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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2. 2020

프롤로그

1화



거리는 북적 였다.  평소 동경하던 N사에서 최종 면접시험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아침부터 긴장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긴장이 풀려 기운도 없었고 무엇보다 목이 무척 말랐다.  지하철을 타고 집 근처에서 내리면 편의점에서 맥주를 몇 캔 사가겠다고 생각하며 분당선 ‘정자 역’쪽 횡단보도 앞에서 빨간 불이 켜진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내 몸이 하늘로 ‘부웅’ 날아올랐고 누군가 지르는 비명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돌아보니 나를 친 승용차는 아직도 달리는 중이었다.  짙은 은회색 고급 외제차였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면서 속도를 올리더니 바로 앞 사거리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마침 퇴근 시간이었다.  근처 회사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사고 현장으로 모여들었다.

“저 차 번호판 봤어요?”

손으로 차를 가리키며 물었지만   대답이 없다.  다들 사고 현장에 정신이 팔린 모양이었다.  

“아까 저를 치고 간 회색 외제차 저쪽으로 갔거든요.  번호판요.  번호판 보신 분 계십니까?”

목이 터져라 소리지르다 결국 자동차가 도망친 방향으로 다급히 쫓아갔다. 모퉁이를 돌아갔던 승용차는 겨우 십여 미터를 더 도망치고 멈췄다.  가로수를 들이받은 듯 승용차 앞 범퍼가 무참히 찌그러져 있었다.   엔진에서 연기가 피어 오른다.   기절한 듯 축 늘어진 운전사는 운전석 부풀어 오른 에어백과 좌석 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그의 머리에서 빨간색 피가 노을처럼 번져 나왔다.   멀리서 앰뷸런스의 사이렌소리가 들려왔다.   앰뷸런스와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잠시동안 나는 그 곳에 서 있었다.  경찰이 운전사를 차에서 꺼냈을 때 피에 젖은 그의 팔이 축 늘어지는 것이 보였다.  

“죽었나 봐요.”

근처에서 서 있던  젊은 여자가 일행에게 말하더니 충격 받은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느새 거리에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퇴근하는 직장인들은 집으로 향하던 바쁜 걸음을 멈추고 사고 현장을 한동안 바라보다 갔다.  다들 근심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들 중 몇 명이 휴대전화를 꺼내 부서진 승용차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하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제서야 내 손에 휴대전화가 없음을 깨달았다.  순간 당황했다.  가만있자, 내  일부처럼  갖고 다니던 휴대전화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이 언제 였더라  기억을 더듬는다.  면접 시험을 마치고 나왔을 때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었다.  정자역을 향해 걸어가는 내내 음악을 들었고 횡단 보도 앞에서는 지도를 검색했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그렇다.  아무래도 횡단보도 앞에서 잃어버린 게 틀림없다.   아까 달려왔던 길을 되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횡단 보도 근처에 떨어뜨려 박살이라도 난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땅만 보고 달리다 보니 몇 번이나 마주오는 사람들과 부딪힐 뻔 했다.  횡단 보도 앞은 엉망이었다.  아까도 말끔하던 가로등이   반으로 꺾인 듯 휘어졌고 그 아래   바닥에는 흥건한 적갈색 액체가 고체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곳에도 앰뷸런스가 와 있었다.   막 환자를 태운 듯 응급 요원이 앰뷸런스 뒷문을 닫는 중이었다.

“ 저 분 괜찮으신 거죠?”

길가에 서 있던 여학생이 응급요원을 향해 물었다. 긴 머리를 묶어올린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근처 명문 여고 교복을  입은 것을 보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나 보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오돌오돌 떨고 있었지만   언뜻 봐도 인상에 남을 만큼 예쁘장한 여학생이었다. 내내 울었는지  눈이 빨갛게 부었다.

“학생,  그만 좀 울어.  이러다 학생이 기절하겠어.”

응급 요원이 울고 있는 소녀가 안쓰러운 듯 말하자 소녀는 들고 있던 신발을 그에게 내밀었다.  나도 모르게 소녀가 들고 있는 신발에 눈이 멈췄다.  어딘지 눈에 익은 신발이었다.  그러고 보니 면접을 위해 어제 사서   오늘 아침에 집에서 신고 나온 내  구두와 똑같다.   응급요원은 구두를 넣어두려는 듯 앰뷸런스 뒷문을 다시 열었다.   열린 문 사이로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보였다.  그의 한쪽 발은 신발이 없이 양말 바람이다.  삐죽 나온 다리는 정장 바지 차림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면접용으로 무난한 색깔, 몇 년쯤 전 유행이 지난, 바지 끝 부분이 해진 것까지도 내가 입은 바지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소녀는 다른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도 응급요원에게 건넸다.  

“이 휴대폰도 저 아저씨 거예요.  저를 구해주실 때 땅에 떨어졌던걸 주워 뒀어요.”

