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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2. 2020

장례식

2화



죽음을 깨달은 후 몇 시간동안 나는 충격에 빠졌다.  생각해 보라. 지난 스무 해 하고도 구 년 동안 꽤나 열심히 살았던 이유는 언젠가는 취업도 하고 부자도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이토록 허무하게 죽을 것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열심히 살지 말걸 그랬다.   단 하루 신을 신발을 사러 백화점 세일구역을 몇 시간이나 돌아다니지도, 양복을 열심히 다려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늘 면접 시험을 보러 가는 대신 뭔가 신나는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을 뒤늦게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였다.  지난 몇 년 동안 자소서를 쓰고, 이력서에 채울 경력을 쌓고, 면접을 준비하는 비슷 비슷한 날을 보내던 나는 죽었다.  바로 오늘, 스물 아홉 생일날에.


“아버지, 정신 놓으면 안돼요.”

동생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을 길게 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가슴이 딱 막히는 기분이 든다. 이런, 이곳은 내 장례식장이다.  검은 양복을 입은 초췌한 노인은 아버지가 틀림없었다. 아버지는 마른 낙엽처럼 금세라도 바스러질 것만 같다.  며칠 새 십년은 더 늙어버린 듯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창백한 얼굴에서 자꾸만 눈물을 닦아낸다.  그 곁에 서 있는 동생이 아버지를 부축하며 아버지의 뭉툭한 손을 위로하듯 꼭 잡는다. 아버지의 눈물을 보니 가슴이 아파왔다.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서 나도 아버지의 손을 잡아보려 했지만 내 손에는 따뜻한 아버지의 손이 잡히지 않는다.  내 손은 그림자처럼 아버지의 손에 스며들어갈 뿐이다.  (안타까움 -> 깨달음) 그제서야 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내 손조차도 내 눈에는 보이지만 형체는 사라진 것이다.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고 숨을 내 뱉는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된다더라 들어본 것들은 많았다.  착하게 살았으면 천국에 가고 악하게 살았다면 지옥으로 간다고 한다.  죽은 영혼을 데리러 저승사자가 올 거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책에서 읽은 모든 이론은 소용없다.   죽어 있는 지금 나는 실전과 마주했다.  죽어본 것은 처음이다.   막무가내로 이쪽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저승 초년생은 아무것도 모른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사람은 죽는 순간 지나온 삶이 영화처럼 눈 앞을 스쳐간다’던 어느 책 한 구절이었다.  그 말 대로 눈 앞에 내 인생이 영화처럼 스쳐가지 않을까, 눈을 끔벅여 보았다.  눈 앞에 보이는게 있는지 정신을 집중해 본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주먹을 꽉 쥐어 본다.   얼굴만 돌려 전후 좌우를 확인한다.   내 곁 어딘 가에 저승사자가 서 있는지 확인해 본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솔직히 이럴 줄 알았다.   책에 있는 내용을 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틀린 이론은 접어두자.  방법은 하나다.  내 몸으로 직접 부딪혀 배우는 수 밖에.


나는 내 장례식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조촐한 장례식이다.  짐작했던 대로다.  조문객은 몇 안되는 친척들과 연락이 닿아 달려온 학교 동창들이 전부다.  세상을 떠난 나를 기억해 줄 사람은 딱 그만큼일 것이다.  친구들도 안 만나고 취업 준비로 몇 년을 보낸 후유증이 가져온 참사였다.  초라한 식장에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것은 영정 사진 뿐이다. 영정사진은 얼마전 이력서에 쓰려고 새로 찍은 것이었는데 스튜디오에서 짝짝이 눈 크기를 맞추고 피부색도 깨끗하게 보정하는 바람에 실물보다 훨씬 잘 생긴 얼굴로 변했다.  영정사진으로 쓸 줄 미리 알았더라면 포토샵을 좀 더 해달라고 할 걸 그랬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 스쳐갔다. 장례식이 끝나고 내 몸은 화장되어 작은 단지에 담겼고 아버지와 동생은 나를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납골당에 안치했다. 아버지는 영정사진 곁에 내가 쓰던 핸드폰을 두고 울면서 납골당을 떠났다. 슬픔의 의례는 끝난 것이다.  


