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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2. 2020

영혼 결혼식 1

9화

황당하다는 말이 있다.  ‘말이나 행동 따위가 참되지 않고 터무니없다.’는 의미의 형용사로 일의 전개가 내 예측과 맞지 않을 때, 그런 이유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헤아려 짐작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말 뜻은 간단하게 보여도 황당한 일들을 겪게 되면 정신이 없어진다.   갑자기 저승으로 떠밀려왔을 때 부터 영패를 모으겠다 고 면접시험을 보고 취업할 때 까지만 해도   힘든 줄 몰랐다.  취업한 곳이 하필 총각귀신 부서였다. 그 임무가 ‘솔로 탈출’ 인 것까지 참을 만했다고 치자.  그러나 갑자기 날아든 ‘내 결혼식 청첩장’까지는 생각 못했다. 생각이 멈춘 듯 멍 해졌다.

“옛다, 네 청첩장.”

부스럭거리며 서랍에서 봉투에 든 것을 꺼낸 덩치가 내게 그것을 내밀었다.  빨간 봉투 안에 하얀 청첩장이 들어있다.  열어보려는 데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입술을 깨물었다.

“진한, 너 결혼하니?”

뒤에 서 있던 앨런이 물었다.  대답 대신 청첩장 안을 빠르게 훑어봤다.

 “박씨 남자 망재 진한씨와 하씨 여자 망재 영지씨의 영혼 결혼식을 올린다”  

동료들이 어느새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시끌벅적 요란하다.

“나 살아있을 때 우리 동네에서 영혼 결혼식 하는 걸 본 적이 있어.  약혼했던 두 사람이 함께 놀러갔다가 사고로 죽는 바람에 두 사람 장례식 겸 결혼식을 함께 치렀거든.”

“이 짜식, 영혼 결혼식까지 올릴 정도면 보통 사이가 아니었을 텐데…….  좋겠다.  제수씨 어때? 예쁘냐?”

“죽기 전에 사귀던 아가씨야?  약혼자? ‘하 영지’라.   이름도 참 예쁘다.  축하한다.”

 “아니, 뭔가 잘못 된 것 같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사람이다.”

“설마….   모르는 사람이랑 결혼식을 한다고?  농담 하는거지?  하하하.”

앨런이 웃자 몇 명이 따라 웃었다.  그러나 벌개진 내 얼굴을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황당하네.”

탄식처럼 중얼댔다.  신랑 이름이 잘 못 적힌 것인가 싶어 청첩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다.

“청첩장까지 받고 무슨 소리냐?   네 이름에 아버님 성함까지 제대로 적혀 있는 걸 봐. 이래도   네 결혼식이 아니야?”

사태를 구경만 하던 덩치도 한마디 보탰다.  곁에 있던 앨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영지씨가 아주 오래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이라면 네가 깜박 잊어버릴 수도 있어.  당황하지 말고 한번 잘 생각해 봐.”

생각해 보나 마나 전혀 모르는 이름이다.

“제 생각에는 착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청첩장이 잘 못 배달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덩치에게 묻자 그는 둥그런 얼굴을 갸웃거리며 골똘히 생각하다 대답했다.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잘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네가 직접 혼인식에 가서 상황을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덩치의 말에 따라 청첩장에 적힌 결혼식에 가 보기로 했다. 착잡한 기분으로 청첩장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있는데 앨런이 나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일 해결되면 얼른 돌아와.  미팅 명단에 네 이름이 아직 적혀 있으니 늦게 라도 미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둘게.  어영부영 하다 오늘 미팅 기회를 놓치면 영영 승진을 못 할지도 몰라.  너도 알다시피 오늘의 미팅은 단순히 솔로 탈출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선임 월하향 한테서 벗어나 승진하는 것, 저승에서 소멸되지 않는 것. 그게 진짜 목표잖아.  내 말 알아듣지? ”

앨런의 단단한 손이 내 어깨를 꽉 움켜 잡았다.  우리는 잠시 눈빛을 교환했다.

안다.  그의 말뜻을.  승진이 목표가 아니다.  살아남는 것, 저승에서 버텨내는 것이 목표다.  그러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미팅이든 결혼이든 간에.


