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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Jan 25. 2018

인생은 그래도 흐른다 :  

페스트

.                                                     
예상하지 못한  이별,  지키지 못할 약속,  그럼에도  삶은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그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피하고자 했던 그런 붕괴는 모면할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앞으로 있을 재회를  마음에 그려봄으로써  페스트를 잊을 수 있는  그 순간들을 갖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330 Page



페스트라는  병균이란  지구 상에서  소멸되었다고  믿고 있던  어떤 시대에   프랑스 작은 도시 오랑에서는  갑자기  발병한  페스트로 인해  사람들이  죽기 시작했다.   요즘 흔해진  좀비 영화에서 처럼   페스트 균에 걸려  죽은  쥐에서부터   끔찍한  고통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불러온다.   검은 전염병이  시작된  작은 마을은   세상에서 격리 조치되고  성문은  닫힌다.   들어오는 사람은  허락되지만  나갈 수 없다고  정부는  말한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전염병 발생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희생될  처지에  놓인다.

소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젊은  의사 리외는  아픈 아내를 요양원에  보내며  금세  만나러 갈 거라고  믿는다.   가벼운  인사와  잘  가라는  인사만으로  헤어짐이  성립되었다.   그 이후  오랑시에  급격히 퍼지는 페스트로 인해  리외는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아내에게는  안부 인사로  전하는  전보가  전부다.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나는  내  삶에서  무척 중요한  두 사람의 친구를  만났었다.   그중 한 명은   아프리카 오지를  돌며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수녀였고   다른  한 사람은  한국에서  살며 자신의  세상을  찾아 가느라 열심히  노력 중이었다.    두 사람과  다  만나서  식사를 했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했다.   수녀 친구는  나에게  "너도 나랑 같이 갈래?"  하고 물었다.   아프리카 오지로.  혹은   인도 어느 곳으로,  아니면  남미 어느 작은  시골로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생각해 볼게." 하고 대답했다.
그다음  그 두 사람을  각각  한 번 더 만났는데  그때 내가  생각했던 것은   두 사람 중  적어도  한 명과는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 될 거라는 예감이었다.    내가 오지로  떠나게 되든,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하든.. 다시는  지금의 삶으로  돌아올 수 없을 거라는  예감과 함께였다.



사랑은  어떤 의미로든  의미로 남는다



그랑의 말에 의하면  나머지 이야기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모든 사람의 경우가  다 그렇다.  즉  결혼하고,  계속해서  또 좀 사랑하고 일을 한다.  사랑한다는 사실을  깜박 잊어버릴 정도로 일을 한다.  잔도  다시 일을 했는데,  국장이  그랑에게 한 약속이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피로해진 탓도 있고 해서 그는 무심한 사람이 되었고,  점점 더 말이 없어졌으며,  젊은 아내로 하여금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계속 이끌어 나가지 못했다.  일하는 남자, 가난,  서서히  막혀가는 장래,  식탁에 앉아도  할 말이 없는 저녁때의  침묵,  그런 세계에  정열적 사랑이  파고들  여지란  없었다. 346 page


이 소설에서  카뮈가  등장시킨  '그랑'이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나치게  나와 닮은  인물이었고  융통성 없이  열심히 살고 있기만 하는  이 남자에 대해  연민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랑했고  결혼도 했지만  결국  '젊은 아내로 하여금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계속 이끌어 나가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져 드는 이 무능력해 보이는  남자에  대해서  말이다.    자주  그런 생각을  하는 편인데   사랑이란  꼭  밝은 미래와  풍족한 삶과만  병행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돈이 풍족하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감정과 어려움,  소소한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사랑의 한 종류인 것을..  이  가련한 남자는  몰랐던 것이다.

타루가  그 종이 뭉치를  갖다 주자 ,  그는 그것들을  보지도 않고  꼭 껴안았다가,  다음에는  그것들을  의사에게로  내밀면서  자기에게  읽어 달라는  몸짓을  했다.  그것은 50여 페이지  남짓한  얄팍한  원고였다.   리외는  그것을 뒤적거려 보았는데  그 종이 뭉치에는  모두 같은 문장을  수 없이 다시 베끼고  고치고,  더하거나  삭제한 것들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644 page


