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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Jan 19. 2018

새가 신을 향해 날아갈 때

데미안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神)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데미안』헤르만 헤세

데미안              

저자 헤르만 헤세

출판 민음사

발매 2000.12.20.



알 속에  들어있을 때는  그 알이 부화되기 전까지  안에 들어있는 생물의 정체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알에 들어있는 생물은  알을  깨고 나오려 노력한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정확한 생체 시계가  멈춘 지점에서   알 속의 세계를  견디지 못하는 모양이다.  
병아리나  백조,  오리나  기러기의  세포 안에는  생체 시계가  있어  알을  깨고 나올 때를  맞춘다지만
인간은  자신이  알을 깨고 나오는 시기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알 속에 숨겨진  자신이  어떤 생물인지  확신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할 때  이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헤세를 존경했던 이유는  어쩌면  '자신이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능력이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도  수 없이 생각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과연  깨어날  알 껍질을  가진 사람인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몇 번을  다시 읽었어도 그랬다.  대체로.

최근에  다시 한번 읽을 기회를 가졌다.   솔직히  그 순간은 나에게 축복이었다.
사람들에게도  '알을 깨고 나올  시기'가  오는구나.
날개가  돋으려고  겨드랑이가 가려운  이상의 '날개'처럼
자신이 속한  이 세계가  딱딱하고 답답하고  재미없어질때.
그래서  견딜 수 없어질 때.
숨조차 쉴 수 없어질 때.
사람들은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구나.

알을 깨고 나왔을 때  처음 생기는 변화는 물론 '시야'에  관한 것이다.
조금만  보이던 빛,  자신만  비추던  공간에서 벗어나면
세상이란  이렇게도  크고  찬란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내가 보던  세계가 얼마나 편협했는지,
다 안다고 생각했던  조그만 세상이  얼마나 조악한 곳이었는지.

그다음엔  지금 있는 세계에  내가
이대로  주저앉을까 봐  두려워진다.
그래서 견딜 수 없어진다.   알을 깨지 않을 수 없다.
아프고  살갗이 벗겨지고   주위에선 야단이 난다.

"얘,  너 미쳤니?  지금 이곳에서   넌 모든 걸 가졌어.
너무 욕심 내면 안돼.  그럼 불행해져."

그러나...  알을 깨는 것은  이미 내가 아니다.
이미  자라 버린  내  무게를 견디지 못해
커다란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운명이다.

알은  세계다.  돌이켜 보면  깨어졌어야 할 세계.
날아올라야 했던 세계.
언제나  노른자와 흰자로만  살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새로  한 번쯤은..  단 하루라도
살아봐야 하는 게 아닌가.   

알에서  나온 나는  잠시  햇빛 아래서  날개를 말린다.

날아갈  준비는  다 된 것인가?

운명의  무게도  더 이상 나를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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