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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2. 2020

면접시험

3화



내 말에 여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맑은 소리가 구름처럼 하늘로 떠올라 흩어졌다.

“서로를 죽일 수 있는 건 살아있는 인간들 뿐이야.”

여인은 어느새 가득 찬 맥주 잔을 손에 들고 있었다.  

 “마셔라.  네가 그렇게 마시고 싶어하던 맥주다.  영패는 필요 없어.  내가 너보다 훨씬 많이 가지고 있을 테니까.”

여인은 들고 있던 맥주 잔을 나에게 건네 주었다.  잔 가득 찰랑이는 차가운 맥주라니.  나도 모르게 덥석 잔을 받아 들자 마자 고맙다는 말도 잊은 채 벌컥 들이켰다.  찬 맥주가 짜릿하게 목으로 넘어간다.  나도 모르게 “하!”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어디 소속이지?  요즘은 경기가 좋아서 어디서 일하든 맥주 한잔정도는 마실 수 있을 텐데.”

여인의 질문에 마셨던 맥주가 다시 튀어나올 뻔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킥킥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귀신에게 어디서 일 하냐고 묻다니. 이건 내가 태어나 들어본 것 중에서 제일 기막힌 농담이다.  살아있을 때야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일을 했다지만 지금은 살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지 않나?  어차피 죽어버렸는데.”

 내 대답이 거슬렸는지 여인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다음 순간 그녀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전쟁터에서 적장과 마주친 것 같은 눈빛이다.  동의나 이해의 눈빛을 바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증오를 담은 것 같은 눈빛을 받을 이유도 없다.  순간 내 마음 속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나는 저승의 규칙도, 영패가 뭔 지도 모르는 한심한 영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패배자는 아니다.  경멸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나도 그녀를 마주 쏘아본다.  절대로 지고 싶지 않다. 나라는 인간은 저승물정만 모를 뿐 아니라 겁대가리도 상실한 녀석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어깨를 좍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나와 그녀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그때 여인이 웃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비웃음이라 기에는 지나치게 김빠진, 미소라기엔 슬퍼 보이는 웃음을 뒤로 하고 그녀는 곧 무심한 얼굴로 돌아갔다.

“저승에서는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 첫번째는 네가 저승에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살아있을 때 저승에 대해 들었던 건 다 잊으라는 것. 세 번째는 겉 모습만으로 영혼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 살아있을 때 네가 주워들은 정보들은 저승에 한 번도 안 가본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라는 걸 명심해.  살아있는 사람들은 모른다.  저승이 어떤 곳인지.”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사라졌다. 갑자기 나타났던 것만큼이나 허무하게.

그녀가 떠난 곳에는 텅 빈 공허만 남아 있었다.



여인이 사라진 것을 본 아이가 숨어있던 구석에서 쪼르르 달려나왔다.

“투구꽃 갔어?  다행이다.”

팽팽하던 긴장이 갑자기 풀린 탓인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투구꽃?”

“저 여자 별명이야  투구꽃.   겉으로는 여리여리 예쁘게 생겼지만 성격은 말도 못하게 포악하다는 소문이 있어서 저 여자 보라색 옷 끄트머리만 나타나도 다들 벌벌 떨어.”

투구꽃이라면 가을에 피는 보라색 꽃이다.  한의학에서 흔히 말하는 부자의재료로 맹독이 있어 옛날에는 사약 만들 때 사용했다.  그러고 보니 여인은 보라색 투구꽃과 닮은 구석이 많다.  새초롬히 예쁜것이나 치명적인 독성을 품은 것조차도.

“너 이제 큰일났다.  투구꽃한테 잘못 보였으니 저승 생활이 평탄하지 않겠구나.  앞으로는 투구꽃하고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도록 해.”  

“야, 알밤!  너 자꾸 반말 할래?”

나는 일부러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아이에게 으르렁거렸다.  첫사랑에 실패만 안 했더라도 너 만한 아들이 있다는 눈빛으로.

“저승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영혼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도 몰라?  영혼들은 나이를 먹지 않아. 이렇게 귀여운 나만 해도 죽은 지 오십년이나 되었단 말야.  살아있었더라면 지금 환갑이라구.  나이로 따지면 내가 너보다 훨씬 많아.”

아이는 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어린 아이 얼굴에 깜박 속았다. 겉 모습만 어린아이일 뿐 저승에서는 나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녀석이 아닌가.

“그래?  몰라봐서 미안한걸.”

순순히 인정하자 아이는 아까 보다 기가 살아났다.   아예 바닥에 편하게 주저 앉아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저승에 있는 영혼이라도 다 같은 게 아니야.  영패가 하나도 없는 영혼은 귀신이 되어버리고 얼마 지나면 소멸하지.  그나마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거야.  지내보면 알겠지만 저승은 슬픈 곳이야.  춥고 무겁고 외로운 곳이야.  그렇지만 취직을 하면 매일 출근할 곳이 생겨.  주급을 받으면 장난감이나 과자를 먹을 수도 있고 승진을 할 때 마다 영패를 받아.”

 “영패?  영패가 도대체 뭐에다 쓰는 물건이냐?.”

“영패를 스물 다섯 개 모으면 환생할 수 있대.  나도 스물 두개나 모았는 걸.  세 개만 더 모으면 돼 .”

한동안 망설이던 아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까 일은 미안해.  너를 속여서 영패를 빼앗으려고 했던 거 진심으로 사과할 게.  그리고 투구꽃이 내게 해코지하려 했을 때 도와줘서 고마워.  네가 없었더라면 큰일이 났을지도 몰라.”

