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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2. 2020

솔로탈출 1

6화

매화꽃 비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사락사락 그 중 몇 송이가 전망대 안까지 날려 들었다. 투구꽃은 치마 한쪽을 살짝 잡아당겨 옷깃에 붙은 꽃잎을 털어냈다.  

“첫 출근이라. 축하한다. 직장은 어때?  마음에 드니?”

“선임 별명이 독버섯인데 소문을 듣자 하니 무시무시한 인물인 것 같다. 동료들이 내가 오래 못 버틸 거라고 내기까지 한 모양이야.”

“오호, 독버섯이라. 재밌는 별명인데.”

투구꽃은 재미있다는 듯 쿡쿡 웃었다.  

“어차피 내 목표는 저승에 계신 어머니를 만날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그 이후 저승에서 더 머물고 싶은 생각도 없고 완전히 소멸된다고 해도 겁나지 않아.  그래서 말인데, 임무 해결에 상관없이 하루라도 빨리 어머니를 찾고 싶어. 혹시 나를 도와줄 수 있니?”

“네 어머니가 저승에 있는 영혼이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다. 영패 열 개만 있으면 돼.”

나는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영패를 꺼내 보았다.  아무리 여러 번 세어봐도 여섯 개, 그대로다.  

“영패는 임무 완성하는 것 외에는 받을 방법이 없는 건가?”

“다른 영혼에게서 선물로 받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맘 좋은 영혼을 찾는 것이 어렵겠지. 저승의 영혼이라면 영패 스물 다섯개를 모아 환생하기 위해서 어떤 짓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테니까.  영패가 없더라도 네 어머니 쪽에서 너를 찾으러 올 수도 있으니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으냐?”

투구꽃은 말을 마치고 나를 빤히 바라본다.  검고 깊은 눈이다.  내 뒤에 펼쳐진 하늘에 정신이 팔린 듯 생각에 빠진 얼굴.   친절한 목소리인 데도 불구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뭔가 가 있다.  본능 아래 감춰진 촉이 발동할 때만 느끼는 기분 이랄까.    

 “이번에 받은 임무는 어떠냐?  진행 잘 되고 있니?”

그녀의 다음 질문을 듣자 내 촉이 확실 해진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친절함이라는 포장지에 감춰진 뭔가 가 있다.  잘 벼린 칼처럼 날카로운 무언가가.

“첫 임무를 맡았으니 잘 해내고 싶은데 문제는 그 임무가 ‘솔로 탈출’이라는 데 있어.  솔로 탈출을 해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일이라도 그 시작점은 간단한 것이다.  꽃을 기르려면 꽃 나무를 구해야 하고, 꿀을 팔려면 벌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하는 것처럼.”

투구꽃의 말이 맞다.  솔로 탈출을 위해서는 다른 영혼이 많은 곳을 찾아가야 한다.  혼자만 돌아다녀서는 아무 일도 안된다.  

“적을 이기려면 전장에 나가야 하는 것처럼 말이지?”

내 대답에 그녀는 싱긋 웃었다.  나는 처음으로 투구꽃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름다운 얼굴이다. 게다가 나를 걱정해 주고 있다.  어리바리 저승 초년생이 어려움에 빠진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녀의 단순한 친절을 곡해해서는 안된다.  친절은 친절로 되갚아 주는 게 맞다.

“적을 이기려면 전장에서 겁먹고 도망쳐서는 안돼.  적을 이기려는 생각 외에는 해서는 안된다.  눈물 흘릴 시간에 전황을 살펴야 한다. 꼭 이기고 돌아와라.  술은 그때 마시는 것으로 하자.”

이기지 못하면 돌아오지 못한다.   투구꽃도 서약서의 그 조항들을 알고 있을 게 틀림없다.

‘이기고 돌아올 게.’  

하고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장면 전환   민속촌, 퇴근 장면)

그러나 투지를 불사르며 뛰어든 전장에서 나는 처참하게 패했다.   처음부터 예견된 패배였다.  여성 영혼들이 많다는 곳을 찾아다녔고 실제로 수많은 여성들을 스쳐 갔음에도 그들과 눈 한번 마주치지 못했다.   말 한마디 걸어보지 못했다. 무거운 다리를 끌며 민속촌으로 돌아왔을 때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으므로 아침에 집합했던 장소에 도착해서는 땅바닥에 주저 앉아 동료들이 속속 도착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앨런은 거의 마지막에 도착했는데   그도 어지간히 지쳤는지 아무 말도 없이 내 곁에 털썩 주저 앉았다.

“업무보고 시간이다.  집중!”

아침에 서약서 사인을 받아갔던 덩치가 주의를 끌었다.   한 명씩 덩치 앞으로 나가서 그날 성과를 보고한다.  내 성과는 ‘없음’이다.

“출근 첫날에는 성과를 내는 것 보다는 분위기 파악이 우선이지.”

덩치는 퇴근 도장을 찍어주며 위로 비슷한 말을 해주었다.  



