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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일기떨기: 지원의 밀린일기

"엄마.. 딸이 전공 바꾸고 계속 해온 게 바로 그거야..."

by 일기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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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색 과정에서는 원작의 '스토리'를 살리는 것과 '메시지'를 살리는 것, 두 가지의 충돌이 자주 생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원작 그대로를 볼 거라면 굳이 무대화할 이유가 있냐"와 "좋은 원작이 있는데 왜 이야기를 새로 만드냐"는 물음이 대립한다. 원작이 세상에 나오면 독자의, 각색 및 윤색 작가의, 연출가의, 프로듀서의 손을 떠돌며 제각기 다른 해석과 감성을 남길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각색 작가로서 말한다면 나의 기준은 대부분 '메시지를 살리는 것'에 있고, 뼈대와 의도를 흔들지 않는 선에서 설정 등의 살을 붙여 이야기를 다듬는다. 거기에, 어쩌면 자전적인 부분이 있을지 모르는 이야기를 보듬으려는 친구와 동료의 마음을 더해서. 연극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는 그런 마음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대본을 쓰면서 고려한 부분은 많았다. 세 주인공의 이야기를 분절하면서, 공통의 사건에 강하게 얽혀 있는 인물 위주의 축약을 한다든지. 주인공들이 갖는 외로움을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관계성을 강화한다든지. 인물에의 투영을 통해 장면이 기능하게 한다든지. 하지만 그보다 일기로 써두고 싶은 건, 책 자체에 대한 애정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큰 작업이었다는 점이다.


 선란과는 같이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 둘의 작업은 보통 한 명은 원작을 쌓고, 한 명은 각색 및 대본화를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기획과 트리트먼트를 구성하는 작업은 함께 하고, 그렇기에 재창작이나 무대화의 당위성을 찾는 작업은 비교적 쉽고 유연하게 이루어진다.


 그런 이유로, 연극을 보면서는 우리 안에서 벗어난 대본과 무대의 정서적 차이를 많이 생각했다. 대본이 내 손을 떠나면 무대에서 펼쳐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또다른 영역의 창작이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지문과 은유를 되도록 보존하는 방식으로 연출하신다'는 연출님의 말처럼, 눈앞에는 활자로 쓴 장치들이 있었고, 그 사이를 누비는 배우들은 글자와는 다르게 움직였다. 자체적인 기획은 아니었지만 피디로서는 그 생동감이 즐거웠고, 각색 작가로는 낯설었다. 어느 쪽이든 부정적인 감상은 아니었는데, 무대를 보는 동안에 가족들이 종종 했던 물음이 떠올랐다. 특별히 둘이 같이 일하는 이유가 있냐던.


 아마 부모님에게는 이 일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 탓이겠지만, 그 점을 감안해도 사실 가족들은 대체로 내가 무슨 작업을 하는지는 별 흥미가 없고, 그들의 관심은 이 일이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내 인생을 낫게 만들고 있냐’에 치중되어 있다. 그러니 친구라는 이유로 수습하지 못할 사업을 벌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 사실이 속상하기보다는, 못지않게 현실적인 딸에게 ’엄마아빠 딸 바보 아니다‘라고 말하게 만드는 상황에 웃음이 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건데, 하루는 엄마가 엄청나게 좋은 생각이 났다며, “지원아, 너는 줄글을 쓰는 것보다는 뚝뚝 끊어지는 글, 집약되는 글 있잖아? 그러니까 가사처럼 쓰는 게 너한테 맞을 것 같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거다. 오랫동안 딸을 봐온 엄마의 눈에 그게 딱이라고 하시면서. 그래서 뭐라고 답했냐 하면,


"엄마.. 딸이 전공 바꾸고 계속 해온 게 바로 그거야..."


 아!

 그 탄성이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 나는 스크립트를 쓰거나 기획하는 사람이고 싶었지,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주변에 소설가인 지인들이 많은 탓에 일을 시작할 때도 무엇을 가늠해보지 않고 돌진했으리라 여기신 모양이다. 몇 년이나 지났는데, 어째서 지금까지..!


 딸의 일을 이해한 적 없던 엄마가 드디어 아주 살짝 오해에서 벗어나는 순간, 엄마는 "알아서 해라"고 하면서도 유튜브를 찾아보며, 딸이 어떤 과정을 겪고 있을지 헤아리는 과정이 있었음을 말했다. 한창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의 대본을 쓸 때라 그랬는진 몰라도, 그게 꼭 홀로 두지 않겠다는 엄마의 고백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새벽 동안의 작업에도 엄마의 마음을, 또 책 속에 담은 작가의 마음을 많이 생각했다.


 연극 안에서, 은심 할머니가 수연의 손을 말없이 꽉 잡고 두드려주는 동작은 실제로 엄마와 내가 유대를 나누는 방식이다. 연출님께서 두 인물 사이 유대를 드러내는 동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드린 의견인데, 공연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걸 엄마가 봤으면 좋았을 텐데 싶기는 하다. 본공연 땐 모시고 와서 동업자 소개도 시켜드려야겠다. 동의는 안 받았다.


 다 쓰고 보니 이미 공연된 작품에 대해 많은 말을 말하는 게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개인적인 소회의 차원에서 남겨둘 수는 있지 않은가. 앞으로도 즐거운 일들에 손을 꽉 잡고 나아가보겠다는 다짐에서, 딱 일기 정도의 글로. 엄마아빠 딸 바보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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