그들이 떠나고도 나는 납골당에 남아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달리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달이 뜨고 다시 태양이 떠올랐다.  비가 내리고 구름이 걷혔다.  그렇게 며칠인가, 아니 몇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납골당에서 지냈다. 가슴이 사무치도록 그리운 얼굴이나 미치도록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던가 애써 돌이켜보았지만 갈 곳도, 할 일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후에 알게 된 곳인데 납골당은 나 같은 영혼 초년생에게 최적의 장소였다.  나보다 먼저 저승에 온 선배들을 보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막 영혼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초년생은 세상에 가득한 사람들을 보고 놀란다.  옆에도 뒤에도 앞에도, 위에도 벽에도 천장에도 사람들이 있다.   저승에서 살아가려면 주위에 널린 사람들 중 산 사람과 영혼들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겉보기에 별다를 것이 없지만 걱정할 것 없다.  열심히 관찰하다 보면 나름대로 구별법이 생긴다. 영혼들은 발 없이 스르르 움직이고 허공에 떠 있거나 벽에 거꾸로 매달릴 수 있다.  벽이나 문을 맘대로 통과할 수도 있다.  그것도 요령이 필요한데 몸을 벽에 부딪히면 튕겨 나온다.  힘을 빼고 벽을 향해 다가가 스며들 듯 통과해야 한다.  워낙 기초적인 기술이라 어지간히 운동신경이 없는 영혼이라도 몇 번만 연습하면 터득할 수 있다.  벽 통과 기술을 조금만 응용하면 바닥 통과도 가능하다.  엘리베이터나 계단이 없어도, 문을 열지 않아도 상관없다.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   


납골당 안에서만 뱅뱅 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지하 1층에서 지상 5층까지 시선이 닿는 곳에는 봉안당 밖에 없다. 위로 아래로 옆으로, 수 백, 수 천번 공간 이동 연습을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새로운 풍경도 신기한 재미도 없다.   슬슬 모든 것이 지루해지고 있었다.   1층에 있는 편의점을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본관 입구 바로 옆 모퉁이에서 편의점 간판을 발견했을 때 좋아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여태껏 납골당 안을 쏘다녔는데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앞뒤 가릴 것 없이 유리벽을 통과했다.  깨끗하게 정돈된 선반 사이를 미친듯 누비던 발길이 대형 냉장고 앞에서 멈췄다. 맥주와 소주, 막걸리가 진열되어 있었다.  맥주 캔을 향해 손을 뻗어 보지만 허무하게 허공에서 헛 손질을 한다.  맥주 캔 대신 막걸리 병을 잡아보려 했지만 헛수고다.  

‘맥주 한잔만 마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다.  살아있었더라면 맥주를 마셨을 텐데.   나는 한숨을 쉰다.

    “그렇게 맥주를 마시고 싶니?  내가 도와줄까?”

누군가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눈길이 등 뒤를 한참 훑어 내려가야 했다.  새하얗고 작은 얼굴이 한참 밑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여섯살쯤 되었을까, 어린애다.

“지금 나한테 한 말이냐?”

“너무 놀라지마.  하도 간절하게 맥주병을 들여다보고 있어서 물어본 것뿐이니까.”

귀엽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이가 대답한다. 영혼인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보면 이 아이도 살아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영혼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아하니 너도 살아있는 사람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나를 도와준다는 거지?”

“정말이야.  영패 세 개만 주면 도와줄 수 있어.  네 개도 아니고 다섯개도 아니고 영패 세 개야, 세개.  그 정도면 거저야”

아이는 작은 손을 들어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영패?  나 그런 거 없는데.”

영패라니, 이름도 생소한 물건이다.  

“너, 혹시 신입이냐?  언제 죽었냐?”

아이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 기막혀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몇 달쯤 전인 것 같아.  잘 모르겠네.  밤인지 낮인지, 며칠이나 지난 것인지 알 수가 없어.”

