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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2. 2020

월하향

8화

그렇게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퇴근 전 업무보고 하는 줄에 선 풋내기 신입사원과  독버섯,  투구꽃처럼  독한 별명으로 치장한 선임 월하향으로.

“저와 제 동기 박진한을 포함한 우리 부서원 열 여섯 명이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서명 받아서 내일까지 제출하겠습니다!”

내 앞 순서였던 앨런은 아직 브리핑 중이었다.  그가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키는 게 보인다.  앨런을 향한 박수가 쏟아졌다.  덩치도 만족스러운 듯 웃고 있었다.  내 눈은 덩치 뒤에 서 있는 월하향에서 멈췄다.  그녀는 웃음기 없는 얼굴이었다.

“처녀귀신 부서에서도 호의적인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그 쪽도 총각귀신들 찾아다니느라 고생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저승생활 수년 만에 이렇게 효율 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사원은 처음입니다.  실행해 보고 성과가 좋은 경우 앞으로도 이 방법을 계속 고려해 볼 생각입니다.”

덩치가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 부서원 스무 명 중 아직 성과가 없는 열 여섯 명이 모두 서명을 할 모양이었다.  덕분에 부서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다들 벙글 거리던 이유가 있었다.  우리들 중 웃고 있지 않은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나는 화가 나 있었다. 웃을 기분이 아니다.  머릿속이 마구 엉켜 혼란스럽다.  

“뭘 해?  얼른 보고하지 않고?”

내 순서가 되자 덩치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재촉했다. 그러나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월하향은 그제서야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투명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마치 나라는 인간을 처음 발견한 눈빛이었다.

“너도 서명하겠다는 말을 하려는 거였지?  그런것 같습니다, 월하향님.”

덩치가 내 대신 설명하자 월하향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까지 명단 제출하라.”

얼음물이 뚝 뚝 떨어질 듯 차가운 목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독버섯’ 다운 울림이었다.




저승이라는 곳은 아무래도   적응이 안된다.  

영혼들이 불쑥 나타나서 인사도 없이 제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것이 그렇다. 내 대답은 들어볼 생각도 없다. 덕분에 몇 번이나 “저기요!”  를 외치며 그들이 사라진 허공을 허탈하게 바라보아야 했었다.  그러나 이번 만은 달랐다.  퇴근 허락이 떨어지자 마자 월하향과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녀가 사라진 허공에 바보같은 질문을 해버릴 것 같아서, 그 바보 같은 질문을 월하향이 듣게 될까 봐서였다.   대신 직원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텅 빈 식당 창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간 현기증이 몰려왔다.  편의점에서 처음으로 그녀를 만났을 때 알았어야 했다 나는 벌레 보다 못한 신입사원이고 그녀는 단순한 호의를 베풀었을 뿐이다.  선임으로 월하향을 만난 후 에야 현실을 깨닫다니, 내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었다.  

“월하향은 저승에 온지 600년이 넘었대.”

어느새 내 곁에 나타난 앨런이 내 생각의 이어짐을 끊어내 듯 말을 걸었다.   

“그런데 왜 환생하지 않았을까?  설마 영패 스물 다섯개를 다 모으지 못한 건 아닐텐데.”

“나도 들은 이야긴 데 지금 월하향이 꽂고 다니는 황금 비녀가 영패 스물 다섯개하고 바꾼 거래. 그 다음 영패 스물 다섯개로는 보라색 옷을 사더래.  완전 미친거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 같은 영혼은 영패 한 두개 벌겠다고 죽을 고생을 하는데 어차피 환생하면 쓸모도 없는 것을 왜 사느냐고 누군가 물어봤던 모양이다.”

“대답이 뭐였대?”

“저승에서는 행복하니  환생할 생각 같은 건 없다면서 비단 주머니 안에 든 영패 수 백 개를 보여주더라 는 거야.”

내 질문에 방금 나타난 다른 녀석이 대답했다.  두꺼운 안경을 코 위에 걸쳐 쓰고 두꺼운 사전을 품에 안고 다니는 놈이다.

“그 소문이 퍼지니까 월하향의 영패를 뺏으려는 놈들이 등장했어.  아무리 독하다고 소문이 났어도 겉으로는 약해 보이는 여자다 보니 수 십, 수 백명이 거의 매일 월하향의 영패를 뺏으려고 덤벼들었어.  그런데 영패를 뺏기는커녕 다들 소멸했어.  월하향에게 당한거지.”

“우와.”

