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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4. 2020

영지 이야기 2

20화

다음날 출근 도장을 찍자 마자 나는 그 남자를 찾으러 갔다.  장비가 알려준 주소는 서울 변두리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였다.  오래된 아파트라지만 건물을 잘 관리한 덕에 외관은 깨끗하다.  아파트가 지어졌을 때 심었던 과일 나무 묘목이 지금은 십 여년 넘은 굵은 나무로 자랐고   무성해진 이파리로 그늘을 만들어 운치 있어 보이는 곳이었다.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는 학교에 다니기에는 아직 어린 아이들이 소리지르며 뛰어 놀고 그늘에 놓인 벤치에서는 노인들이 한가롭게 쉬고 있다.  평화롭게 보이는 그 아파트 14층에 바로 그 놈이 살고 있다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그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아파트 현관문이 열렸다.   나온 것은 30대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자그마한 키에 아담한 체형이다.  단정하게 기른 머리에 집에서 입는 원피스 차림을 하고 있었다.  손에 쓰레기가 잔뜩 들어 있는 봉투를 들고 나온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쓰레기 봉투를 들지 않은 쪽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아파트 밖으로 나온 그녀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쓰레기를 버리고 뭔가의 쫓기듯 돌아섰다.  그런 그녀의 어깨를 누군가가 툭 쳤다.  그녀는 소스라치듯 놀라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얼굴에 아주 잠깐이지만 공포가 스쳐갔다.  도망치고 싶은 눈빛과 혐오스러운 표정도 함께.  그러나 곧 유순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여보.  여기는 무슨 일로…….”

“집에 뭘 좀 두고 가서.”

무뚝뚝하게 내뱉는 남자의 얼굴에 내 눈길이 꽂혔다.  확실히 영지를 쫓던 바로 그 놈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놈의 아내인 모양이었다.

“뭘 두고 가셨길래…….  전화하면 갖다 드렸을 텐데요.”

여자가 말하자 놈은

“뭔 지 말하면 알아?”

하고 그녀의 말을 잘랐다.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남자를 따라 아파트로 들어간다.  두 사람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나도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남자가 빽 소리를 질렀다.

“밖으로 나와 다니면 어떡해?  우리 학원 애들 보면 어쩌려고?”

“여보, 쓰레기만 얼른 버리고 오려고 했어요.  내가 잘못 했어요.”

여자는 두려움에 떠는 짐승처럼 남편을 피해 벽 구석으로 도망친다.  그녀의 얼굴에는 시커먼 멍이 여기저기 들어있었다.  순간 내 눈이 튀어나갈 뻔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여자는 놈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집 안에는 평화 대신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작은 방 문이 삐그덕 열리더니 작은 얼굴이 틈새로 나왔다.

“엄마?”

10살쯤 되었을까?   그 놈 보다는 여자를 더 닮은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토끼처럼 동그란 눈으로 주위를 두 리번 거리다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뜨끔 문 뒤로 숨어버렸다.

“저 새끼는 왜 아버지를 보고 숨냐?  너!  일루 안나와?”

남자는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하루 종일 나는 그를 뒤따랐다. 집에서 나온 그는 만나는 사람 마다 웃으며 인사하고 일일이 안부를 묻는다.  아파트 단지 뒤로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이십여분 걸어간 후 상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고 같은 건물 3층에 있는 태권도 도장에 도착했다.  그는 익숙한 태도로 도장 문을 열어 두고 바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하나 둘 도장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들어오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다정한 얼굴로 맞았다.  집에서 가족들 위에서 폭군으로 군림하던 그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달라 보였다.   그날 오후 내내 그를 뒤쫓았다.  저녁 10시가 넘어 태권도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확인했다.   그는 그렇게 살고 있는 듯 했다.  집에서는 막을 자 없는 폭군으로, 집 밖에서는 성격 좋고 활달한 태권도 학원 원장으로.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냐?”