그래서 영패를 모르는구나 싶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아이는 내 양복 저고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 번 뒤져봐.  네가 영혼이라면 분명히 갖고 있을 테니까.”

아이의 말 대로 양복 호주머니를 뒤져보았다.  겉 주머니와 안주머니까지.  그리고 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

내 말에 아이는 쌩 하고 토라졌다.

“야, 이거 완전히 사기꾼이네.  영패 하나도 없는 완전 거지 주제에 있는 척하기는.”

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지 뒤 주머니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구슬이다.  어릴 때 구슬치기 하며 놀던 것과 똑같다.  그것도 여섯 개나.

“이게 뭐냐?  이 구슬, 정말 오랜만에 보네.  한때는 이런 구슬 수집이 취미였는데……. 최대로 모았던 게 수백개는 되었을 거야.”

“수백개나?”

돌아서려던 아이가 다시 나를 향해 다가왔다.  눈빛이 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응, 내가 어릴 때 우리 동네 구슬치기 에이스였지.  그러고 보니 벌써 이 십년이나 지났네.  그런데 이 구슬이 어디서 나타났을까?”

 “구슬 수백개는 필요 없어.  세 개만 더 있으면 돼. 맥주 마시게 해줄 게, 구슬 세 개 줘.”

“이 구슬을?”

“그래, 그 구슬.  그 구슬이름이 내가 아까 말했던 영패야.”

아이는 간절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런 구슬을 탐내다니, 역시 어린애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어찌나 간절하게 바라보는지 하마터면 구슬 세 개가 아니라 여섯 개를 다 주겠다고 말 할 뻔했다.

“영패 도둑! ”

이번에 들린 것은 하이 톤에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돌아본다.  목소리만큼이나 호리호리한 몸매에 자그마한 여인이 서 있었다.  짙은 보라색 치마에 연보라저고리를 입은 것이 마치 보라색 야생화 같다.  곱게 빗어 올린 머리에 꽂힌 황금색 머리 장식이 그녀가 한 걸음 옮길 때 마다 살랑살랑 흔들렸다.  (애처롭지만 독한,  강하지만 슬픔을 간직한 캐릭터 입니다.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처음으로 만나는 부분이므로  임팩트 있는 음악을 넣어주시면 좋겠어요. )

‘고수다.’

저승이라는 세계에 막 발을 디딘 초년생이었지만 짐작은 할 수 있었다.   만약 저승에도 계급이라는 게 있다면 방금 나타난 여인은 나 같은 초년생과는 급이 다르다.  감히 바라보지도 못할 만큼 높은 존재라는 것을.    


한걸음, 여인이 다가섰다.   나긋나긋하지만 요염한 걸음이었다.  그녀의 기에 눌린 것인지 나는 온 몸이 얼어붙어버렸다.  대답을 하려 했지만 말은 입 안에서만 맴돈다.  여인의 붉은 입술 사이로 조용하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영패가 탐나니?  아무것도 모르는 신참을 속이는게 창피하지 않아?”

여인의 말에 아이는 멈칫 하며 뒷걸음질 쳤다.   아이가 물러선 만큼 여인이 다가간다.  아이가 한 발 뒤로 가면 여인은 두 발짝 다가간다.  

“훔치려던 게 아니야.  영패를 받는 대신 도와주려고 했어.  정말이야,”

아이는 새파랗게 질렸다.  울 것 같은 얼굴로 대답했지만 그녀는 거침이 없었다. 보라색 소매가 흘러내리고 새하얀 팔목이 드러났다.  아이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는다.  순간 나도 모르게 여인 앞을 막아섰다.

“내가 맥주를 너무 먹고 싶어하니까 이 아이가 나를 도와주겠다고 한 거야.  이 아이가 거짓말한 것 아니야.  그러니까 이 아이는…….”

“이 아이는?”

여자가 되묻는다.

“죽이지 말아, 부탁이야.”



https://youtu.be/WzFjwWwpM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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