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영인 Nov 12. 2020

첫출근

5화

숨을 멈춘다.  머리속에 가고 싶은 곳을 떠올린다.   눈을 뜨고 도착지를 확인한다. 히말라야 눈 산속에서 이곳까지 걸린 시간은 단 3초. 우리는 대한민국 용인 민속촌에 도착했다. 계절에서 꽃 향기가 났다.  낮에 비라도 내렸는지 푹신하게 젖은 땅 위에 분홍색 벚꽃 잎이 눈송이처럼 떨어져 쌓였다.  

   “이곳은 봄이구나.  꽃잎 눈이 내리고 있어.”

앨런이 눈이 부신 듯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면접시험장에서 벗어난 후 그는 눈에 띄게 생기를 찾고 있었다.  군장과 철모를 벗고 나니 처음 만났을 때 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맑은 가로등 불빛이 잔잔히 부서지고 있는 민속촌은 봄 꽃을 스치는 바람소리만 들릴 만큼 고요했다.  하늘에는 낮부터 숨어있던 달이 얼굴을 내밀고 잔잔한 어둠에서 스며 나와 창백한 빛으로 건물을 쓰다듬는다.   그 달빛 아래 서있으니 마치 아름다운 그림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숨 한번 멈추면 겨울에서 봄으로, 남극으로 사막으로, 적도위에서 달에도 별에도 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기다니 이 순간만큼은 내가 영혼이라는 게 자랑스러워.  1917년 우리 전우들이 이 기술을 사용할 줄 알았더라면 그날 전투에서 아군의 피해가 그토록 크지는 않았을 텐데.”

아쉬운 듯 앨런이 말하자 내가 대답했다.

“네 전우들이라면 이미 영혼이 되었을 거고 이정도 기술은 우리보다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겠지?  더 이상 국경이나 종교, 적군과 아군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러고 보니 전우들 걱정할 때가 아니네.  우리 앞가림이나 잘 해보는 의미에서 묻겠다.  우리가 민속촌에서 할 일이 뭘까?”

“귀신의 집에서 관람객 놀래 주기 같은 게 아닐까 싶기는 한데.”  

이야기를 나누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앨런이 한 곳을 가리켰다.

“저쪽에 모여 있는 영혼들이 아무래도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언뜻 봐도 열 대여섯은 넘게 모인 영혼 무리가 보였다.  그중 한 명이 우리를 발견하고 손짓했다.  

“어이, 거기 신입들!  뭘 하고 있는 거냐? 이쪽으로 튀어 와!”

어떤 경우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그동안의 습관에 따라 반응한다.  앨런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마치 전투용으로 개조된 로봇처럼 총알같이 뛰어가 경례를 붙였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들은 이곳, 민속촌으로 발령받은 신입사원입니다.”  

군대식으로 앨런이 경례하자 덩치 큰 남자가 마주 나왔다.

“기다리고 있었다.  진한, 앨런!  맞지?  신입들은 여기에 사인해라.”

덩치가 종이를 내민다.

“뭡니까?”

“서약서다. 이름 맞는지 먼저 확인하고   ‘주어진 임무를 완성할 때 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도망치지 않는다’ 라고 적힌 줄 보이지?  그 밑에 사인하면 된다. 날짜 쓰는 것 빼먹지 말고.”

읽어 내리던 앨런이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4조에서 말입니다, 해고당하면 저승에서 소멸 당한다는 말 뜻은 그나마 있는 영혼도 사라진다는 뜻입니까?”

“읽은 대로다.   끝 부분 어딘가 에는 이 계약서 사인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소멸하게 된다는 조항도 있어. 그 조항을 넣은 사람이 내가 아닌 관계로 너희가 아무리 날카롭게 질문해도 나는 답을 모른다. 그러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사인해.”

덩치의 태연한 대답에 나도 모르게 머리가 쭈뼛이 섰다.  해고를 당하면 그나마 저승에 영혼으로 존재하는 것 조차도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계약서 사인을 거부해도 소멸이다.  우리는 말 그대로 소멸과 존재를 오가는 경계를 오가고 있었다.  덩치는 앨런과 내가 사인한 계약서를 챙기며 설명을 이었다.