내 입에서 나온 것 치고는 너무 큰 함성이 쏟아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우리 부서원들로 가득하다.  다들 양 손으로 턱을 받치고 정신없이 그 이야기를 듣는 중이었다.  안경은 뜨거운 반응에 흥분해서 아까 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가장 먼저 당한 놈이 누군 줄 알아?”

모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월하향이 영패 수 백개를 든 주머니를 보여주었던 여자 영혼이었어.   영패 주머니 이야기를 장난처럼 흘렸는데 강도들이 월하향을 공격할 줄은 몰랐던 거지. 일이 커지니까 무서워서 월하향을 피해 숨어 다녔다는데 월하향이 끝끝내 찾아냈다는 거야.  딱 잡아 놓고 이렇게 손을 번쩍 들면서”

이 부분에서 안경은 연극 대사 하듯 한 손을 정말 번쩍 들었다.

“나는 너를 믿었기에 영패 주머니까지 보여주었는데 너는 나를 배신했구나. 하면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그 여자영혼을 조각조각 부숴 버렸다는 거야.”

앨런이 나섰다.

 “월하향에 대해서는 신경 쓸 거 없어.  다들 들었겠지만 내일 처녀귀신 부서와 협업이 성사되기만 하면 우리 모두 승진해 버릴 테니까.”

이번에는 함성과 박수가 직원 식당을 울렸다.   앨런이 활기차게 서명 명단을 나눠주며 설명했다.

“내일은 다들 옷 제대로 입고 머리도 감고 출근해야 된다.  출근 도장 찍자 마자 처녀귀신 부서와 미팅이 있을 테니까 말이야.  내일이면 우리도 솔로 탈출할 수 있어!”

(함성 효과음 가능할까요?)

함성이 다시 식당을 가득 채운다.

(진한은  월하향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월하향에 대해 배신감과  증오도 함께 느낍니다.  이 부분, 처절한 남성의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해 주셨으면 해요.)

 “서로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 뿐이라더니,  거짓말이었냐?  나한테 착한 척 한거냐?”

내뱉듯 중얼거렸다.  그것조차 하지 않으면 미칠것 같아서다.

그녀의 모든 것이 거짓이다.  나를 향했던 그 미소도.  다정하던 걱정도.  카페에서 하나의 아버지를 공격하던 걸 기억해야 한다. 언뜻 봐도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렇게 수 많은 영혼들을 소멸시켰던 거다.   그렇다.  월하향 따위는 신경 쓸 필요 없다. 월하향이든 투구꽃이든 독버섯이든 상관 없다.  다정하게 웃던 모습이 진짜인지 얼음처럼 냉정한 얼굴이 진짜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나는 승진할 것이고 다시는 월하향을 만나지 않을 것이다.  월하향을 향해 욕을 중얼거리며 앨런이 건네 주는 명단에 나도 이름을 적어 넣었다.


“진한,  괜찮아?  너 얼굴이 창백하다.”

앨런이  내 어깨를 툭 친다.  

“아무렇지도 않아.  죽은 귀신이 얼굴 창백한 게 정상인거지. 하하.”

거짓으로  웃어보인다.  순간 텅 비어버린 생각 사이로  다른 생각 하나가 비집고 들어온다.

‘월하향이 나를 향해 거짓말을 할 때,  거짓으로 웃었을 때  기분도 이렇게  더러웠을까?’





달빛이 빗물처럼 창문위를 흘러내린다.   밤이 되면서 세상은 달빛과 어둠 두 곳으로 나뉘었다.   버림받은 아기 고양이처럼 불안하게 서성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낯 익은 집 앞에 서 있었다.  아버지와 정한이 살고 있는, 그립고 따뜻한 품속같은 곳이다.   빨려들 듯 집 안으로 스며들었다.  밤 늦은 시간이지만 불이 켜져 있다.   아버지와 동생은 거실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는 중이다.   저승으로 떠난 후 처음으로 돌아온 집이다.  감회 가득한 기분으로 한 바퀴 둘러보았다.   내가 쓰던 방부터 들어가 본다.  모든 것이 내가 있을 때 그대로다.  거실로 나와서 아버지와 동생이 보이는 창문 가에 앉았다.  말없이 티브이만 보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려니 마치 내가 살아서 함께 있는 느낌이 든다. 마음이 모처럼 차분해졌다.   티브이에서 눈을 돌린 아버지가 동생에게 물었다.

“정한아, 너 꿈 해몽할 줄 아니?”