“고맙긴.”

“너 랑 이런 이야기할 수 있어서 참 좋다.  꼭 우리가 아주 오랜 친구같이 느껴진다.  살아있는 사람들 같기도 하고.”

“글쎄.”

 죽기 전 티브이에서 본 로맨스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주인공들은 낯 간지러운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여자 주인공을 좋아했지만 그런 분위기가 어색해서 채널을 돌려버리고는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다정한 말을 할때마다 어색함에 어쩔 줄 모른다.  아이는 그런 내 기분을 모르는지 내 곁에 기대어 조곤조곤 재잘거렸다.

“저승에 처음 왔을 때는 엄마가 정말 보고싶더라.  엄마가 저승에 오기 전에 소멸할까 봐 두려워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  그런데 오십 년 동안 열심히 하다 보니 영패가 점점 모이는 거야.   스무 개가 넘어가니까 욕심이 생기더라.  조금만 더 모으면 환생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지.”

“그랬구나.”

“엄마 랑 같이 있는 저승도 좋지만 기회가 된다면 환생해서 한번쯤 오래 살아보고 싶기도 해.  남들처럼 학교도 다녀보고 자전거도 배워보고 게임도 해보고 어른도 되어보고 싶어.  하지만 아직은

생각중이야

[권1]


.  

내가 환생하면 저승에 혼자 남겨질 엄마가 걱정돼서.”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내가 6살 때 돌아가셨으니 지금 저승에 계실 게 틀림없었다.

“나도 저승에 온 김에 어머니를 찾아야 겠다.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서 얼굴도 잘 모르지만.”

내 말에 아이는 힘내라는 듯 내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그러려면 취직을 꼭 해야 돼.  영패 6개로는 3개월도 못 버틸 거야.  어머니를 찾을 때까지 소멸되어서는 안돼. 아무리 힘 들어도 용기를 가져.”

아이는 다음날 내가 면접 시험을 보러 갈때까지 쉬지 않고 재잘댔다.  몇 번이나 이젠 조용히 할 수 없겠냐고 말할까 했다가도  아이의 얼굴이 너무도 행복해 보여 입을 다물었다. 아이의 이름은 ‘사천혜’라고 했다.  그 아이는 1970년까지 중국에서 살았다.



.   히말라야 산맥 깊숙한 골짜기 켜켜이 쌓인 눈과 얼음조각 아래에는 이제는 잊힌 문명의 잔해가 남아있었다.  건물 밖에는 무시무시한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눈보라 때문만은 아니다.  아찔한 빙벽과 극도의 추위는 인간의 접근을 막아준다.  살아있는 인간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영혼들은 추위를 못 느낀다.  비에도 젖지 않는다.  덕분에 눈속 고대 유적지에서도 기침 한번 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나는 지구를 한바퀴 돌고도 남을 만큼 긴 줄에 서서 면접 시험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줄을 서라!  이 멍청이 같은 것들아!”

벽력 같은 목소리가 귀를 뚫어버릴 것처럼 울려 퍼질 때 마다 우왕좌왕하던 영혼들이 줄을 서기 위해 달려간다.  줄을 선지 얼마 안 되었는데 내 뒤에도 앞에 있는 사람만큼 줄이 생겼다.  구불 구불 길고 긴 줄이 이어진 곳에는 거대한 건물이 입구를 열고 서 있었다.  그러니까 이 줄의 목적지는 건물 안 어느 지점인 셈이었다.  목소리는 건물 입구 근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목을 길게 빼고 열심히 바라본 덕분에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을 때는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  멀고도 먼 그곳에서 여기까지 들릴 만큼 쩌렁쩌렁 소리지르는 것은 불면 날아갈 것같이 생긴 동양 남자였기 때문이다.

“저리 봬도 전신이 근육이라 힘이 어마무시하대요.  양 손 엄지손가락만 짚고 물구나무서기를 한답니다.”

내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참견했다. 1차 세계대전때 연합군 병사가 입었을 법한 군복으로 중무장한 푸른 눈의 사내였다.  

“저승에서는 영혼의 겉모습 만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딱 맞는 군요.”

 내가 대답하자 그가 마주보고 헤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더니 내 귓가에 입을 갖다 대고 소곤거렸다.

“저는 이번이 이백 스물 다섯 번째 면접입니다.  형씨는 몇 번째 보는 겁니까?”

그 말에 놀란 것은 오히려 나였다. 저승에서 보는 면접 시험은 따로 준비해야 할 것도, 공부해 가야 할 것도 없다.   시험을 보기만 하면 누구든 통과할 거라고만 여겼을 뿐 떨어지는 경우도 있을 줄은 생각 못했다.

“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의 얼굴에 부러움이 스쳐갔다.

“그래요?  그렇다고 긴장할 건 없습니다, 이번 시험은 연습이다 생각하고 보면 되겠네요.  아무리 운 좋은 사람도 면접 시험을 통과하기 전에 열 대여섯 번은 떨어진다고 들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하도 여러 번 떨어지다 보니 이제는 마음을 비우기로 했어요.  이번에도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붙겠지 하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온 겁니다.”

 “면접 시험이 어렵습니까?”

조심스럽게 묻자 남자는 철모를 벗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면접관 말로는 제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간다고 하더군요.”

남자는 나보다 머리 하나가 컸지만 훨씬 마른 체형이다.  아무리 뜯어봐도 나보다는 가벼울 것이 틀림없다.  그런 그가 무거워서 통과하지 못했다면 결과는 명확했다.  내가 면접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다.  절망스럽게도.


https://youtu.be/MkOHPzb0x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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