씨를  살짝 흘겨보며 

“당신은 지나치게 예민해요.”

하고 일침을 쏘아대는 바람에  그는 작은 소리로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야.”

하고 대답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이십여 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조차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후  다른 사람에게  자신에 대해 설명 한 번 해보려고 했다가도  이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일이다.’ 하고 생각되면  입을 꾹 닫아버리고 만다.             

외모만 보면 머리가 반쯤 벗어진,  작달막한 키에  아랫배가 조금 튀어나오기 시작한 평범한 중년 남자였지만 이혁은 평소에도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았다. 그들 부부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건물은  상가 건물과 걸어서 오분 거리였으므로  집에서 나와  작업실까지는 557 걸음만 걸으면 되었다.  그러나  이혁의 출근길은 아파트에서 나와  상가 반대편을 향해 걷는 것으로 시작된다.  단지 안에 연결된 길을 통해 뒷문으로 나가서  큰길을 향해 걷다가 큰길이 나오면 좌회전,  골목을 만나면 다시 좌회전,  다시 두 번의 좌회전을 하면  작업실이 있는 상가가 나온다.  그의 보통 걸음걸이로 20분,  정확히는 2,230  걸음, 오르막이 2번,  내리막도 2번,  지나야 하는 표지판도  6개.

모든 숫자가 짝수로 끝이 난다.  그 길을 통해 출근하는 날이면  하루 종일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다.  비가 오면  촉촉한 대로,  눈이 오면  춥지만 포근해서  걷는 내내 즐겁고 행복한 길이 되었다.  매일  그는  그 길을 통해  작업실로 출근했다.       

‘가죽 파우치,  여성용.’    

이십일 전, 주문이 들어와 있던 날 아침을 이혁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날 아침에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확인했다.  온라인 홈페이지에 가방 주문이 들어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자세한 내용을 체크했을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환호했다.   두 달 만에  가방 주문이 들어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문자가 가방을 네 개 선택했고 심지어  ‘두 개는  다이아몬드로,  다른 두 개는 진주로 장식해 주세요.’ 하는 메모까지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주문자가 선택한  가방은  그가  최근에 디자인한 제품이었다.  천연 소가죽에 장식으로는 저급이지만  모조가 아닌 진짜 보석을 여러 개 붙였다. 재료가  비싼 것들이라  완제품 가격도  만만치 않다. 뒤집어 말하면  비싼 물건을 네 개나 주문받았으니  앞으로 몇 달 동안은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가방을 짝수로  두 개,  그것도  두 개씩 두 쌍을 주문하다니.  그것뿐일까.  주문자가 적어준 전화번호는  끝 네 자리가 모두 짝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야 말로 완벽한 주문이 아닌가 말이다.  그는 주문을 받자마자  곧바로 가방을 만들기로 했다.  오전 8시 32분에는 아침 커피 한잔하는  습관도  잊어버리고   서둘러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반질반질하게 손때가 묻은, 오래되었지만 깨끗하게 닦인 서랍장  위쪽에서 네 번째 서랍을 열어  가방 도안을 꺼냈다.  도안에 어울리는 가죽을 꺼내고  재단하기 시작한다.  그의 손에 들린 가위가 과감하게,  정확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가죽을 잘라낸다.    평생 동안  손가락 끝까지 굳은살이 생기도록 만지고 또 만진 가죽이 그의 손끝을 간질인다.  가위로 가죽을 자른다.  한번,  두 번.  그다음은 잠시 쉰다.  다시 한번, 그리고 두 번.  좋다.  가위질도,  바느질도 유별나게 잘 된다.  완벽한 주문에  더 완벽한 제품이 짝을 이룬다.  세상에  짝이 없다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일까.  조물주도  음과 양을 함께 만들었고  한글도  짝수인 스물네 자의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졌다.  그도  아내와 함께,  두 명이 살고 있으며  이 집의 동 호수도  모두 짝수로 끝난다.     

지난  이십여 일동 안 이혁은 완벽하게 행복했다.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가방 두 개와  진주 달린 가방 두 개를 완성하는 동안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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