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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Dec 12. 2019

공포의  숨소리

책  에도가와 란포





에도가와 란포 

저자에도가와 란포

출판 손안의책 발매

2017.09.25.









한 달쯤 전  부터 였다.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위층에서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새벽 한시나  두시,  가끔은  서너시에  시작된  소리는  불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며  보통  한두 시간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윗집 사는 사람이  의자를  바닥에  끌고 다니는 것인가  했다.      밤에는 깊이 잠드는 편이라  천장에서  소리가 나도  모르고  지냈는데   어느 날 새벽에는   정말  큰 소리에  깨어났다.     전기톱으로  뭔가를 자르는 소리였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여러 번,  거의  두 시간째  전기톱 소리가 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3 시다.  



참다못해  관리실에  전화를 했더니  경비 아저씨는



"바로 윗집은 비어있는데요.   두어 달  전부터  아무도 안 살아요." 



하신다.   순간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이 집을  구할 때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살던 사람이 갑자기  이사 나가는 바람에  좋은 집이 싸게 나왔다."라는 말이  기억났다.    그  사람도  이런 소리를 듣고  이사 나간 것일까?  지나치게  책을 많이 읽은 탓인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바로  윗집에서 지금 전기톱을  휘두르는  존재는   사람이 아닌 걸까?   그렇다면  뭘까?  혹시라도  귀신?  빈 집에  스며든  사이코패스  ?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데요.  한 번만  와서  봐 주실래요?"


"아니,  그래도  누가  이 새벽에,  이 시간에 전기톱을  돌린답니까?"



경비 아저씨는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총총  윗집을  확인하러 와 주셨나 보다.   곧  전기톱 소리가 멈추더니   위층  복도까지 들리도록   옥신각신 소리가  요란하다.     사람 소리를 들으니  무척이나  안심이 된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집이  내부 공사한다고  말은 들었는데  그 새벽에  전기톱으로  나무토막을  자르고 있을 줄은 몰랐지요.   다른 집들도  다 들었다고,  계속  불평 신고  접수는 되었더랍니다."



공포란   그런 것이다.  보이지 않으므로  멈출 수 없는,   실체를  모르므로  출구가 없는,    낯선  것이므로  두려운.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 기억이 떠올랐다.   인간내면의  공포를  살살 끄집어 내는 이야기가  심장을  조물락 거린다.   요즘  스릴러 물에서는  사이코 패스가  유행처럼  등장한다.   아무 이유없이,  단지 쾌락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인물 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그런 인물이 없다.    살인을  해도  이유가 있고   트릭이 있다.    그 이유를  알기 때문에  독자는  주인공을  가엾게 여긴다.    읽는  입장에서는  참 그렇다.   주인공만  욕할 수가 없다.  남  일 같지 않다.   저런 성격의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런 일을  저질러 버릴지도  모른다는,    자신에게도   저런  욕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을때면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움에   볼을  붉히게 된다.  스릴러 임에도  독자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치밀한  심리학적  구성 덕분이다. 



이 책을  쓴  에도가와 란포는  1894년에  태어난 일본  작가다.   본명은 '히라이  타로' 였지만  '에드거 엘런 포'의  이름에  착안하여  필명을  '에도가와  란포' 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  작가가 에드거 앨런 포 를  그만큼  좋아했다는   의미로  보이는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보다  훨씬  치밀하고   몽환적인  전개가  압권이었다.   이야기의  구성도,  설계도  탄탄하다.  간단한  이야기 전개임에도  어색하거나   부족함이 없다.곳곳에  복선이 깔려 있고  소설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읽는데  무섭고  두려워 하면서도   어떤 구절에는  홀리듯  빠져드는 이유가 있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묘사,   범죄를   저지르기  전과  그  후에   주인공의  심리상태는   지극히  철학적이고   논리적이다.  그것은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지금  당장 일어났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생생한  진행은   작가의  섬세하고  운치 있는 필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곳곳에서  최근에 본 공포물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이 소설이  수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공포를  뛰어넘는   철학적 사유,   독한  욕망과   잔인한  결말은   이 소설이   100년  전에  탄생한  것임을  깜박 잊을 만큼   고급스러운  프레임을  창조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수많은  책과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변주되고  변환되었을  장치들이   그  본모습을  드러내는,   이 책은   쓰디쓴  럼주와  함께  하면  더 근사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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