 “너희들의 직책은 ‘총각귀신’이다.  임무는 ‘솔로 탈출’. 수단과 방법에는 제한이 없다.   매일 아침에 출근하면 이곳에 모여 출근 도장을 찍고 퇴근할 때는 다시 이 곳에 모여서 그날 업무를 보고한다.  다른 건 몰라도 퇴근 전 업무보고 시간은 무조건 엄수해야 한다.  임무 완성 기한은 15일이지만 그 전에 해결해도 상관없다.  모르는 게 있으면 선임에게 배워라. 너희들 선임이 누구냐?”

앨런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월하향님 이라고 들었습니다.”

‘월하향’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자 주위에는 미묘한 정적이 흘렀다.  짧고 무거운 침묵 사이로 마른 침 삼키는 소리만 들려온다.   덩치는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두놈 다 앞으로 며칠이나 견딜지는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에는 속 썩이지 말도록 해라.  다들 출근 도장 찍고 일 시작하자.”

긴장된 마음으로 출근부에 사인을 했지만 여전히 막막하다.  임무만 던져줬을 뿐 어떻게 해야 임무를 완성할 수 있는 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난감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다 바로 옆에 서 있던 남자 영혼을 붙잡고 물었다.

“저, 선배님.  출근 첫 날이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 지금부터 저희들은 뭘 해야 합니까?”

“이론적으로는 임무인 솔로 탈출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맞겠지만 일주일 먼저 온 선배로서 충고하자면 너희들 며칠 못 버틸 거다. 그러니 괜스레 임무 완수하겠다고 힘쓰지 말고 남은 며칠이나마 맘 편히 즐기다 가라.”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주위에는 낄낄대는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이 이틀을 못 넘긴다 에 건 영혼이 다섯명,  닷새에  세 명, 일주일안에  도망칠 거다에  나머지 전부가 영패 한 개씩 걸었어.”

“왜요?”

“너희들 선임이 월하향이지?  그 녀석 별명이 뭔 줄 아나?”

“모릅니다.”

“독버섯!  제 동료들의 피 위에 군림하는 무시무시한 놈이다.”

   “저, 잠시만요!”

   제 할말만 남기고 그들은 어디론 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나와 앨런은 텅 빈 민속촌 마당에 남겨졌다.

   “Oh my God.  우리 선임이 장난 아닌 모양인데.  동료들의 피 위에 군림하는 독버섯이라는 말 너도 들었지?  에휴, 백년만에 얻은 직장인데 이렇게 끝나는 건가.”

앨런의 말에 마음이 더 아득해졌다.

“앨런, 미안해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나 혼자만 왔어야 했는데, 너까지 끌고 오게 되어서.”

“아니야, 너도 월하향이 독버섯인 것은 몰랐잖아.  몰라서 저지른 일은 죄가 아니다.  그건 그렇고 진한, 너 아직 솔로였니?”

 “응.  너는?”

“나야 전쟁에 참전하느라 솔로 였다고 치고, 너는 왜 아직 솔로야?”

  그의 질문은 사막이 왜 사막이 되었는가 하는 질문과 비슷했다.  사막은 강수량이 적은 지역을 말한다.  강수량이 적으니 식물이 살기 어렵고 식물이 없으니 더 메말라간다.

“내 인생이 사막이었다.  비가 와야 꽃이 피고 나무도 자랐을 텐데 비 구경을 할 새가 있었어야 지.  내내 학교하고 학원만 오가다 보니.”

내 대답에 잠시 생각하던 앨런이 결심한듯 입을 열었다.

“진한, 사막에서 사는 식물도 있다고 들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꽃도 핀다고 하더라.   살아있을 때는 그 식물을 찾아낼 간절함이 없었을 뿐이다. 솔로탈출 따위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게 속상하기는 하지만 소멸되는 것보다 낫잖아.  월하향이 우리를 괴롭히기 전에 방법을 찾아서 기한 안에 임무를 완수하는 수밖에 없다.”