산속에서는 아침이 늦게 시작된다. 산허리를 감고 비친 햇살이 새 잎 돋기 시작한 나뭇잎 사이로 비쳐 들었다.   귓가에 새소리가 부산하다.   결혼식장은 이향산 골짜기 사이에 자리한 작은 암자였다. 암자 주위에는 하늘을 보고 뻗어 오른 편백나무가 빽빽한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다.  아까 받은 청첩장만 아니었다면 차분히 둘러보고 싶을 만큼 경치가 좋다.  공기는 새로 출시된 공기 청정기 수 십대를 한꺼번에 작동시켜 걸러낸 것처럼 깨끗한 데다   절 뒤로는 파랗게 맑은 하늘이 펼쳐지고 새털 구름이 옆으로 길게 흐른다.  어느 곳을 보나 완벽하던 풍경은 택시 한 대가 나타나는 것으로 일그러져 버렸다.  순간 불어온 매연냄새로 눈살을 찌 뿌렸다.   ‘부 웅’ 소리를 내며 들어온 택시가 암자 앞 주차장에서 멈췄다.  자동차 뒤 문이 열렸다.  내린 사람은 다름아닌 내 아버지, 그가 가슴에 품고 있는 건 내 영정 사진이다.  아버지 뒤를 따라 내린 것은 동생 정한이었다.   두 사람 다 양복 정장 차림이다.  순간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결혼식 신랑이 나일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걱정이 자꾸만 현실로 나타나려 하고 있었다.  

“아버지, 정말 하실 거예요?”

동생이 묻자 아버지는 가슴에 품고 있던 내 영정 사진을 양복 소매로 닦아내며 대답했다.

“네 형이 꿈에 자꾸 나타나서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는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좋은 곳에 못 가고 자꾸 나타나는 게 장가 못간 한이 있어서 그렇다지 않니?   결혼식 하고 천도제 해주면 좋은 곳으로 간다는데 어떻게 안 해주냐?”

“그러니까 형 생각이 나면 기도해주는 정도면 충분해요. 영혼 결혼식은 너무 하다는 말이죠.”

“그래, 나도 안다. 이상하게 보이겠지.  내가 미친거라고 욕해도 좋다.  무식한 아버지라고 해도 상관없어.  내 아들 죽어서 좋은데 간다면 나는 더한 짓이라도 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게, 살아있을 때 잘 해주던가.  죽은 다음에 결혼식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요.”

“저놈의 새끼가!”

아버지가 동생 등짝을 손바닥으로 짝 소리가 나게 후려쳤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넘어질 뻔했지만 동생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형이 결혼하고 싶을 거라는 건 아버지 생각이지 형 진짜 마음은 모르는 거잖아요.  그리고 아버지가 정해준 여자를 형이 좋아한다는 보장 있어요?  형 취향이 어떤지 어떻게 아세요?  이런데 쓸 정신 있으면 살아있는 나한테도 신경 써 보세요.  죽은 형만 자식이에요? 나도 아버지 자식이라고요.”

“야, 이놈아.  죽은 형 불쌍하지도 않니? 그런 소릴 할거였으면 여기까지는 왜 쫓아왔어?  너는 결혼식 장에 들어오지 마.  부정 탄다. 이놈의 새끼.”  

아버지가 그렇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뭇가지처럼 마른 노인이 펄펄 뛰며 큰 소리로 역정을 냈다.   금세라도 가슴을 움켜잡고 쓰러지지 않을까 보는 내가 아슬아슬한 기분이다.  동생도 입을 다물었다.  대신 아버지를 부축하려는 듯 팔을 붙잡는다.  그러나 아버지는 동생의 팔을 뿌리쳤다.  분이 풀리지 않는듯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아버지가 타고 왔던 택시가 떠난 자리에 승용차 도착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인이 내렸다. 그녀도 영정사진을 들고 내렸다. 예쁘장한 여성이 사진 속에서 방긋 웃고 있었다.  그제서야 암자 주위도 활기를 띠었다.   법당 문이 열리더니 여승이 마중 나왔다.  여승과 아버지, 낯선 여성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나누고 아버지의 손에 들린 내 영정 사진과 낯선 여성의 영정 사진이 사이 좋게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정한은 법당에 들어가지 않고 마당 구석에 있는 큰 나무 아래 평상에 앉았다.  착잡한 표정이다.  그가 갑자기 “형!” 하고 나를 불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응!”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곧 깨닫는다. 동생은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나는 죽었으니까.  영혼이니까 말이다.  정한은 마치 내가 곁에 있는 것을 아는 듯 그리움으로 축축 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형 장가보내느라 아버지가 고생 많이 하셨어.  영혼 결혼식 해준다는 곳은 안 가본 데가 없고 형수 될 분도 그 분 어머니 랑 직접 만나서 성격이며 사진이며 자세히 확인하셨 대.  결혼 비용도 우리 쪽에서 부담했어.  생각보다 많이 들더라.  아버지 일생 일대에 큰 돈 쓰신거지.  그리고 형수님 말이야, 살아있을 때 얌전하고 착했다더라. 그러니 형수님이 별로 맘에 안 들더라도 아버지 생각해서 어지간 하면 잘 살아. 싸우지 말고.  형수님이 잔소리하기 전에 미리미리 잘 해줘라.  그런데 형, 진짜 결혼 못하고 죽으면 한이 될까?  나는 잘 모르겠다. 결혼을 꼭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할 자신도 없어.  오히려 지금처럼 혼자이면서 자유로운 게 더 좋은데. 형은 어때?  결혼하니까 좋냐?  나는 어쩐지 형이 이 결혼을 반대할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드는데.”