그 휴대폰도 내 것과 같은 모델이었다.  심지어 휴대폰 케이스조차.

순간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들었다.   뭔가  나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몸이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득한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가듯 깜박 정신을 잃었다.


******


다음 순간 나는 집에 돌아가 있었다.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모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집 안이었다.   심지어 들어올 때 현관문을 열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솔직히 어떻게 집으로 돌아온 것인지는 상관없었다.  고달프고 힘든 하루였다.     면접 시험을 보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사고까지 있었다.    현관부터 반가운 북어 국 냄새가 풍겨 나왔다.  한동안 잊고 있던 시장기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밀려들었다.  식탁에서 아버지와 남동생이 늦은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내가 들어왔는데 두 사람은 아는 체도 하지 않는다.   뭐가 그렇게 급한 지 눈조차 들지 않고 밥만 먹고 있다.  

“아버지, 저 왔어요.  아버지 큰 아들 박진한이 N사 면접 시험을 마치고 왔습니다!”

평소보다 훨씬 살갑게 말을 걸어도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오늘 아침에 아버지는 북어국을 끓였다.  말은 안 했지만 어제저녁에 내가 양복 바지 다리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제 사온 신발을 광나게 닦아 놓고 몇 만원을 내 지갑에 넣어두기까지 하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가 나에게 화 낼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동생과 말다툼을 한 것일까?   모르겠다.  배가 너무 고프다.  일단 맛있는 냄새를 피우고 있는 북어국부터 먹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 방에 들어가 양복을 벗었다.  평소에 집에서 입는 추리닝을 찾아봤지만 그 옷도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  제 추리닝 어딨어요?”

소리질렀지만 아버지는 대답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 대신  반쯤 벗었던 양복을 주워 입었다.   아무래도 밥부터 먹는 것이 좋겠다.


 북어국에  흰 밥,  김치가 전부인 단출한 밥상이다.   아버지와 마주보는, 동생 옆자리에  앉았다.    아직도 두 사람은 바로 앞에 앉은 나를 완벽히 무시한다.  냉랭한 공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둘이 다퉜더라도 그렇지 나한테까지 이럴 필요가 있을까. 엄마가 안 계신 우리 집에 식구라 고는 아버지와 나, 동생 단 세명 뿐이다.  여럿도 아닌 가족 세명끼리 친하게 지내면 안되는 것인가 싶어  한 마디 꺼내려다  참기로 했다.  대신 답답한 기분 때문에 헛기침만  자꾸 한다.  마주 앉은 아버지는 밥을 먹던 숟가락을 멈추고 자꾸만 휴대폰 액정을  확인했다.  나도 따라 아버지의  휴대폰 화면을 건너다 보았다.  밤 열 한시다.  아버지를 내내  못 본 척 하던 동생이 불쑥 참견했다.

“아버지, 형 집에 안 오고 곧바로 알바 하러 갔나 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리 바빠도 집에 와서 양복은 갈아입고 갈 것이지, 그 차림으로 알바를 갔을까. 참, 녀석도.”

밥 먹다 놀라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눈 앞에 앉아있는 내가 안 보이는 것인지 아버지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집에 못 올 만큼 급했나 보지요.  형도 사정이 있었을 거예요.”

“ 오늘 지 생일인것도 까먹었을까?   눈치 보니까 오늘 면접 시험 보는 것 같아서 생일이지만 미역국 대신 북어국으로 끓였는데 아침에 한 숟갈도 안 뜨고 갔더라.  허허.”

“에이, 아버지, 정한아. 장난하는 거야?  왜들 그러세요?  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   아침에는 면접 시험 때문에 입맛이 없어서 그냥 나간 거고요.   아침 밥 안 먹고 나가서 화나신 거예요?  앞으로는 잘 먹을 게요.  화 푸세요.”

내 말에도 두 사람은 대답하지 않는다.  말을 무시당한 나는 여간 뻘쭘 한 게 아니다.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아버지가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야, 이놈의 새끼가 어디서 헛소리야!”

아버지가 소리를 냅다 질렀다.   그 바람에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던 동생이 아버지를 돌아본다.  

“내 아들 이름이 박진한은 맞는데 아침에 멀쩡히 나간 아이가 죽기는 뭘 죽어? 경찰서 사칭해서 돈 뜯어가려는 수작이면 틀렸 어.  어디서 감히 보이스피싱 질이야?    너 경찰이라고 했지?  어디 경찰서 소속이야?  내가 직접 확인해 볼까?”

아버지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보이스피싱 전화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아버지는 일그러진 표정 그대로 전화를 받았다.  이번 대화는 좀 더 길어졌다.  아버지의 목소리에서도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아버지, 무슨 전화예요?”

어느새 아버지 뒤에 온 동생이 아버지에게 물었을 때 아버지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네 형이 죽었 단다.  교통사고로 즉사했 대.”

아버지는 무릎이 꺾이듯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https://youtu.be/-VulOXOQO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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