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화 수술 이후 마루는 먹식이가 되어갔다. 수술 전에는 사료만 죽지 못해 겨우겨우 먹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간식이면 간식, 사료 면 사료 주는 대로 다 먹어 치우고도 모자란 지 내가 뭔가를 먹을 때마다 식탁 아래를 지킨다. 어차피 사람이 먹는 음식을 줄 리 없지만 어쩌다 내가 실수로 음식을 흘리기라도 하면 냉큼 달려와 집어먹으려는 것이다. 동물 병원에 갔더니 ‘마루 몸무게가 갑자기 늘었다.’며 간식을 줄이라고 하신다. 그 이후 간식을 줄였더니 다행히 그동안 많이 올랐던 살이 빠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 큰 성견이라고 하지만 강아지를 키우는 데는 손이 간다. 사료를 챙겨주고 가끔은 특식을 해주고, 때 되면 목욕을 시키고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간다. 산책도 시켜줘야 하고 훈련도 나름 시켜준다. 덕분에 지난밤 아무리 늦게 잠들었어도 아침이면 제시간에 깨어 마루의 사료를 챙겨주는 습관이 생겼다. 내 몸이 아파도 “나 없으면 저 녀석을 누가 챙겨주나” 하며 억지로 운동도 하고 밥도 챙겨 먹게 된다. 내가 데려온 생명이니 책임은 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마루에게 있어 나는 절대적 존재다. 내 일에 바빠 마루를 못 챙겨주면 마루가 얼마나 힘들까 싶어 나도 애를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마루를 봐서인지 식탁 아래에 앉아 나를 바라보는, 정확히 말하면 내 숟가락 위에 놓인 음식을 바라보는 마루의 모습은 마치 신(神)에게 간절히 기도하는 내 모습과 비슷하다. 숟가락을 빤히 바라보는 마루의 눈동자는 음식이 그릇에서 내 입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집중해서 따라다닌다. 혹시라도 실수로 떨어지는 음식이 있을까, 행운이 있을까 바라는 얼굴이다.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안 떨어지나 싶어 신에게 기도하는, 로또를 긁는 나하고 정말 똑같은 표정으로.
“그래도 안돼. 몸무게 늘어나면 너같이 작은 애들은 슬개골 탈구도 될 수 있고 병도 많이 생긴대.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게 같이 살아야지.”
녀석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설명해 주고 싶어 진다. 로또를 긁어봤자 안될 거야 하고 나에게 말해주는 신의 마음으로. 내 식사가 끝나면 마루는 제집에 들어가 엎드려 한숨을 쉰다. 아마 마음속으로는 ‘어쩌면 한 조각도 안 주고 저 혼자 다 먹냐?’며 내 흉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루의 절대적 믿음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 흔들리는 것은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다. 워낙 회사 일이 바쁘고 주말이면 취미생활로 시간을 쪼개 사는이라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와서도 특별히 마루를 위해 뭘 해주는 것도 아닌데 마루는 친구가 오는 날이면 꼬리를 풍차처럼 돌리며 좋아한다. 나는 안 중에도 없고 친구 뒤만 따라다니고 오로지 친구 곁에만 있으려고 한다.
“저 녀석, 키워줘 봤자 아무 소용없다니까.”
서운해서 내가 말하면 친구는
“너는 마루를 키워. 사랑은 나와 마루가 할 테니까.”
하며 농담을 했다.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키울 자신이 없다면서도 마루에게 간식도 한 움큼씩 주고 데리고 나가 산책도 시켜준다. 산책을 하면서도
“안돼! 이리 와!”
하고 야단치는 대신
“우리 마루 잘하네, 좋아, 좋아” 같은 말로 칭찬만 한다. 마루에게 있어서 내가 엄격하고 재미없는 신이라면 친구는 행복을 무절제하게 퍼주는 신이다. 친구가 오면 식탁 아래서 음식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대신 품에 안겨 맛난 음식을 양껏 먹는다. 사람으로 치면 로또복권이 당첨되고 무료 쿠폰이 쏟아지고 하늘에서 돈 가방이 떨어지는 것일 테니 친구를 반기지 않을 수 있겠나. 매일 정해진 양만 먹고 정해진 시간에 산책하며 지내는 마루는 오기만 하면 황홀하고 강렬한 행복을 선사하는 친구를 나보다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마루는 내가 왜 사료만 주는지, 간식을 줘도 조금씩만 주는지 그 이유를 모를 테니 말이다. 마루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어떨까? 가끔 나타나 갑작스러운 행운만 쏟아주고 훌쩍 떠나는 친구보다 곁에서 자신의 건강을 생각해 주는 내가 더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어릴 때부터 가톨릭 신자였다. 엄마를 따라 매주 성당에 다녔고 매일 기도를 했다. 종교적으로 믿음이 깊다기보다는 집안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생활처럼 습관처럼 그랬던 것 같다. 평소에는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도 다급할 때는 기도하며 신을 찾았다. 시험 보기 전이나 큰일을 맞이하기 전에는 조금 더 간절한 기도를 했다. 그런데도 신은 나에게 자비롭지 않았다. 시험 때 모르는 문제를 찍으면 꼭 틀렸고 로또 복권을 사도 당첨된 적이 없었다. 몸이 많이 아파 몇 번의 수술 끝에 결국 직장을 그만둬야 했을 때는 가혹한 신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가끔 돌이켜 보면 위험했던 순간들이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운 좋게 넘어갔던 적도 많았다. 어찌보면 엄격한 신이 나와 함께 했던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만약 내가 신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어떨까? 마루 곁에서 이유를 설명해 주는 나처럼 나의 신도 내 곁에서 그동안 가혹했던 그의 처사가 왜 그랬어야만 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지 않을까? 내가 알지 못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근사하고 참 좋은 이유가 숨어있지는 않았을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면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을까? 어쩌면 더 긍정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더 커다란 안목으로 살고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