가련한  남자 그랑은  퇴근 후  글을 쓴다.  얼마나 위대한  작품일까  아는 사람들은 다 궁금해하는 그의  작품은  그것이었다.  50여 페이지의 얄팍한 원고.  그 실체는  같은  문장을 수 없이 다시 베끼고 고치고 더하거나 삭제한 것들... 뿐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심장은   아내 잔을  사랑하던  그 순간에  멈추어 서 버렸으며   그에게는  다른 어떤 문장도  의미 없어져 버린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부분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부분이야 말로  카뮈가  가진  천재성을  가장  날카롭게 드러내는  곳이라고 본다.   특히  이 종이 뭉치를  미련 없이 태워 버리는  순간을  담담히 묘사함으로 인해   사람들은   변하고 싶지 않은  (관성의  법칙처럼)  욕망과   더불어  가진 것을 다  변화시켜 버리고  싶어 하는  다른 욕망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코타르는  웃지 않았다.  그는 페스트가  그 도시에  아무 변화도  일으키지 않을 것인지,  모든 것이  전처럼,  즉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시작될 수 있을지 알고 싶어 했다.  타루는 페스트가 그 도시를 변화시킬 수도 있고  시키지 않을 수도 있으며,  시민들의 가장 강한 욕망은  현재도  또 앞으로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668page


어쨌든  다른 이야기로  흐르자면  나는  수녀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꼴이 되고 말았다.   '미안해.  못 갈 것 같아.'라고.   결국  두 사람 중에서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를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은  수녀 친구로  정해지고 말았다.    나에게 있어  지금 이곳을  떠나는  것은  이미  정해진  결론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  했던 결정은  앞으로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버릴 것임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마지막으로  만났는지도  몰라...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몰라  라고..  사실은   우리에게 내일이 허락된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의사  리외...  진정한  의미의  의사.   카뮈가  가진  강력한 매력을  읽다.



   리외가  물었다.
"네"
"숨쉬기는  편해 졌나요?"
"약간은요.  근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리외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잠시 뒤에 말했다.
"아뇨,  타루.  다른 뜻을 없어요.  당신도 알듯이  아침에  나타나는 일시적 차도 잖아요."
타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그가 말했다.
 "언제나  그처럼 정확하게 대답해 주세요."
680page

카뮈는  '의사 리외'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가장  과학적이며 냉정해야 할  상황에서  젊기 떄문에  공감 능력이  높은  주인공의  등장은  이 소설의  매력이다.   '젊다'는  부분은  리외가  헤쳐나가야 할  의사로서의  직분과  상반된다.   연륜이 느껴지는, 경험 많은, 그럼에도  냉정하며  비 감정적인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독자들은   주인공과   소통할 수 있다.   그의  아픈 아내를 걱정하고   의사 리외가  너무 힘들까봐  염려하게 된다.   카뮈의  작가적 능력,  빼어난 감각이  드러난다.    이런 주인공의  설정은   카뮈 이후,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  일종의 트렌드를 형성했다.     젊은 나에에  노벨상을  수상한 카뮈의  저력이  남긴  흔적이다.
느낌상  카뮈는  주인공 리외를 정말  존경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죽음을  향해  가는  환자이며  동료였던  타루에게  이렇듯  담담히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의사 리외는  진짜 강심장이거나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자는  리외가  겪는  깊은  연민과 안타까움을  알고 있다.  덕분에  깊은 아픔을  접어두고  겉으로는  '담담한 의사'의 태도를  잃지 않는  리외에 대해  더한  공감을  느낀다.  


아마  그 탓이겠지만,  그 다음날  아침, 의사 리외는  자기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담담한 심정으로  들었다.  그는 자기 서재에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뛰다시피  들어와  그에게 전보 한 장을  건네 주고는 배달부에게  팁을 주려고 나갔다.  어머니가 돌아왔을때,  아들은  전보를  펼쳐 들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창 너머로  항구 위에 밝아 오는  찬란한 아침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베르나르!"  어머니가 말했다.
의사는 넋이 나간 듯이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전보는?"
어머니가 물었다.
"그거였어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8일 전이었군요."


소설의  첫 부분  요양원으로  보냈던  아내는  리외와  재회하지 못한다.   아내를  만나러 가지 못하는 동안  그는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았다.   환자들을 내버려 두고  아내를 만나러 갔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이면서도  의사이기를  바라던  주인공 리외에게  인간적  존경과  애처로움을  함께 느끼는 이유가  그것이다.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등장 시키는   카뮈의  능력에  대해  사람들은  몇 세기에  걸친  찬사와 감탄을  보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관심 끄는 일에나   몰입하고 있는 요즘 세대에서   진정한  인간다움과   아름다움을  가진  '인간'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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