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 전담반’은 황무지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 사막 한 가운데에 있었다. 모래 사막 한 가운데 은밀한 동굴아래가 사무실이다. 사막으로 나가는 입구에는 큰 돌이 얹혀 있는데 그 돌 위에는 저주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했다.
“그 문구 때문에 이 곳에서 걸린 저주는 꼭 풀어줘야 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의 목소리입니다.)
출근도장 찍어주던 남자는 가만히 있어도 험상궂은 얼굴에 잔뜩 힘을 주며 말했다. 그 바람에 송충이처럼 생긴 눈썹이 움찔 거린다. 햇빛에 벌겋게 그을린 얼굴은 우람한 덩치와 함께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주었다. 내 대답이 시원치 않았던지 그는 나를 향해 사나운 눈길을 던졌다.
“네가 그 놈이냐? 박진한. 새로 온 신입이구나.”
나는 대답 대신 그를 마주 쏘아보았다. 나에게 사람을 공격하고 감옥에 다녀온 놈이냐고 묻는 것인가. 어쩌면 지은 죄의 무게는 소멸되고도 남지만 월하향의 도움으로 운 좋게 살아남은 놈이냐고 묻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잘 못한 것이 없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었다. 만약 과거 그 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었다.
“그놈 이라니요?”
출근 도장 줄 내 바로 앞에 서 있던 안경쓴 남자가 내 대신 송충이 눈썹에게 묻자 송충이 눈썹이 툴툴 거렸다.
“내가 이 저주 전담반에서 일한지 수 백년이 되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뭘 하다 왔길래 네게 배당된 의뢰인이 세 명이나 되냐는 거다.”
“허이구, 의뢰인 한 명 한을 풀어 주기도 힘든데. 세 명이나 해결해 주려면 너는 여기서 몇 십년은 썩겠다.”
출근 도장을 찍던 줄에 서 있던 이들이 순식간에 내 주위로 몰려 들었다. 신기한 물건이라도 구경하듯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갑자기 쏟아지는 시선이 불편 해져서 나는 고개를 숙여 버렸다. 그 사이 송충이 눈썹은 어디선가 서류 한 뭉치를 들고 나와서 읽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귓가에 울렸다.
“우리 저주 전담반으로 말 할 것 같으면 저승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승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허락된 부서다. 가슴에 한을 품고 저승으로 온 영혼들이 수 없이 많지만 그들이 직접 복수하려고 나섰다가 그 죄를 뒤집어쓰고 소멸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우리 부서원들은 의뢰인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질문할 수 없다. 의뢰인이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방식대로 행동함으로써 의뢰인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임무다. 자, 설명을 들었으니 여기에 사인해라.”
설명을 마치고 송충이 눈썹은 나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 사인을 하자 그가 물었다.
“그건 그렇고 너, 내가 누구인 줄은 아느냐?”
“죄송합니다. 잘 모릅니다.”
내 대답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이름은 장비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그 인물 알지? 그게 나다.”
그의 말을 듣고 그제서야 나는 송충이 눈썹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TV만화에서 본 장비 비슷하게 생기긴 했다.
“어때? 상상도 못했지? 장비가 저승에서 저주전담반을 총 지휘하고 있을 줄은 세상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너는 이 장비님을 선임으로 모신 것을 영광으로 알고 이번에 맡은 임무를 최선을 다해 해결하기를 바란다.”
송충이 눈썹은, 아니 장비가 이번에는 꽤나 두꺼운 종이 뭉치를 건넸다.
“읽어봐라. 네 첫번째 의뢰인이 보낸 요청서다.”
“네……”
종이 뭉치는 아주 오래된 것 처럼 누렇게 바래 있었다. 나는 종이가 바스러질 까봐 조심하면서 첫 장을 넘겼다.
“하 영지……!”
낯 익은 사진과 함께 익숙한 이름이 등장했다. 순간 당황했다.
“너와 어떻게 되는 이냐?”
장비가 묻자 나는 말을 더듬거렸다.
“제 아내 이름입니다.”
이승에서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와 영혼 결혼식을 올렸다. 이름 뿐이지만 서류상으로는 내 아내가 맞다. 장비의 송충이 눈썹이 꿈틀 한다.
“그래? 너는 네 아내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
그의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하 영지라는 이름 석자하고 얼굴 정도…… 더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무슨 남편이 그러냐? 너 같은 남편도 남편이라고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고부탁하다니. 하영지? 그 여인이 가엾구나.”
“남편은 남편이지만 함께 했던 시간은 결혼식때 딱 4시간 뿐이었습니다.”
장비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그런 것은 내 알바 아니고, 너! 네 아내의 가장 깊은 곳 까지 이해해 줄 수 있겠느냐? 아니,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말이다.”
“글쎄요.”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에 당황한 나는 말끝을 흐렸다. 솔직히 그녀의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잘 들어라. 저주 전담반에 억울함을 호소하려면 저주 전담반 직원과 인연이 닿아 있어야 한다. 인연만 닿아서도 안되지. 너라는 이가 의뢰인의 마음이 되어 대신 한을 풀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 너는 의뢰인의 믿음을 실망 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는 말이다. 저승 선배로서 충고하겠는데 그 자신이 없다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장비는 협박하듯 으르렁 대며 쐐기를 박는다.
“다른 사람 마음을 헤아리는 재능은 없지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영지씨가 저에게 특별히 부탁한 일이라면 이유가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장비는 내 대답을 듣자 성큼성큼 앞서가기 시작했다.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걸음걸이였다. 한 걸음 한 걸음 꾹꾹 눌러 밟는다. 걷다 돌아본 그가 아직 머뭇거리고 있는 나를 향해 툭 던졌다.