“꿈 해몽요?  저는 못하지만 인터넷으로 검색해 볼까요?  무슨 꿈을 꾸셨는데요?”

동생은 냉큼 핸드폰을 집어 들면서 대답한다.

“어젯 밤에 네 형이 꿈에 나와서 말이다.  하도 반가워서 진한아 하고 불러도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사라져 버리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영 마음이 안 좋아서.”

“아버지, 형 걱정 많이 되세요?”

“걱정은 무슨.  저승에 갔으니 보고 싶어서 그렇지.  이제는 다시 못 본다 생각하니까 가슴이 아파서 그렇지.  걱정은 안돼.”

“형은 이제 취직 걱정도 할 필요 없고, 돈 벌려고 밤 새도록 등짐 안 날라도 되고, 보고싶던 엄마 만나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거예요.  아버지가 형 생각을 자꾸 하고 이렇게 아프니까 형이 걱정하나 봐요.”

“그럴까?”

“네, 아버지 오늘 약은 챙겨 드셨어요?”

“응.  아까 먹었어.”  

“아버지가 나으셔야 형도 우리 걱정 안하고 맘 편히 지내죠.”

“이렇게 생각해 보면 키우면서 잘 못해준 것만 자꾸 생각이 나서 말이다.  미안해서…….”

 아버지는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숨이 가빠진다.  지친 듯 소파에 누워 버리고 말았다.  순간 미안함에 울컥했다.  어쩌면 나는, 나라는 인간은 아버지와 동생을 이토록 까맣게 잊고 있었던가.   저승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빴다는 건 구차한 변명이다.  내가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는 병을 얻으셨고 동생은 초췌하게 반쪽이 되었는데 정작 나라는 놈은 뭘 하고 있었던가.  투구꽃 따위에게 신경 쓰며 괴로워하다니,    

 “아버지, 정한아.  미안해. 미안해요.”

가슴 깊은 곳에서 피눈물이 흘러 나듯 고통이 솟았다.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눈물을 참는다.  그럼에도 내 양 손가락 사이에서 뜨거운 눈물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장면 전환  민속촌 마당  출근길  시간을 많이 둬 주세요.)


어김없이 아침이 왔다.  달빛이 물러난 자리에 햇빛이 밀려든다.  햇빛에 쫓기듯 어쩔 수 없이 나도 출근이다.  민속촌 앞마당에 도착하니 이제는 익숙해진 아침 풍경이 펼쳐진다.  우리 부서 직원들이 줄을 서서 출근 도장을 받고 있다.  그런데 어제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다들 머리에 힘도 주고 옷도 제대로 다려 입었다.  세수도 멀끔히 했다.  흐트러진 머리에 구겨진 옷 그대로 출근한 것은 나 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나타나자 동그란 눈동자들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그 눈빛들도 어제와는 달랐다.  훨씬 친해진 표정이다.  몇몇은 아는 체 손을 흔들기도 한다.

“여!  박진한!  무슨 배짱이냐?  세수 안 해도 외모에 자신 있다 이거냐?”

심지어 한 녀석은 내 어깨를 툭 치며 장난을 걸었다.   아, 그렇지!  오늘 처녀귀신 부서와 단체 미팅이 있는 날이다.   

“살아있을 때 못 풀었던 소원을 드디어 푸는 구나.  이히히.  솔로 탈출에 승진까지.  오늘 운 대박이다.”

다들 들떠서 술렁인다.   그 눈치를 아는지 덩치도 별 말없이 도장을 찍어준다.  ‘빨리 빨리’ 도장 찍고 미팅하러 가자는 분위기다.  줄이 빠르게 짧아져서 금세 내 차례가 되었다.   익숙하게 사인을 하고 덩치가 출근 도장을 찍어준다.  

“박진한, 너는 미팅에 안 가도 된다.”

덩치는 깜박 잊은 게 생각났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네?  무슨 말씀 입니까?”

“대신 청첩장이나 받아 가라. 솔로 탈출도 못한 놈들이 이렇게 수두룩한 데  어떤 놈은 결혼을 하니,  참나.  세상은 불공평 하다니까.”

“누구 청첩장인데요? 미팅에는 저만 가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어리둥절해서 물어보는 나를 향해 덩치는 의미있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그 청첩장이 네 결혼식 청첩장이더라고. 지금 미팅 갈 때가 아니다.  청첩장 받아들고  혼인식장으로 당장 튀어 가도록!  이야, 날씨 좋다.  결혼하고 미팅하기 딱 좋은 날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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