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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2. 2020

솔로탈출 2

7화

부슬부슬 가느다란 빗줄기가 땅에 떨어지는 부분마다 뿌연 안개로 피어 오르는 아침이다. 이것 저것 생각하느라 깜박 시간을 놓친 탓에 민속촌에 도착하자 어제 봤던 동료들은 이미 출근 도장 받는 줄에 서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나를  돌아본다. 다들 놀란 표정이었다.

“박진한!  어딨어? 벌써 도망 친거냐? 있으면 대답해라.”

덩치가 부르는 소리에 움찔했다.  

“여깄습니다!”

덩치가 가리키는 곳에 사인을 갈겨 넣었다.  그 위에 도장을 꾹 눌러주며 덩치가 말을 이었다.

 “오늘은 제대로 할 수 있겠나?”

“넵!”

“그래야지, 언제 월하향이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다시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해 쏟아진다.  월하향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당연히 나오는 반응이다.  그새 조금은 익숙해졌다지만 아직은 뒤통수가 따끔거린다.  어쩌겠는가?  얼굴은 몰라도 그 이름만으로도 위력이 대단한 선임을 모신 죄다.



출석 도장만 찍고 동생 정한이 있는 곳으로 찾아갈 생각이었다.  정한은 나보다 세 살 어리고 키는 십 센티나 더 크다.  아버지를 빼 박은 나에 비해 그는 엄마를 닮아 잘 생겼다.  그 뿐 아니다. 공부에다 운동도 잘 하고, 행동까지 반듯한 녀석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어딘지 믿음이 가는 모범생 타입 말이다.  거기에 비해 나는 평범한 편이었다.  그러나 정한의 형이라는 이유로 매번 그녀석과 비교되었다. 비교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어찌 됐든 즐거운 경험이 아닌 데다 칭찬 듣는 것이 대부분 정한 쪽이다 보니 질투로   아버지 몰래 정한을 괴롭힌 적도 있었다.  물론 어릴 때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 녀석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내 장례식 이후 처음으로 보는 동생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정한을 못 알아볼 뻔했다.

그는 공대 4층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아침도 못 먹은 듯 꺼칠한 얼굴에 지친 표정으로 구부정하니 앉은, 웃음기 없이 굳은 표정에는 지난날 나를 기죽게 하던 수려함은 찾아볼 수 없다.   수업이 끝나자 마자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도서관 책상 사이에 고개를 내내 처박고 공부를 한다.

그게 전부였다.

하루 종일 교실과 도서관을 오간다.  그동안 그의 눈은 휴대폰 액정이 아니면 태블릿 PC에 고정되어 있다.   기대했던 핑크 빛 무드는커녕 다정한 인사 한번도 없는 하루다.   녀석의 하루는 사막 같던 내 삶보다 더하면 더 했지 나은 데가 없었다.  하루 종일 정한과 함께 있다간 솔로 탈출은 커녕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책 사이에 잠겨 익사할 것만 같다.   


“이래서는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잖아.  차라리 다른 데로 갈까?”

고민을 시작했을 무렵 정한의 수업이 끝났다.  갈비집으로 아르바이트 가겠지 싶었는데 정한은 갈비집과 반대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가 들어간 곳은 학교와 가까운 카페였다.  자리에 앉은 정한은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주위를 둘러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뭔가가 일어나는 건가?”

하루 종일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싶다.  금세라도 카페 문을 열고 예쁜 여학생이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감으로 심장이 콩닥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타난 것은 건장한 중년 남자였다.  정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를 맞았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틀에 박힌 인사가 이어졌다.

“박진한씨 가족 분 되십니까?  어제 전화 드렸던 한 승철입니다.  딸아이 문제로 저번에 아버님과는 전화로 말씀 나눴습니다만.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박진한 동생 박 정한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은 내가 기대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리 들어봐야 솔로 탈출에 필요한 정보도 얻을 수 없을 거였다.  그런데 두 사람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거 무척 신경이 쓰인다. 혹시 내 흉을 보는 게 아닐까 싶어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그들의 대화를 요약해 보자면 이랬다.  중년 남자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그 애 이름은 ‘한 하나’ 고 내가 사고를 당했던 순간 바로 옆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는 내가 자신을 구하고  대신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듣고 보니 사고 당일에 구급차 옆에 서있던 여학생이 기억났다.  내 구두 한쪽과 핸드폰을 들고 하염없이 울고 있던 그 학생 말이다.

“그건 오해입니다.  형 사고 당시 찍힌 CCTV 화면을 경찰서에서 확인 했을때 하나 학생은 형과 사이를 두고 떨어져 서 있었습니다.  사고 당시에도 하나 학생이 혼자 서 있다가 갑자기 발을 삐끗 하면서 차도로 밀려 가기는 했지만 곧 다시 중심을 잡았습니다.  형이 하나 학생과 접촉하지 않았던 것도 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경찰에서도  하나 학생은 형 사고와 아무 연관이 없다고 확인해 주었고요.”

정한은 말 중간에 몇 번이나 눈썹을 찌 뿌렸다. 내가 당한 사고 상황이 떠오른 듯 괴로운 표정이다.   하나의 아버지는 곤란한 표정으로 턱을 긁적였다.