“뭘 하고 있는 거냐? 따라와라.”
(장면 전환 - 하얀 문 앞에서)
장비는 나보다 세 발자국 앞서 걸었다. 안개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길이다. 좁고 구불구불한, 그러나 한 줄로 이어진 길 끝에는 새하얀 문이 나타났다. 그의 걸음이 문 앞에서 멈췄다.
“이곳은 기억의 방이다. 이 방에 들어가면 너는 의뢰인의 기억 속에 들어가 의뢰인이 겪었던 일들을 함께 겪게 될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너 혼자 만 들어갈 수 있다. 네 의뢰인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잘 생각 해 보도록 해라.”
장비는 눈 앞에 있는 새하얀 문의 문고리를 돌렸다. 낡고 녹슨 철문 손잡이가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이 열렸을 때 안에서 불어온 것은 바람에 날리는 빗물이었다.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났다. 방안으로 밀려 들어가 내 뒤로 문이 닫혔을 때 이번에는 어둠이 밀려 들었다. 주의를 둘러보니 빛이라고는 저만치 서 있는 가로등 불빛 뿐이다.
나는 몇 발자국 걸음을 옮겼다.
‘또각 또각’
내 발걸음 소리가 이상하다. 묵직한 남자 구두소리가 아닌 여성의 하이힐 소리가 들려온다. 그제서야 내 몸도 평소보다 훨씬 작아진 것을 느꼈다. 긴 머리가 어깨에 흘러 내리고 몸에서는 가벼운 향수 냄새가 났다.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어깨에는 핸드백을 맸다. 얇은 블라우스 위에 가디건을 걸치고 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짧은 치마를 입었다. 그 아래 보이는 다리는 평소 털이 숭숭 난 내 다리 대신 가늘고 날씬한 여성의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아름다운 여성이 되어 비 쏟아지는 밤중에 하이힐을 신고 걷는 중이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걷던 걸음을 멈췄다. 생각을 좀 해보려는 것이다. 어두운 빗길에서 또각거리던 하이힐 소리도 멈췄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아니다. 적막을 깨는 소리가 곧이어 들려온다.
‘저벅저벅’
낯선 발자국 소리다. 하이힐 소리와는 분명히 다른 둔탁한 소리가 두 발자국 걷다 멈춘다. 얼추 내 등뒤 열 발자국 뒤쯤 일거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누군가가 나를 뒤따라오고 있는 것일까?
‘설마……’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각거리는 내 하이힐 소리 뒤로 ‘저벅저벅’ 소리도 다시 시작되었다.
어두운 골목은 가로등을 지나 더 어두워졌다. 내가 발걸음을 빨리 하자 저벅거리는 소리도 빨라진다. 뒤를 돌아서 상대를 확인해 볼까? 아, 깜박 잊을 뻔 했다. 지금 나는 하이힐을 신은 투피스 차림의 여성이다. 발걸음만 들어도 상대는 건장한 남자였다. 완력으로 덤볐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그 생각이 들자 나는 냅다 뛰기 시작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터져 나올 것처럼 두근거렸다. 무엇보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공포가 내 목덜미를 잡아채 버릴 것만 같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계단이었다. 조급하게 달려 내려가다 오른쪽 하이힐 굽이 부러졌다.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 한 것을 한 손으로 난간을 잡고 가까스로 버텼다. 굽이 없는 한 쪽 하이힐이 거치적거린다. 나는 양쪽 신발을 다 벗어 던지고 맨발로 달리기 시작했다. 남자의 구둣발 소리는 금세라도 내 목덜미를 잡아챌 듯 내 뒤를 따라온다. 그리고!
“영지냐?”
“엄마!”
“응, 비와서 나와봤지. 왜 이렇게 뛰어 와? 신발은 어쩌고?”
나는 아직도 숨을 헐떡거리며 대답했다.
“엄마, 얼른 들어가자!”
엄마의 따뜻한 손을 잡고 나는 그동안 두려워서 돌아보지 못했던 내 등뒤를 돌아보았다. 나를 따라오던 검은 그림자는 저만치 멈춰 있었다. 검은 우의를 뒤집어 쓴 그의 두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는 씩 웃었다. 뱀처럼 징그러운 웃음이었다. 온몸에 뱀들이 기어오르듯 끔찍하게 기분 나쁜 전율이 내 몸을 휩싸고 돈다.
“영지야, 전화 온다. 전화 받아.”
엄마가 말할 때까지도 전화 온 것을 몰랐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백을 열고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에는 발신제한번호 표시가 나타났다. 순간 내 손이 멈췄다. 부들 부들 떨렸다.
“왜 그래? 무슨 전화인데?”
엄마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엄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나 다음 순간 휴대폰에는 새로 온 문자가 도착했다.
‘영지씨, 왜 그렇게 빨리 도망쳐? 오늘 원피스 예쁘던데. 다리 너무 내놓고 다니는 거 아니야? 신발은 내가 가져 갈게. 고쳐서 돌려줄까, 아니면 내가 간직할까?’
이런 미친 놈!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방금 문자 온 번호를 차단 목록에 추가했다. 이런 비슷한 문자만도 수십 개. 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영지야, 밥 먹어.”
“아니야, 엄마, 나 입맛이 별로 없어. 지금은 좀 씻고 나중에 먹을게요.”
나는 욕실로 들어간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수도꼭지를 돌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는다. 순간 공포와 안심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오늘도 겨우 넘겼구나 싶어 뻥 뚫린 듯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흐느끼는 소리가 흐르는 물소리에 묻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