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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2. 2020

친구, 앨런

4화




패색이 짙은 전투에서는 도망치는 것도 전략이라는 말은 손자병법에서 읽었던가.  그러나 이곳에는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면접 시험을 보겠다고 줄을 서 있는 어리석은 영혼이 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그 멍청이가 바로 나라는 점이었다.   애초부터 저승에서 면접 시험을 보는 것을 몰랐다.  면접 시험에서 몸무게를 측정한다는 것도, 그 몸무게가 무거우면 떨어진다는 것도 몰랐다.  아까 까지만 해도 태평하게 순서를 기다리던 나는 면접시험과 몸무게의 상관관계를 알게 된 지금 앞으로 다가올 일을 걱정하며 초조하게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 보다 훨씬 더 빨리 다가온다는 말이 있다. 마음의 준비를 채 하기도 전에 줄이 짧아지더니 나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건물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문을 통과하자 드넓은 회랑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그곳의 벽은 히말라야 산에서 가져온 눈처럼 새하얗게 빛난다.  모퉁이 마다 거대한 조각상이 기둥처럼 천정을 떠받치고, 마치 살아 움직일 것처럼 정교한 인간과 동물 조각들이 우리를 내려 다 보고 있었다.  천정에는 밤 하늘을 그대로 옮긴 듯 별로 가득한 천문도가 조각되어 있었다.  면접 보러 온 영혼들로 바글대는 회랑은 흡사 거대한 취업 박람회장을 연상하게 했다.   책상이 수 백 개, 질서정연하게 놓여있고 그 책상 앞에는 각각 면접관이 한 명씩 앉아있었다.  구석에는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영혼들이 바글거린다.  방금까지 이번 시험은 포기하고 앞으로 수 십 번 더 볼 각오를 했음에도, 막상 면접시험장에 들어오니 긴장으로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벌벌 떠는 것은 나 혼자 뿐 아니었다.

“염치없지만 저하고 자리 좀 바꿔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너무 떨려서 숨이 멎어버릴 것 같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내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부탁했다.  그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고 양쪽 무릎이 덜그럭거리며 서로 맞닿을 것처럼 떨고 있었다.  한 자리 뒤로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의 간절한 눈을 보니 거절할 수가 없다.  

“그럽시다.”

“아이코, 감사합니다.”

그와 자리를 바꿔 서자 마자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박진한!”

“넵!!”


생각할 새도 없이 이름이 불린 쪽으로 돌진했다.  책상 앞에 앉은 면접관은 흰 도포 차림을 한 후덕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주름이 자글자글 깊게 패인 얼굴에 길고 흰 수염이 앉아있는 무릎까지 닿았다.  

“올라가.”

면접관의 첫 마디였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저울이 놓여있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몸무게부터 잴 모양이다.  뭐 이런 면접이 다 있나.

“뭘 혼자 중얼거리고 있어?  내 말 못 들었나?  저울로 올라가라.”

면접관은 사정없이 재촉했다.  저울 앞에 서자 기분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고개를 들어 흘깃 면접관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책상위에 놓인 서류 뭉치를 훑어보는 중이었다.  저울에 올라가기 전에 신발과 양복을 벗었다.  그래봐야 몸무게에 별 차이가 없을 것도 알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저울 위에 올라섰다. ‘삑’소리와 함께 저울에는 숫자 대신 빨간 빛이 들어왔다. 통상 빨간색은 정지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빨간 색은 무슨 의미일까?  아무리 낙관적으로 생각하려 소용없다.  내가 탈락한 것이 확실했다.

“흐음……”

면접관은 이마에 세로 주름이 깊이 패인 채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했다.

 “자네는 일단 저쪽에 서 있어봐.”

순순히 저울에서 내려왔다.  벗어 둔 양복을 입고 신발도 신었다. 기운이 쭉 빠진다.  순간 억울한 생각에 울컥해졌다. 면접관이 가리킨 쪽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질문 있습니다.”

“응?  질문?  그래, 뭔가?”

“면접시험이라면서 제 이름도 안 물어보십니까?  질문 하나도 안 하십니까? 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왜 취직을 하려고 하는지 정도는 물어 보셔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래?  자네는 왜 취직을 하려고 하지?”

“저는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으려고 합니다.  어머니를 찾을 때 까지는 소멸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직업이 꼭 필요합니다.”

“음, 알겠네.  물어봤으니 됐지?  저쪽으로 가 있게.”

면접관은 무심한 얼굴로 또 손짓을 했다.  질문의 답에 상관없이 내 탈락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뜻인가?  역시 그놈의 몸무게가 문제인 모양이다.  이번에는 손을 번쩍 들었다.

“질문 또 하나 있습니다. 영혼이 몸무게를 줄이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합니까?  살아있을 때는 덜 먹고 운동해서 몸무게를 줄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걸 왜 묻는 건가?”

“다음 면접 시험때는 꼭 붙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면접관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 대답했다.

“그렇게 알고 싶다면 설명해 주지. 영혼의 몸무게는 한이 많을수록 무겁다.  한이 뭐냐 하면 죄책감, 증오, 후회, 미련, 아쉬움 등등 가슴에 쌓여서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것들을 말하지.  가슴에 맺힌 것이 많으면 아무리 좋은 일자리를 줘도 제대로 일을 못한다. 그래서 몸무게가 무거우면 탈락시키는 거야.”