“죽은 하나 엄마에게는 오랜 지병이 있었네. 하나를 낳고 나서 병세가 더 심해졌기 때문에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고  하나가 여덟 살 때 결국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네. 변명 같지만 사업한답시고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에 하나에 대해 신경 쓰지 못했 다네.  아내가 죽은 후 하나가 심각한 우울증을 앓기 시작한 것도 최근 에야 알았지.  의사 말로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싶어서 서둘러 재혼한 것이 하나에게는 오히려 독이 된 것 같다고 하더군.”

하나의 아버지는 식어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자네 형님 사고 이후부터 하나가 달라졌네.  사고로 죽을 뻔했던 자신을 자네 형님이 구해주었다고 철석같이 믿는 눈치야.  전에는 밥도 잘 안먹고 우울하게 지내던 애가 그 사고 이후부터는 살아있다는 게 감사하다는 둥, 대신 돌아가신 자네 형님에게 고마워서라도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둥 하지 뭔가. 내 입장에서는 자네 형님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네.”

“네, 그렇지만 하나가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땐 어쩌시려고요?”

“자네와 자네 아버님, 내가 입만 잘 맞춘다면 내 딸이 알아낼 방법이 없어.  나 이래봬도 사업체 네 개나 경영하고 있네.  자네 학비정도는 지원해 줄 능력도 있어.  원한다면 취업도 시켜줄 수 있네.  나쁜 말 해달라는 것도 아니니 제발, 가엾은 여학생 구원해 준다 생각하고 도와주면 좋겠네.”

간곡한 말이었다. 그러나 정한은 썩 내키지 않는 듯 눈을 내리깔고 한동안 테이블 한곳만 바라보고 있다.

“돈도 더 보낼 수 있네.”

하나의 아버지는 무릎이라도 꿇을 듯했다.  그러나 정한은 고개를 저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저번에 보내주신 돈도 다시 돌려 드릴 겁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드리러 나왔습니다.  대신 필요하시다면 도와는 드리겠습니다.”

정한의 칼 같은 말이 내 마음에 들었다.  내 동생이지만 멋진 녀석이다.

“그럼 언제 한번 자네 형을 모신 납골당에 가 줄 수 있나?  하나가 박진한씨 납골당에 가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노래를 해서 그러네.  내가 하나를 데리고 자네 형님 납골당에 갈 테니 자네가 와 있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나?  자네가 우리 하나에게 자네 형 대신 위로해준다면 하나도 만족할 거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한이 결심한 듯 대답하자 하나의 아버지는 감격한 얼굴로 정한의 손을 기도하듯 붙잡았다. 훈훈한 마무리에 나는 감동했다.  무엇보다 내가 죽은 후에도 사람들이 나에 대해 좋게 말하고 있다는 게 꽤나 만족스럽다.

“아이쿠!”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하나의 아버지가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진 것이다.  다친 곳은 없었지만 넘어진 것이 창피한 듯 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괜찮으십니까?”

“음.  괜찮아.  의자가 고장인지, 뭘로 밀린 것처럼 뒤로 확 넘어가는 군.”

하나의 아버지는 넘어지며 부딪힌 다리가 아픈지 한 손으로 문지르며 붙잡아주는 정한의 손에 몸을 기댄다.   그러나 다시 한번 벌러덩 옆으로 넘어졌다.  



투구꽃이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그녀가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보라색 치마가 허공에 흔들리는 모습은 내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숨이 턱 막혔다.  입을 떡 벌리고 정신까지 놓고 바라본다.  그녀의 검은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증오도 미움도 없다.

‘파팍’

불꽃이 튀었다.  투구꽃의 손끝에서 나온 빛이 하나의 아버지 다리를 관통했다.  그는 또 바닥에 뒹굴었다.  내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아무리 고쳐 봐도 그녀는 투구꽃이다.

 어제 오후 한강 자벌레 전망대에서 나지막이 시조를 읊조리던.

새로 시작한 일은 어떠냐며 나긋한 미소를 지어 보이던.

그녀였다.

암흑처럼 잔인한 독화살처럼 그녀는 두 번이나 더 하나의 아버지를 공격했다.  

“어르신!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정한이 하나의 아버지를 끌어안고 부축할 때 에야 그녀는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정한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카페 주인과 아르바이트생, 주위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앰뷸런스 부를까요?”

카페 주인이 그들에게 묻는 사이 투구꽃은 깜박 사라져 버렸다. 꿈이라도 꾼 걸까 멍하니 생각했다.  ‘설마’ 하며 고개를 몇 번이나 저었다.  투구꽃이 포악하다는 말, 잔인해서 다른 영혼들이 벌벌 떤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퇴근 시간  장면 전환이 필요하지는 않을듯 )


“진한!  여기서 뭐해?  곧 퇴근 시간이야.”

갑자기 나타난 앨런이 내 어깨를 툭 칠때까지 나는 멍한 상태로 카페에 서 있었다.  

“너 괜찮아?”

앨런이 몇 번이나 다그치듯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넋이 빠진듯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앨런은 그런 나를 끌고  민속촌으로 데려갔다.  우리는 퇴근 도장 받는 줄에 섰다.

“우리 이제 죽었다, 진한. 월하향이 나타났어.  오늘 업무 보고는 월하향에게 해야 한대.  저기 보이지?  저 사람이 우리 선임 월하향이란다.”

“누구?”

“저기, 앞에 있는 사람 말이다.  보라색 드레스 입은 여자 영혼.”

“보라색 옷 입은……  누구?  투구꽃?!”









  



솔로탈출


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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