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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Nov 17. 2021

05. 일기떨기

내일도 별생각 없이 운동을 갈 예정이다.


올 7월부터 다니시 시작한 운동의 두 번째 순환을 마쳤다. 그리고 나는 망설임 없이 다시 30회 차를 끊을 예정이다. 이번 운동을 시작하며 내가 다짐한 건 딱 두 가지다. 하나, 아무 생각 없이 가자. 둘, 살 빠지려고 하는 거 아니다.


 여태껏 나에게 운동이란 살을 빼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니까 살을 빼지 않기 위해 운동한다는 건 나에게 있을 수 없던 일이었다. 그러니 운동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수험생활을 평생 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살을 빼기 위해 식단을 바짝 조절하고, 오늘 먹은 음식에 대한 형벌처럼 헬스를 다니면 살이 빠지는 순간에는 즐겁게 운동하지만 어느 순간 정체기가 오기 마련이고, 정체기가 오는 순간 나는 운동의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살이 빠지지 않는 운동은 재미가 없고, 할 이유가 없으니까. 운동을 하는 목적이 건강하기 위해서라는 걸 내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알려주는 사람도, 알 방법도 없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연예인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했으니까. 나도 그랬다. 내가 내 몸을 모른 체, 나는 뼈를 다시 맞추는 일을 바라 왔던 셈이었다. 


 그래도 나는 언제나 운동과 친해지고 싶었다. 살을 빼기 위해 헬스장을 다녔지만 나는 러닝머신 속도를 최고로 맞춰두고 뛰면 기분이 개운해지며 스트레스가 날아갔다. 같은 의미로 등산이나 자전거 타기 같이 몸을 쓰는 일을 하면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살과 운동이 분리됐으면 좋겠다고 바라기 시작했다. 내가 운동을 하는 것에 이유가 없고 싶었다. 글을 쓰고 싶어서 쓰고, 영화를 보고 싶어서 보듯이 내가 운동을 하는 것도 하고 싶어서라고, 정말 딱 그뿐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내가 내 몸을 사랑해야 했다.


 이십 대 중반까지 나는 마음 편히 무언가를 먹어 본 적이 없다. 강박처럼 늦은 밤에는 음식을 참았고,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먹으면 하루에 두세 시간씩 운동해 꼭 먹은 만큼 칼로리를 소모해야 했다. 그러니 무언가를 먹는다는 건 도로 배출해야만 하는 것, 도로 내보낼 건데 왜 나는 이걸 꾸역꾸역 먹고 있는 가에 대한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내 주변 여성들은 대부분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를 했고, 보조제를 먹었으며 무리하게 다이어트하는 지인들을 응원했다. 나는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 역시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었으니까. 그러다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 선수 경기를 보게 됐다. 역사적이고 멋진 순간을 목격하고 감동에 벅차 있던 날들 중, 이상화 선수의 허벅지가 멋지다는 말을 들었다. 해설위원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예능 프로그램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설령 칭찬이었다고 한들 이상화 선수의 신체를 언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그때 그 순간 그 말은 내 생각을 잠시 멈추게 하는 아주 작은 쉼표였다. ‘아, 나도 스피드스케이팅했다면 잘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분명히 말하건대 잘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나의 튼튼한 다리가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멋진 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항상 모델 같은 사람들만 멋진 몸의 기준에 세웠던가. 세상에는 이토록 멋진 사람이 많은 걸. 


 완벽하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있을까. 그리고 내가 그걸 해낼 수 있을까. 아직까지도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아주 천천히, 느리지만 확실하게 나를 알아가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고 있다. 나는 요즘 시간이 되면 별생각 없이 운동을 나간다. 때가 되면 먹고 싶은 밥을 즐겁게 먹고, 10시간씩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프지 않을 수 있도록 근육이 건강하게 잡힌 내 다리를 사랑한다. 몸무게는 건강검진할 때 외에는 재지 않고 이제 딱히 궁금하지도 않다. 문득 이렇게 변한 나를 깨달을 때마다, 나는 그때 또 내가 몹시 좋다.


 운동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 트레이너 선생님이 내게 목표를 물었다. 우리 트레이너 선생님은 특이하게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 인바디도 재지 않고, 몸무게도 묻지 않았다. 단지 내게 어떤 지병이 있는 지만 물은 사람이다. 그랬던 선생님이 운동의 목적이 무엇이냐 물었다. 나는 스쾃를 하며, “건강하기요.”라고 대답했고 선생님은 “좋아요.”라고 했다. 나는 내일도 별생각 없이 운동을 갈 예정이다. 


일기떨기 02. 선란

『무너진 다리』 『어떤 물질의 사랑』『천 개의 파랑』『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나인』을 썼습니다.

  환경파괴, 동물멸종, 바이러스를 중심으로 SF소설을 씁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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