그 말에는 전적으로 동감이었다.  임무가 던져졌고 해내야 할 뿐이다.   솔로 탈출을 하지 못하면 소멸이다. 위기의식이 생존 본능을 건드린 탓인지 커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무시무시하게 부풀어 올랐다.  

“나는 내가 살았던 영국에 가볼까 해.  옆집에 살던 첫사랑부터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나도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방법을 찾아볼게.”

 퇴근 시간에 만나자는 인사를 나누고 앨런도 사라졌다.


(장면전환) 민속촌에서 한강으로   오후.  


언젠가 면접 시험에서 낙방했던 적이 있다.  낙방으로만 치면 서른 번째, 아니 서른 한 번째였다.  시험결과를 받아 들고 무작정 지하철 7호선을 탔는데 역시 무작정 내린 곳이   뚝섬 역이었다.   3번 출구에서 통로를 따라 가면 ‘자벌레 전망대’에 도착한다.  전망대에 앉으면 하늘과 한강이 한눈에 보였다.   전망대에서 한강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그날, 쏟아지던 소나기 방울에 섞여 절망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져 내렸었다.  아이러니 하게 영혼이 되어서도 상황이 변하지 않았다. 앨런과 헤어진 후 하루 종일 어릴 때 다녔던 학교부터 학원까지 돌아다녔지만 허탕이었다.  결국 헤매던 발길이 이곳에 닿은 것이다.  

“이젠 어떡하나.”

전망대에 앉아 하늘을 본다. 살아있을 때도 못했던 솔로 탈출을 15일 안에 해야만 한다는 것이 걱정이다.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득한 눈길로 한강을 내려다보았다. 희뿌연 안개에 덮인 것처럼 시야가 흐릿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라도 흐른 것인가?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다시 보니 그것은 안개가 아니었다.  함박눈처럼 하늘에서 내리고 있는 것은 매화꽃이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매화꽃 비 사이를 오가는 영혼들이 보인다. 청바지에 운동화부터 한복까지, 긴 머리에서 짧은 머리까지 수도 많지만 차림새도 다 다르다.  연분홍 매화 꽃잎이 하나.  내 발 앞에 떨어졌다.

“뭘 그렇게 넋을 놓고 보고 있지?”

나직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귓바퀴를 간질였다.

“매화꽃이 눈처럼 내리는 모습은 처음이라서.  그 사이를 걷는 영혼들을 보는 것도 처음이다.  저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은 평생 처음이야.”

내 대답에 화답하듯 나타난 것은 선녀처럼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여인이었다. 여인은 그 얼굴을 돌려 나를 향해 애잔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시조를 읊는다.

“ ‘매화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엄즉도 하다마는
 춘설에 난분분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매화를 좋아해서 이름도 매화라고 지었던 평양기생이 지은 시다.  매화꽃비가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시가 아니냐?”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나는 생각했다.  내가 죽었던 것도 저승에서 떠도는 것도 모두 꿈이 아닐까?   새로 만난 친구 앨런도, 지금 눈 앞에 있는 투구꽃이라는 여인도 사실은 내 꿈속 인물이 아닐까 하고.   거기까지 생각하다 깜짝 놀라 정신이 든다. 꿈이 아니다.  눈앞에 서있는 여인은 얼마전 마주친 ‘투구꽃’이었다.  그녀가 반가웠다.  그도 그럴 것이 저승에서 안면 있는 영혼은 친구인 앨런과 이 여인, 투구꽃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인데.”

하고 내가 대답했다.

“나 취직했거든.  오늘이 첫 출근이라 아직 받은 것은 없지만 운이 좋아서 첫 월급 받으면 내가 한잔 살게.  저번에 맥주 잘 마셨다는 말도 못하고 보내서 아쉬웠던 것도 있고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어.”  



민속촌


출근



작가의 이전글 친구, 앨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