퇴근 도장을 찍고 나오는 나에게 장비가 물었다.  그는 몸 반은 들어갈 만큼 큰 항아리를 끌어안고 걷는 중이었다.

“그건 뭡니까?”

내가 묻자 그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항아리 안에 든 것 말이냐?  술이지.  그것도 독주.  혀를 데일 만큼 독하고 얼음위에 떨어뜨리면  말갛게 비칠 만큼 맑은 술이다.   저승에 오니 술을 아무리 마셔도 술병 걸려 죽지 않으니 좋구나. 히히.”

기분 좋은 듯 송충이 같은 눈썹과 덥수룩한 수염을 씰룩였다.

“이미 죽었으니 또 죽을 걱정은 없는 겁니까?”

아이러니다.  죽은 후에는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어디 그것뿐이냐?  먹고 나서 배 고플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술도 마시고 싶을 만큼 마셔도 취하지 않지.  저승이라는 곳이 천국이나 같으니 어떠냐?  너도 오늘 저녁에 나랑 한 잔 마시지 않겠느냐?

“저는 독한 술은 못 마십니다.  술은 맥주만 마셔……….”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장비가 내 손을 끌고 앞서가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싫다고 할 처지가 아니다.  나는 손이 장비의 손아귀에 잡힌 채로  질질 끌려가다 결국  테이블 앞에 나동그라졌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독주 한 사발 못 마신다는 게 말이 되느냐?  어서 자리에 앉아 술잔을 받아라.”

거기 까지 말한 장비가 갑자기 씁쓸한 표정으로 킥킥 웃었다.

“그렇게 정신 나간 얼굴로 쳐다보면 어쩌자는 거냐?  너를 보니 오래전 나와 생사 고락을 함께 했던 장수들이 생각나서 그런 것이니 오해하지 말아.”

그는 들고 온 항아리를 컵 대신 들어 항아리 째로 벌컥벌컥 술을 마시더니 나에게는 권하지 않고 항아리를 테이블 아래에 내려 놓았다.  그것을 보고 나도 한시름 놓았다.

“나도 관우 형님이 살아 계실 적에는 성격이 욱하다는 정도였지 아주 나쁘지는 않았어.  그런데 관우 형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슬픔으로 미쳐갔어.  매일 큰소리로 울고, 술을 마시고 난폭 해져서 부하들을 두들겨 팼지.   유비 형님이 그러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들리지 않더구나.  나는 관우 형님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를 정벌하러 가기로 했지.  그때 내 계획은 모든 군사들이 흰 군복에 흰 갑옷을 입고 흰 깃발을 들고 전투하는 것이었다.   슬픔의 강으로 변해 전쟁에 참여하는 우리를 관우 형님이 하늘에서 나마 보고 위로 받으실 거라 믿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문제가 거기서 터졌지.”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술을 다시 한 번 들이켰다.   

“모든 군인들이 쓸 흰 군복, 흰 갑옷, 흰 깃발을 사흘안에 마련하라고 명령했는데 말이다.  어느날 밤에  범강 하고 장달이라는 놈이 찾아와서 현실적으로는  사흘 안에는 못 만든다고 사정을 하는 게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놈들도  큰 용기를 낸 것일텐데  그때는 그 놈들이 변명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지 뭐냐.”

“그때 군사들이 몇 명이었습니까?”

“촉나라 거의 전군을 동원했으니  몇 만은 되었을 게다.”

“사흘 안에 못 만들었겠네요.  지금처럼 공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때는 모두 손으로 만들었을 게 아닙니까? 부하분들이 맘고생 하셨겠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나라는 놈이 무슨 짓을 한 줄 아느냐?  범강과 장달, 두 놈을  나무에 매달아 50대씩 채찍질 했어.  말이 50대지 살이 다 찢어져 나갈 만큼 무시무시한 매질이었다.  게다가 나는 그 놈들 얼굴도 마구 때려 놓았지. 그것 뿐일까.  다음 날까지 모든 것을 마련하지 못하면 목을 베겠다고 했다.  결국 내 무덤을 내가 판 것이지.”

