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분 같아서 미리 알려드리겠는데 결혼식 끝나고 결혼반지를 끼더라도 저는 진한씨를 다시는 안 볼 거예요. 그래도 좋다면 결혼식에 참여하세요. 그렇지만 만약 진한씨가 평범한 결혼을 원한다면 저랑은 결혼하지 않는 게 좋아요. 지옥같은 결혼생활이 될 테니까.”
영지는 나에게 겁주려는 듯 얼굴을 마구 일그러뜨려 동네 불량배 같은 표정을 짓더니 권투라도 한판 하겠다는 듯 양 손으로 주먹질을 해 보였다.
“평범한 결혼생활 같은 건 관심 없지만 결혼식을 하면 결혼 반지를 받는 겁니까? 그렇다면 솔로 탈출의 증거로 그 반지가 효력이 있겠군요.”
회심에 찬 내 말에 그녀도 당차게 대답했다.
“반지뿐 아니라 만약 제 증언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제 조건만 지켜 주신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영지와 함께 알콩달콩 사는것 따위가 아니다. 솔로 탈출을 증명해 줄 물건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입니다. 저는 약속할 수 있습니다.”
내 대답이 끝나자 마자 땅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암자에 걸린 풍경이 땡강 소리를 냈다. 순식간이었다. 어디선가 회오리 바람이 불어 닥쳤다. 조용하던 암자는 순식간에 돌풍의 한 가운데로 들어섰다. 지진이라도 난 듯 세상의 모든 표면들이 흔들렸다. 그리고 잘게 부서졌다. 어지러움과 함께 두려움이 엄습했다. 비틀거리다 그만 땅에 주저 앉았다.
다음 순간 찾아온 것은 거짓말 같은 침묵이었다. 툭툭 소리를 내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법당 문이 활짝 열렸다. 그 문안에서 나온 것은 장삼을 입은 여승이었다.
“신랑 신부 영혼이 이 결혼에 동의했습니다. 두 영혼들은 식장으로 들어오세요. 결혼식을 치릅시다.”
다음 순간 나는 법당 안에 서 있었다.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이 진공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법당 안으로 끌려 든 것이다. 법당안에는 진한 향내와 함께 처연한 독경 소리가 가득 차 있었다. 스님이 두 명, 한 사람이 치는 북에 맞춰 다른 한 명이 독경을 한다. 나는 어느새 신랑이 입는 사모관대 차림을 하고 있었다. 영지도 연지 곤지에 족두리를 얹은 새 신부 차림이다.
북소리가 높아진다. 여승의 독경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옆 문이 열리더니 스님이 한 분 더 들어온다. 그가 진중한 걸음으로 대례상 앞에 섰다. 그리고 불경 소리가 뚝 멈췄다.
종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한 줄기 불어와 법당 안을 한 바퀴 맴돌고 갔다.
“신랑 입장!”
아버지가 내 영정 사진을 들고 법당 안으로 들어왔다. 한복 입은 여인이 아버지를 따른다. 손에는 나와 똑같이 신랑 옷을 입은 인형을 들고 있다.
“신부 입장”
신부 영정 사진이 입장했다. 역시 신부 옷을 입은 인형 든 여인도 따라 입장한다. 이 세상에는 없는 신랑과 신부 대신 두 사진과 신랑 신부 인형이 대례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섰다.
“화촉 점화!”
안내에 따라 아버지가 촛불을 켰다. 다음으로 신부측이 촛불을 켠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 인사하고 손을 씻으시 오.”
마리오네뜨라는 인형이 있다. 인형의 마디마디를 실로 묶어 사람이 위에서 조정하여 연출하는 인형극. 또는 그 인형을 말한다. 조종하는 사람은 막대기 든 손을 까딱 할 뿐인데 인형은 걷고 춤추고 노래도 한다. 지금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신랑 인형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면 내 허리도 굽혀졌다. 손을 씻으면 내 손도 씻겨진다. 마주 서 있던 영지도 신부 인형이 하는 대로 인사를 하고 손을 씻었다. 인형이 신랑인 나를 대신하는 것인지 내가 인형을 대신하고 있는 건지 헛갈릴 지경이다.
“신랑은 두 번, 신부는 한 번 절 하시오.”
예물 교환을 하고 나서 신랑과 신부에게 술을 따라준다. 술잔을 높이 받들어 하늘에 대고 부부가 되기로 맹세한다. 이어 술잔을 바닥에 댄다. 서로 반 잔씩 마신 술잔을 바꿔 마셨다.
