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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Jan 30. 2018

진정한 사랑은 우정과 연애 어느 한 지점에서 서성인다

독일인의 사랑(Deutche liebe)

인생의 봄을 돌아보고 그때를 생각하며 추억하는 일은 참으로 아름답다.
인생에서는 무더운 여름에도 우울한 가을에도 추운 겨울에도 이따금 봄날이 찾아오고,
그러면 우리의 가슴은 "내게도 봄날이 찾아왔군!"하고 감탄한다.

로맨스 소설을 써달라는 말과 함께  출판사에서는  내가 전혀 읽지 않는 종류의 소설을 두권 보내주었다.  
"요즘 트렌드를  보여 드리고 싶어서요."
말하자면  '묘사보다는 대화가 많고  감각적이며  수위가 좀 있는' 소설을 써달라는 말이다.  
알려지지 않은 초보 소설가이기 때문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소위 말하는 '베스트셀러'나  '대박' 치는 소설을 써주었으면 하는 압력이  은근하지만 느껴진다.   

소설 두 권을  열어보지도 않고  내내 늑장을 부리다가  내가 읽기 시작한 것은 이 책,  '독일인의 사랑'이었다.    
이 책은 막스 뮐러 (1823-1900)가  쓴  유일한 소설이다.   지고지순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또한 '지나치게 현학적이며  비현실적인  사랑'이라는 평을 받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상하게도  내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고민상담을 자주 한다.  싫은 내색 않고 잘 들어주는 성격 탓일까 생각했는데  
사실은 듣고 금세 잊어버리는 건망증 덕분인 듯하다.

"내가 하는 게  사랑이 맞을까?"
'사랑하는데 왜 마음이 허전할까?"
"이 불안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사랑하는 당사자가 모르는 것을  제삼자인 내가 어떻게 알까 싶은데  한편으로는
오죽하면 나에게 물어볼까 싶어  나름대로 성실한 대답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그
래서  많은 경우  나는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했다.  
"어느 부분을 읽어야 하는데?"
"아무 부분이나 열고 읽어봐."
맞다.  이 책은 그 한 문장,  한 문장마다  충분한 뜻을 담고 있는 한 권의  서정시 같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인용될 가치가 있지만   역시 이 부분은 '사랑'이란 무엇인가 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병약한 소녀 마리아,   죽음을 앞둔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지만  젊은 청년의 진심을 알게 되고 마침내 마음을 열게 된다.  가벼운 입맞춤을 끝으로  그녀는  그날 밤 세상을 떠난다.   

우리는 일어서기, 걷기, 말하기, 읽기 등을 배우지만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랑이란 우리의 생명과 같이 탄생하면서부터 생겨 나온 것이다. 사랑은 우리 존재의 깊은 바탕이다.

이 책은 고전이다.   2018년 겨울에 읽기에는 지나치게  따뜻하고  비현실적이다.  플라토닉 한 사랑이란  멸종되어버린 세상에서  이 소설은 잃어버린 화석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한때는 사람들이 이런 사랑도 했었다는 옛날 옛적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무슨 잠꼬대 같은 소설인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지은이 막스 뮐러가  그의 아내인 조지나 애들레이드와의  운명적 사랑을 소재로 썼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언어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막스 뮐러는 우연히 만난 조지나 애들레이드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의 낮은 신분,  국적,  종교,  나이 등의 '조건' 때문에  결혼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되어있다.   결국 그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결실을 얻었고  그는 결혼에 성공했다.   작가의 진심이 여기저기 녹아있기 때문에  이 책이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편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경우라면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처음 만나자마자   '가진 것'을  비교한다거나  '조건'을 심하게 따지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그런 결혼은  '사랑'이 아니다.  '거래'일뿐이다.  그러나  이런 사랑이 아직은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싶기는 하다.   
'순수하게 ,  저절로,  운명적으로' 하는 사랑이란  마치 예수님 같은 것이다.
어딘지 있는 것은 같은데  볼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2018년도  1월이  다 끝나간다.   특히 올해 1월은  '눈 깜박할 새'라고 할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이렇게 빠른 한 달이  열 한 번만 지나면  또  한 해가  가겠구나  싶어  마음이 바빠진다.   2018년 1월을  마지막으로  '거래' 하는 사랑 따위는 집어치우고  '진짜  조건 없이 순수하게, 저절로, 운명적으로 하는  사랑'의 시대가 다시 시작되었으면 한다.   그런 소설을  쓰게 된다면 정말  즐거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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