“햐.  해도 너무 했군요.”

“범강과 장달은 내가 술에 취해 잠들기를 기다렸지. 내가 워낙 힘이 세고 무예에 능하니 아무리 술에 취했더라도 깨어 있을 때는 못 죽인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막사에 두 놈이 들어와서 내가 자고 있는지 확인하 더구나.”

“그래서요?”

“그 놈들이 내 얼굴을 들여다 봤지.  그런데 말이다.  나는 눈을 뜨고 자는 습관이 있어. 히히.  눈을 뜨고 있는 나를 보고 기절할 것처럼 놀라 더구나.   어쨌거나 나를 죽인 그 놈들은 내 목을 베어 들고  오나라로 도망쳐 버렸어.”

“그렇게 돌아가신 거 였군요.”

삼국지를 제대로 읽지 않은 탓에 나는 장비의 최후를 처음으로 들었다.  그것도 장비 본인에게서 직접 듣는 기분이 묘하다.  자신의 죽음에 회한이라도 있는 것일까?  장비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충격이었지. 인간을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수 만을 죽인 나였다.  죽음 따위는두렵지 않았어.  그렇지만 내가 죽었다는 소식에 병사들이 환호하는 것을 보니 정신이 번쩍 나더구나. 그 놈들 대부분이 나와 함께 전장을 누볐고 동고동락하던 전우였는데 말이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함께 했던 세월이 길었으니 내가 이 정도쯤 해도 이해해 주겠지 싶었던 동료들이 내 죽음을 축하하는 걸 보고 나니 도대체 뭐가 잘 못된 것일까 혼란스러웠지.  그렇게 저승에 와서도 몇 백년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들이 내 죽음을 축하했던 이유를.”

장비는 이번에도 술을 들이켰다.  그는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결론은 모두 내 잘못이었지.  나는 말이다. 그들이 내 가까이 있으니까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거야. 친하니까 함부로 말하고  기분 나면 때리고 괴롭히고도 미안한 줄을 몰랐다.  그 모양으로 살았으니 부하들은 내가 죽은 것이 좋았던  거다.   내가 죽은 이후 촉나라 군사들은 오나라에 참패하고  유비 형님은 그 일로 상심하여 돌아가셨다.  결국 나는 그토록 그리던 관우 형님도  유비 형님도 모두 잃고 말았어.  저승에 온 후 그 분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어.  차마 얼굴 들고 만날 용기가 없어서.”

말 없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나를 향해 장비는 마지막 한 마디를 더 했다.

“저승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면 나 같은 인간은 세상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어. 결국 나는 환생을 포기하고 ‘저주 전담반’을 맡았어. 전쟁이라는 미명 하에 수 많은 사람을 죽였고 나와 함께 하던 부하를  함부로 한 죄를 갚기 위해서 였다. 지금도 세상 어느 곳에는 내 사당을 지어 놓고 제사까지 지내주는 고마운 이들이 있지.  나 같은 놈에게 좋은 일 해주는 그런 분들에게 지은 죄를 갚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 살아가는 놈들은 세상에서 쓸어버릴 생각이다.  그것도 아주 괴로운 방법으로 말이야.”



장비의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마음을 정했다.  독버섯처럼 세상의 그늘에 숨어 아내와 아들을 괴롭히며 살고 있는 그 놈을 없애 버리기로 한 것이다.   나는 다음 날 출근 하자 마자 다시 그 놈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놈이 아직 이불속에서 자고 있는 이른 새벽에 나는 그 놈이 사는 아파트 거실에서  아침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를 세상에서 확실히 쓸어내 버릴 계획을 하나 하나 되짚으며.  그렇게  운명의 하루가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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