“제 몸무게가 얼마나 됩니까?  면접에 합격되는 기준이 뭡니까?  제가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 탈락입니까? (말하다 보니 점점 흥분해서 억양이 올라가는; 마지막에는 거의 절규하다시피 하는 ) 숫자도 안 나오는 저울에서 잰 몸무게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

 “자네가 탈락이라고 한 적 없어. 자네 몸무게는 무겁지 않았어.  딱 표준이었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네는 합격이다.   다음 면접 시험을 볼 필요는 없다는 뜻이야.”

“네?  진심이십니까?”

“같은 말을 자꾸 묻는 이유가 뭔가?  귀찮게 시리. 자, 다음!”

면접관이 가리키는 대로 한쪽 구석으로 가 섰다.  합격의 감격을 채 느끼기도 전에 내 다음 순서로 등장한 것은 나와 자리를 바꾼 남자였다.  군장에 달린 철제 물통이 어깨에 맨 총 대검에 부딪혀 그가 걸음을 뗄 때 마다 ‘딸랑 딸랑’ 소리가 났다. 그는 면접관 앞에 도착하자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차렸 자세를 했다.  이백 스물 여섯 번째 면접시험을 보러 온 가련한 영혼은 긴장으로 잔뜩 얼어 있었다.

“올라가.”

면접관은 사정 봐주지 않는다.  한 손으로 저울을 가리키며 짧게 명령했다.  남자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비틀거리며 저울을 향해 다가가더니 한 발을 저울 위에 올려놓는다.  순간 나는 두 눈을 감아버렸다.  사람 좋아 보이는 순순한 남자가 이백 스물 여섯 번째로 저울에 올라가는 순간을 차마 볼 수가 없다.

“야, 이 바보 같은 놈아.”

면접관이 그를 불러 세웠다.  벌벌 떨며 다른 발을 올리려던 그가 면접관을 돌아보았다.

“군장하고 철모하고 군화하고 다 내려놔.  그걸 다 짊어지고 저울에 올라갈 생각이냐?”

남자의 얼굴이 그만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래도 됩니까?”

면접관은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남자는 재빨리 등에 매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았다.  

“아, 살 것 같습니다.”

바닥에 얌전히 놓아둔 배낭 위에 철모를 벗어 올려놓고 군화는 옆에 놓았다.  

“1917년에 저승에 온 이후로 군장 벗은 게 처음입니다. 진짜 몸이 가볍네요. 하늘을 날아다닐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총까지 내려놓은 그가 저울위로 올라섰다.  빨간 불빛이 삑 하고 들어왔다.

“자네도 합격이다.  요새는 왜 이렇게 멍청한 놈들이 많은 지.   저 녀석 옆에 가서 서있어.  곧 일 시킬 사람들이 데리러 올 테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남자는 면접관을 향해 달려가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감격의 눈물로 얼굴이 흠뻑 젖었다.  그의 품에 안겼던 면접관은 어색한 얼굴로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제 이름은 앨런 패일럿입니다.  1917년 영국군 소속으로 참전, 프랑스 아라스에서 전사했습니다. 면접관 님!  감히 존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름 알아서 뭐에다 쓰려고?”

“알려주십시오,  저에게는 은인이십니다.”

몇 번이나 사양하던 면접관이 결국 대답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 이고, 아버지는 병조판서 이희검(李希儉)이며, 어머니는 문화 유씨(文化柳氏) 시네.  1628년까지 조선에서 살았던 이수광이라고 하네.”




나와 앨런은 회랑 옆 구내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한쪽에는 커다란 주방이 있고 홀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이십여 개나 놓여있었다.  학교 구내식당에서 그렇듯 우리는 줄을 서서 음료수를 한 잔씩 받아 테이블 한 자리씩을 차지했다.  

“그건 뭐지?”

맞은편에 앉은 앨런은  내가 받아온 식혜를 손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식혜야.  동동 뜨는 건 삭힌 밥알이고.  달달한 맛이라 너도 좋아할거야.  한잔 마셔 볼래?”

앨런은 받아온 오렌지 주스를 옆으로 밀어두고  내가 건네주는 식혜를 한 모금 마셨다.  

“오, 이거 맛있는데.”

감탄하는 얼굴로 중얼거린 그는 이 식혜가 저승에 온 후 처음으로 마시는 음료라고 덧붙였다.

“저승에서 식혜를 먹게 될 줄은 몰랐다.”

묘한 감동에 젖은 내가 말하자 앨런은 어린애처럼 눈을 빛내며 킥킥거렸다.

“아까 면접시험장에서 저울에 올라갈 때 얼마나 떨렸던지 하마터면 오줌 쌀 뻔했다.  그때는 십분 후에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서 너 하고 히히덕거릴 줄은 꿈에도 몰랐지.”

낄낄대고 있는 우리를 향해 여자 한 명이 달려왔다.

“네가 박진한이지?  새 보직이 결정됐다.  지금 민속촌으로 가라. 민속촌에 도착하면 네 선임 월하향을 찾아가도록.  한 사람 더 가야 할 텐데 (주위를 둘러보며) 박진한이랑 같이 갈 사람 없나?”

 “저요!”

앨런이 한 손을 번쩍 들었다. 컵에 남아있는 오렌지 주스를 입 안에 털어 넣고 재빨리 내 곁으로 달려왔다.  

“같이 가려고?”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우리는 전우잖아.”


몰랐다. 발걸음도 씩씩하게 구내식당을 나서던 그 순간까지도.

식당에서 일하던 직원들의 놀란 수군거림을.  등 뒤에 꽂혔을 수 많은 걱정어린 시선들을.  무엇보다 ( 한 템포 쉬었다가  긴장감 올려서)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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