그제서야 이 상황이 이해되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낯선 여성과의 갑작스러운 결혼식은 나를 위한다는 생각에 아버지가 준비한 일이었다.  정한은 말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 다 본다.  그의 눈 안에는 바람에 불려가는 구름이 보였다.  그는 생각에 잠긴 듯 뭔가를  흥얼대기 시작했다.  순간 양쪽 귀가 쫑긋 했다.  뭐지?  이 자식 랩을 하고 있는 건가?  비트가 제법이다.


 “나는 지난날의 추억을 후회해

후회해도 속죄는 죽은 후에 해

하늘에서의 속죄도 그녀는 들어줄까

이제 와서 후회한들 그녀는 돌아올까.”


 그런데 저 녀석, 언제부터 랩을 했던 거지?  정한이 랩 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다.  그러고 보면 동생이지만, 한 가족이라는 것 빼고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지 가장 원하는 게 뭔 지도 몰랐다.  막연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동생도 좋아하겠지 생각했을 뿐이다.


“제 엄마가 댁 아버님께 말씀드린 건 사실이 아니 에요.  죄송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낯선 여성 영혼이었다.  검고 긴 머리카락을 질끈 동여매서 올려 묶었고 운동복을 입고 있다.

“살아있을 때 얌전하고 착했다 더라는 말은 제 엄마가 저에 대해 갖고 있던 환상이었죠.  저는 등산이나 암벽 타기에 빠져서 일년에 일주일 빼고는 집 밖으로 나돌아 다니느라 가족들과 마주칠 시간도 없었어요.  그건 그렇고 댁이 제 신랑 되실 분인가요? 안녕하세요?  하영지라고 해요.”

여자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저는 박 진한이라고 합니다.”

 건강해 보이는 거무스름한 피부, 날씬한 허리, 적당히 붙은 근육.   세상 여자들을 ‘길 가다 돌아볼 만한 미인’, ‘가까운 데서 봐도 미인’ ‘멀리서 봐야 미인’으로 나눈다면 이 여성은 분명 길가다 돌아볼 만한 미인 축에 낄 게 틀림없다.  월하향이 파리하고 창백한 미인이라면 그녀는 생동감 넘치는 건강 미인이다.  그건 그렇고 왜 이 순간 ‘월하향’이 떠오르는 거지?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털어내 버렸다.

“오늘 결혼식 하실 건가요?”

영지의 눈이 반짝였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결혼식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하지 않을 방법이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럼 결혼하는 걸로 하죠.  결혼 식만요.  진짜 결혼 말고.”

“진짜 결혼?  결혼 식만?  그런 것도 있습니까?”

내 질문에 영지는 씩 웃었다.  한쪽 볼에 보조개가 귀엽게 파였다.

“결혼 식만 하고 각자 사는 거죠. 저승에서는 물론이고 환생해서도 댁과는 다시는 마주치지 않는 조건으로.  결혼했다는 이유로 남편이라면서 질척대면 골치 아프거든요.”

“질척대요?  하하하”

당돌한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때맞춰 암자도 부산 해졌다. 법당 안에서는 나지막이 두드리는 북소리에 섞여 여승의 독경 소리가 시작되었다.  방금까지도 큰소리 치던 게 언제 였나 싶게 영지는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결혼식을 시작하려는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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