“다음 생에는 좋은 곳에서 태어나 행복하기를 바라며 두 사람은 신행을 하겠습니다. 신행 절차가 끝날 때까지 새로 신방에 든 신혼 부부를 방해해서는 안됩니다. 가족분들은 나가셔서 점심 식사를 하고 돌아오십시오. 오후에는 천도제가 진행될 것입니다.”
스님의 설명과 함께 결혼식이 끝이 났다.
종소리가 났다.
창문이 흔들린다. 켜놓은 촛불이 일렁였다.
결혼식 장으로 나를 빨아들였던 알 수 없는 힘이 이번에는 나를 구석진 곳, 아늑한 방에 데려 다 놓았다. 매화꽃 가득한 병풍 앞에 비단 이불이 깔려 있다. 핑 현기증이 났다. 아까 마신 술 때문인지 머리도 어지럽다. 비단 이불 위에 털썩 주저 앉았다. 깨끗한 비단 이불을 보니 피곤이 몰려왔다. 그러고 보니 저승에 와서는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잠시만 누워 보고 싶어 졌다. 이불 위에 대자로 누운 채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던졌다. 제대로 푹신한 방에 누워 본 것이 얼마만인가? 온 몸이 녹신하게 이불속으로 스며든다. 눈을 감자 마자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아! 아파요!”
비명소리에 누워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영지였다. 영지는 비단 이불 곁에 엎드린 채 버둥대고 있었다. 머리에 커다란 비녀를 꽂고 족두리를 쓴 데다 한복에 원삼까지 입었다. 그녀의 비녀가 내 소매에 걸린 것이다.
“아아, 머리 빠지는 것 같아요! 살살 빼줄 수 없으세요?.” 영지의 비명이 아까 보다 더 심해졌다. 그녀의 머리는 단단히 엉켜 있었다. 겨우 족두리를 벗기고 비녀를 빼내자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만지며 툴툴댔다.
“머리에 쓴 건 무겁지, 옷은 치렁거리지, 신발은 왜 이렇게 불편한지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했어요. 옛날 사람들은 이런 옷을 내내 입고 어떻게 살았나 싶어요.”
순간 내 눈앞에 어른 거린 것은 월하향의 모습이었다. 가녀린 체구에 항상 커다란 얹은머리를 하고, 무거운 황금 비녀와 전모를 갖춰 쓰고 한복을 입고 있는 그녀는 어떨까, 불편하지 않을까?
“그렇게 불편합니까?”
“네. 안 하던 거라 더 불편했는지 몰라요. 그쪽도 불편하지 않으셨어요? 양복보다 훨씬 불편하죠? 그 차림이.”
“저야 허리띠 말고는 무거운 게 없으니까 뭐, 괜찮습니다.”
영지는 내가 벗겨준 족두리와 비녀를 이불 곁에 내려놓고 원삼과 한참을 낑낑댄다.
“큰일이네요. 조금 있다가 사람들이 들어와 우리가 첫날 밤을 잘 치렀는지 확인할 때 신부 옷고름이 풀려 있어야 한다는데 이상하게 옷고름이 풀리지 않아요. 어떻게 하지요?”
“힘껏 잡아당겨 봐요. 아니, 저쪽을 붙잡고 오른쪽으로. 더 세게.”
“그래도 안돼요.”
영지는 씨름하던 옷고름을 내팽개치듯 하더니 지친 듯 벽에 기대어 앉았다. 이러다 결혼식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면 곤란하다. 결국 내가 나섰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영지의 옷고름을 내 손으로 잡아당겼다. 부드럽게 스윽 하고 풀린다. 너무 쉽게 풀려 내가 오히려 놀랐다.
“고마워요.”
몸을 웅크린 채 벽에 기대어 앉은 영지는 어디로든 달려나갈 준비를 마친 치타처럼 긴장되어 있다. 방금 결혼식을 마친 신부 라기보다 수십년 특수 훈련으로 다져진 여전사가 한복으로 위장하고 적진에 숨어든 것처럼 보인다.
“저는 미술관 귀신부서에서 일하고 있어요. 미술관에서 머물면서 사람들이 작품을 관람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도록 도와주는 게 임무죠. 진한씨는 혹시 총각귀신 부서에서 일하시나요?”
“네?… 네.”
