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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Apr 23. 2020

파리 카페 <Joyeux>

pain et au café



아침부터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물갈이에 이어 감기까지 요즘 컨디션은 최악이다. 일주일에 두 번 일하는 한식당에서 와인 잔을 두 개나 깨뜨렸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근처 한식당에서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과 오후 일을 하고 있다. 그 사이에는 세 시간 반 정도 여유 시간이 있는데 비교적 한산한 화요일에는 미술관에 가고 금요일에는 퐁피두 다리 근처에서 쉬거나 카페에 간다.


오늘은 오페라 근처 향수 박물관에 가려다 출근길에 지나쳤던 파사쥬에 들어갔다. 파사쥬는 건물 틈 사이에 지붕을 덧대어 만든 공간을 일컫는데 각종 음식점 카페, 서점에 이르기까지 이 비밀스러운 공간이 좋아서 눈에 보일 때마다 들어가곤 한다. 이곳에서 나는 엽서를 사고 노트를 사고 주말에는 필름 카메라를 사기도 했다.


평소 스타벅스를 제외하고는 유명 카페나 디저트 가게를 찾아가곤 했는데 오늘은 <JOYEUX>라는 카페에 갔다. 처음에는 베트남이나 일본 요리점인 줄 알았는데 다정한 분위기를 가진 카페였다.

‘JOYEUX’는 불어로 기쁨이라는 의미





개인 카페라고 하기에는 정돈된 느낌이고 프랜차이즈라기에는 처음 보는 카페였다. 현재 갖고 있는 현금을 모두 쓴 상태로 신용카드만 들고 있는 상태지만 향수 박물관 방문을 미루고 들어가 보기로 한다.





정말 미로 같은 파리 골목. 그중에서도 더 비밀스러운 파사쥬에 있는 카페. 그동안 꽤 많은 카페에 방문했지만 귀찮아서 리뷰를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실시간으로 분위기에 대한 남기는 건 처음이다.


카드야 제발 멈추지 말고 긁혀주렴!


요즘은 정말 어딜 가도 카페라테를 마신다. 부드러운 우유 거품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프랑스어 선생님 그레구가 생각난다. 스타벅스에서는 무조건 라테만, 맥도널드는 빅맥을 먹는다는 친구. 그레구랑 파리 거리에서 마주치면 어떤 기분일까. 사실 파리보다는 가로수길이나 한남동에서 마주치는 게 더 현실성 있겠지만.





가게 안에도 에코 백과 배지, 노트 등 귀여운 아이템이 배치되어 있다. 내부가 넓은 건 아니지만 테이블이 꽤 많고 조용해서 개인 작업을 하거나 대화를 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카페는 파사쥬의 시작인 동시에 끝에 위치해서 실내와 외부를 동시에 연결하고 있다.


북적이지 않으면서도 고요하지도 않은 이곳의 분위기가 좋았다. 언제가 예쁜 동생 김선민이 나를 두고 언니의 그다지 차분하지 않은 분위기가 좋다고 했는데 시끄러운 것도 조용한 것도 싫지만 때로는 시끄러운 것도 조용한 것도 좋은 변덕쟁이에게 딱 맞는 카페.


카페 음료는 물론 쿠키와 빵 샐러드와 맥주도 판매하고 있다.





최근 업무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는 이유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오늘 여기서 팟캐스트 <낭만서점>의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을 들을 것. 어제부터 듣고 있은 이 팟캐스트는 DJ 두 분이 책 속 장면을 읽어주는 부분이 너무 좋아서 벌써 세 번째 듣고 있다. 특히 여주인공 폴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시몽의 목소리가 너무 좋다.





이 카페는 종업원들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카페에 대한 기사는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소개되었고,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과 그의 부인 브리짓이 방문하기도 했다. 하단에 관련 기사를 첨부하였다.

https://1boon.kakao.com/interbiz/5b6beae56a8e51000155f169


카페에서 주문을 하면 블록을 주는데 이는 장애가 있는 직원들의 원활한 서빙을 위함이다. 오늘 네모난 빨간 블록을 받자마자 오늘의 울적함이 위로받는 걸 보면 카페 이름대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카페라테와 작은 사과 머핀을 주문했는데 커피는 정말 부드럽고 맛있었고 머핀 역시 담백했다. 오늘은 이 카페 엽서에 편지를 써야겠다.


파리 카페 <JOYEUX>의 분위기는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이런 분위기야말로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모두가 여유를 갖고 서로에게 눈을 맞추고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느낀 건 삶의 양상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여유로움’에서 디테일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여가를 보낸다. 하지만 좀처럼 조급함은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를 두고 보면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메뉴를 다 살펴보고 결정을 한 뒤에 메뉴판을 덮어둔다면 동양권 손님들은 곧바로 손을 들고 주문을 한다. 파리 한식당에서 일하면서 손님이 음식이 왜 나오지 않냐고 묻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지만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빨리 주세요.”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이는 문화의 차이이고 무엇이 나은지 우위를 둘 수는 없지만 확실히 이곳에는 ‘삶의 여유’가 있다. 최근 한국에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협력하는 일자리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사회적 기업들이 많아지고 자체적으로 가치 창출이 가능해졌으면 좋겠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과 타인을 다른 선상에 두는 게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음을 알고 동정이 아닌 응원을 하는 게 아닐까.


파리에서 맛있는 빵집과 근사한 카페를 하나둘 알아가고 있다. 벌써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리울 것 같은 크루아상 가게를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많을 곳을 가고 싶은 마음에 두 번 이상 간 곳은 드물다. 지금 일하는 곳에서 도보 3분 이내인 이 카페는 자주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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