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양귀자 장편소설 『모순』을 읽는다. 졸업 선물로 받은 이 책은 올해 읽은 첫 번째 책인 동시에 마지막 책이 될 것이다. 애인은 파리 시내를 벗어나 몽 생 미셸에 갔다. 지난 주 그에게 묻지도 않고 소규모 차량 투어를 예약했다. 애인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꾸리고 한국 젤리랑 과자,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만한 사탕을 챙겨 출발 장소에 데려다주었다. 애인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모든 게 나를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에 물음을 던지거나 딴죽을 거는 법이 없는 순박한 애인은 내내 고맙다고 말했지만 그가 파리에 와서 만난 사람은 누구이고 장소는 어디였던가. 나는 이곳에서 꽤 많은 다정한 이를 만났음에도 그는 나와 내가 아는 사람만 만나지 않았나. 그는 왜 유럽까지 와서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파리에만 머물려고 하는 걸까. 준호가 없는 하루는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책상과 이불을 정돈하고 앞으로 필요한 물품을 작성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낮잠을 자다가 책을 읽고 내 마음을 정돈하는 일. 내가 어디에 있어도 행동거지가 부지런한 법이 없고 늘 마음만 앞서고 후회하기를 반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한 치 앞을 볼 줄 몰라 가을 원피스만 네 개 청바지는 달랑 하나 챙겨와서는 더울 때는 덥다고 추울 때는 또 춥다고 지낸다.
그를 파리에서 만나기 직전까지 하루가 고되었다는 이유로, 밤이 좀 길다는 핑계로 수많은 엽서를 썼다. 그가 파리에 온 날 엽서 백 장을 건네면서 내 마음을 증명했다는 착각에 휩싸여 뿌듯함까지 느끼기도 했다. 한 손에는 기내용 캐리어를 등에는 작은 배낭 하나를 메고 온 그는 나를 위해 샀다며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빈 엽서 몇 장을 내보였다. 그 모습이 괘씸해 내가 쓴 마음들을 도로 빼앗으려 하기도 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불안함을 안고 비행기를 탄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나와는 추억이 아닌 현재가 되고 싶다는 그는 가끔, 우리가 사는 파리 외곽의 작은 방, 하얀 책상에서 엽서를 써서 건넨다. 이제 나는 이곳이 파리가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고 내가 사는 곳이 낯설게 느껴져도 힘들지 않을 것 같고. 때때로 나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에 스스로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엽서를 쓰는 나는 문장에 마침표를 찍지 않아도 더는 불안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