내가 왜 그녀를 여전사 같다고 느꼈을까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녀는 내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 듯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아까 솔로 탈출할 수 있냐고 물어봤을 때 짐작했어요. 저는 어떤 직업이든 그 조직이나 사회에 도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총각귀신 부서에서는 솔로 탈출을 통해 저승에 어떤 도움을 주나요? 솔로 탈출은 사회적인 필요 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욕구에 가깝지 않을까요?”
“총각귀신 부서의 임무는 잃어버린 인연의 고리를 찾아 제 자리에 다시 거는 일입니다.”
총각귀신 부서에 처음 도착했을 때 덩치가 서명하라며 던져준 서류에서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제일 첫번째 줄에서 읽은,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이었다.
“인연을 만드는 일이 과연 좋은 일일까요?”
생각에 잠겨 있던 영지가 물었다. 대답할 말을 찾고 있는 나를 향해 그녀가 말을 이었다.
“살아있을 때 지독한 스토킹을 당했어요. 몇 년 동안 전화로 괴롭히고 그것도 모자라 집 앞으로 찾아와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사를 가고 전화번호를 바꿔도 소용이 없었죠. 신고해서 경찰서에 갔다 가도 금세 풀려나더군요. 도망치다 결국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죠. 엄마는 제게 그런 일이 있었던 걸 모르세요. 제가 결혼 못하고 죽은 것이 마음 아파서 영혼 결혼식이라도 시키려는 것은 이해 하는데 저는 어떤 사람 하고도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결혼식만 하고 다시 만나지 말자고 했던 이유를 알려드리고 싶어요. 진한씨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도.”
신방 문이 열렸다. 조심스레 들어온 스님이 비단 이불을 들춰본다. 이불 속에는 결혼식때 나와 영지를 대신했던 신랑 신부 인형이 누워있었다.
“아이고, 잘 되었어요.”
스님이 신부 인형을 보고 반색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저 만치 있던 아버지가 달려왔다.
“이것 보세요. 신부 옷고름이 풀렸어요. 신행 잘 되었나 봐요.”
스님 말 대로 신부 인형의 옷고름이 풀려 있다.
“그렇습니까? 하하, 우리 진한이가 잘 해낼 줄 알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원체 똑똑한 아이였거든요. 이젠 아들이랑 며느리 랑 둘이 잘 살 일만 남았군요.”
아버지는 큰 소리로 웃었다. 웃는 법을 잊어버렸던 사람처럼 어색한 웃음이지만
나에게는 따라 웃고 싶을 만큼 좋은 소리다. 아버지의 웃음 소리를 듣고 동생이 얼굴을 내밀었다.
“정말 인형 옷고름이 풀려 있어요? 이 방에는 인형들 말고 아무도 없었죠? 그렇다면 형의 영혼이 정말 왔던 걸까요? 와, 신기하다.”
“거 봐라. 내가 뭐랬니? 네 형은 장가가고 싶었던 거야. ”
“정말 그랬을까요? 우리 형, 결혼식 안 해줬으면 어쩔 뻔했어요? 큰일 날 뻔했네.”
“네 형도 이제는 좋은 데 갈 거다. 한이 다 풀렸을 테니까.”
아버지는 동생과 신이 났다. 아까 다투던 두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울려왔다. 그들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던 영지가 말했다.
“보기 좋네요. 저렇게 좋아하시는 걸 보면 결혼식은 잘 한 것 같기도 해요.”
“영지 씨 어머니도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요. 아까 웃으시는 걸 봤습니다.”
“그러게요. 우리 엄마는 벌써부터 진한씨를 우리 사위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영지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미소를 함빡 지었다. 아까 보다 한결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예물로 받은 결혼 반지를 사이 좋게 나누어 낀 후 가벼운 작별 인사를 했다. 걷다 잠시 돌아보았을 때 내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녀가 웃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 밝고 크게 웃던 것과 다르게 슬픈 웃음이었다. 나는 못본척 고개를 돌리며, 문득 그것이 밝은 웃음 뒤에 숨겨둔 그녀의 진짜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씩씩한 걸음으로 암자 밖으로 나왔을 때는 해가 산 마루를 넘어가고 있었다. 붉게 지던 저녁 햇살이 구불구불 산 허리에 번져 내렸다. 그 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내가 결혼했다며 웃으며 좋아하던 아버지와 동생의 얼굴을, 이제는 다시 만나지 못할 영지를 떠올렸다. 상처받고 아파하던 그들이 내내 평안하기를, 행복하기를 기도했다. 햇살에 지친 오후가 천천히 깊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