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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일기떨기: 선란의 밀린일기

엄마가 잘 좀 먹었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건 그거 하나다.

by 일기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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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대학병원 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열흘이 되어간다. 원인은 갑작스러운 연하 곤란으로, 집중적인 치료를 위한 선택이었다. 재활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긴지 한 달 만에, 다시 또 병원을 옮긴 셈이다. 재활병원에 12년 생활을 마무리하고 요양병원으로 옮기며 가장 큰 변화는 상주하는 개인 요양보호사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요양병원은 3교대로 공동 요양보호사가 일정한 수의 환자를 돌보는 시스템인데, 우리 엄마는 혼자서는 앉을 수도 없는 와상환자임과 동시에 혼자 식사도 불가능했다. 한 마디로 24시간 엄마 옆에 딱 붙어 있는 보호인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요양병원에서는 엄마의 상황을 면밀히 체크한 뒤 입원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엄마가 입원하던 그날, 이제는 어린 나이가 아님에도 앳되어 보이는 엄마를 보며 탄식하던 간호사와 보호사들. 그리고 넌지시 “아직 요양원 오실 때 아닌데...”라던 말. 웃으며 넘겼지만 며칠동안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우리가 엄마를 너무 일찍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아니, 실제로 그런 건가? 아닌데. 벌써 12년이고, 요양병원을 선택한 건 더 감당하기 힘든 개인 간병비때문이었는데. 언제쯤 이런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려나. 벗어지기는 하려나.


 어쨌거나 엄마가 요양병원으로 입소한 후로 일주일에 3-4번씩 일산과 인천을 오가며 엄마의 적응을 도왔다. 그렇게 점차 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이, 엄마가 생각보다 더 잘 지내는 사람임을 확인하던 중 연하 곤란이라는 또 새로운 난관이 펼쳐진 것이다. 연하 곤란은 한 마디로 삼키는 걸 못하는 건데, 이건 자칫 기도로 음식이 넘어가 폐렴까지 갈 수 있어 초기에 집중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여, 대학병원에 내원했고 병원 의사는 한달 간 입원하여 집중치료를 하자는 진단을 내렸다. 그렇게 엄마는 잠시 대학병원으로 이사를 왔다. 이곳도 개인 요양보호사를 둘 수 없고, 오후에는 치료도 있는데 엄마는 치료사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일주일 간 행사로 다른 지역에 갈 때 빼고 매일 일산에서 인천으로 출퇴근 중이다.


 다시 대학병원에서의 간병생활을 시작하니, 언니와 지난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추억한다. 금방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초창기. 어쩐지 병원에서는 비위가 상해 물도 못 마시던 우리가 이제는 병원에서 밥도, 잠도 내 집처럼 생활하게 된 것까지. 당시의 나는 그 순간을 한 줄의 글로도 적어두지 않았다. 기억하기 싫어서. 이건 남겨봤자 슬플 거 같아서. 그런데 웃긴 것이 그 어느 순간보다 지난 12년은, 특히 엄마와 함께 병원에서 지냈던 순간은 빠짐없이 기억나고 선명하다. 그래서 요즘은 언니와 기억들을 차분하게 정리해볼까, 싶다. 12년간의 간병 노하우를 가득가득 담아서.


 엄마가 잘 좀 먹었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건 그거 하나다. 잘 먹기. 얼마나 소박한 딸의 꿈인가.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2. 선란

『무너진 다리』 『어떤 물질의 사랑』『천 개의 파랑』『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나인』『노랜드』『아무튼 디지몬』『모우어』를 썼습니다.

환경파괴, 동물멸종, 바이러스를 중심으로 SF소설을 씁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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