“떠나온 지 100여년 만에 어릴 때 살았던 동네에 돌아갔더니 짝사랑하던 옆집 소녀, 제시의 증손녀가 낳은 세 살짜리 딸이 제시와 내가 다니던 교회 앞마당을 뛰어다니고 있더라.  내 이름이 적힌 참전용사 기념비, 가족들이 살던 집도 돌아보고 동네 묘지에서는 어릴 때 같이 놀던 친구들도 몇 명 만났어. 취직이 되면 가보겠다고 항상 미뤄왔던 여행이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임무 첫날 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하루였어.”

앨런은 직원용 식당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혼자 다니는 여성 영혼을 쫓아다니면서 말을 걸어보려고 했는데 죄다 실패했다. 너도 알다시피 여자들은 이상한 동물이라 쫓아다니면 도망쳐 버린다.  호의를 보이면 집적댄다고 벌레취급을 하지.  그렇다고 안 쫓아다니면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지. 내 입장에서는 솔로 탈출 보다 보병대 참호 파는 일이 훨씬 쉬워. 그런데 너는 왜 웃고 있는 거냐?  싱거운 자식.”

그랬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와 같은 모태 솔로 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 상대를 찾지 못하거나 찾아도 접점을 캐치하지 못한다.  앨런의 고민도 내가 늘상 하던 것과 같았다.

“셰익스피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험한 언덕을 오르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천천히 걷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런던 국립 중앙 도서관에 다녀왔다.  수십권의 책을 뒤져서 우리 임무에 도움될 만한 정보를 추려왔지.”

  그는 호주머니에서 종이 한 뭉치를 꺼내어 테이블위에 펼쳐 놓았다.  꽤 여러 장이라 직원 식당 20인용 테이블을 반이나 뒤덮었다.    

“‘인간관계는 가장 어려운 것이지만, 가장 쉬운 것 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사랑을 쟁취하는 확실한 길은 그 사람에게 새로운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느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앨런이 적어온 글귀를 소리 내어 읽었다.  

“글귀 내용은 좋은데 지나치게 추상적인 건 아닐까?  앨런, 우리 임무는 기껏해야 솔로 탈출일 뿐이야.  어떤 사람들에게는 식은죽 먹기 보다 쉽다는.  솔로탈출 하기 위해서 명언도 찾아봐야 하는 걸까?”

“그래?  그럼 이 명언은 어떠냐?  ‘불나방이 되지 말고 불이 되라!’”

“그건 좀 마음에 든다만.”

“그렇겠지.  저 유명한 카사노바 선생이 영화에서 한 말이다. 네가 읽은 구절들 전부 카사노바가 회고록에서 베껴온 거야. 다시 정리하자면 우리가 여자들을 쫓아다녀서는 안된다는 거다. 여자들이 우리를 쫓아다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

“그게 말이 쉽지.”

현실은 각박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임무해결을 위해 두가지 방법으로 접근해 보려고 한다.  그 첫번째는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거다.  카사노바 선생의 회고록 뿐 아니라 필요한 모든 정보를 연구해서 실전에 적용해 보는 거지. 그리고 두 번째는 행정적 접근이다. 솔로 탈출이 임무인 여성 사원들로 구성된 부서도 어디엔 가 있을 게 아니냐?  정 안되면 그쪽 부서와 협업하는 방법도 있다. 임무 완수가 간절한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우리 부서에도 아직 성과 없는 놈들이 수두룩하니까 양쪽 부서원 중 지원자들 숫자만 맞으면 이쪽이 훨씬 현실적으로 가능성 있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앨런은 결코 어리버리 순진한 녀석이 아니었다.  깜박 잊을 뻔했다.  그가 셜록홈즈와 한 고향 사람인 것을.

“부서간 협업은 좋은 생각이긴 한데 그래도 거기까지는 안 갔으면 한다.  어떻게든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면 해.”

“너는 어떤 방법을 생각하고 있니?”

“솔로 탈출에 성공 했던 지인들을 관찰해 본다 거나.”

순간 번쩍 머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내 동생이 나와는 다르게 인기가 많거든.  여자들이 줄줄 따라다닌다고 자랑한 적도 많아.  내일은 동생이 어떻게 지내는지 따라다니면서 관찰해 볼까 해.  내가 모르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것도 좋겠다.  나는 대영국립중앙도서관에 다시 가볼 생각이다.  좋은 정보 찾으면 나눠 줄게.”

흔쾌히 대답한 앨런은 방금까지 냉정하고 차가운 분석가였던 자신은 까맣게 잊은 듯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불쑥 말하자 앨런은 의아한 듯 나를 건너다보더니

“존 던이라는 시인이 쓴   No man is an island (노 맨 이스 언 아일랜드) 라는 시가 있다.  

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양(大洋)의 한 부분 이어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다.  제목처럼 ‘인간은 누구도 홀로 있는 섬이 아니다.’ 라는 의미지.  어떤 일이든 우리가 머리를 합쳐서 함께 하면 결국에는 해결할 수 있을거다.  힘내자.”
 
 

취업준비를 하는 동안 내내 나는 혼자였다. 도서관에서도 식당에서도 나는 고독한 섬처럼 외로웠다. 그런데 낯설고 외로운 저승에서는 혼자가 아니다.  불쑥 나타나 도움을 주는 투구꽃과 의리 있는 앨런도 있다.

다행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라도 흐를 것 같은 눈을 들어 먼 곳을 응시한다.  저승에서 맞이한 것 중 가장 따뜻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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