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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Mar 17. 2020

01. 낭만주의 미술관 옆 홍차 카페

파리에서 만난 언니들




파리에서 지낸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연주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지금 친구 두 명과 함께 서유럽 여행 중인데 커피라도 한잔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대학교 선후배로 같은 시절을 다른 모양으로 공유했다. 서로 묘한 유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적정 거리를 유지한 채 애정이 부풀지 않도록 애를 썼다.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자마자 몽마르트르 언덕을 오르게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우리가 졸업한 고등학교 언덕은 유독 경사가 가파른 곳에 있었는데, 눈 내린 다음 날이면 운동회에서나 볼 법한 표면이 거칠고 두꺼운 밧줄이 언덕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렇게 꼬박 3년 동안 언덕을 오르면서도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지 않았다. 아무런 보람 없이 절로 한숨부터 나오는 길을 곱씹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선배와 함께 몽마르트르 언덕을 아주 천천히 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정해진 등교 시간 따위 없기에 예쁜 주택이 나타나면 한 번, 바게트로 유명한 빵집 앞에서 두 번 사실 아무렇게나 멈춰 서도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여느 관광객처럼 점점 작아지는 지붕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어도 좋겠지.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쇄골을 살짝 덮는 파마머리를 하고, 어두운 바탕에 잔 꽃이 흐드러지게 핀 프릴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입술에는 채도가 낮고 붉은 버건디 색상 립스틱을 발랐는데 빈틈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입술 선을 따라 정교하게 채워 넣은 립스틱을 보자마자 언덕을 함께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끔, 아름다운 대상을 마주할 때면 인위적인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운데 선배 얼굴이 딱 그렇게 예쁘게만 느껴졌다.     


몽마르트르 언덕이 아닌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카페로 선배를 데리고 갔다. 낭만주의 미술관 바로 옆에 있는 ‘로즈 베이커리카페’ 청록빛 온실 속 투명한 창 위로 햇살의 방향이 끊임없이 뒤바뀌는 곳. 팔이 기다란 나무 아래에서 영국식 홍차와 파운드케이크를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장소임에도 평소에는 인적이 드문 곳이다. 여기라면 장기 여행에 지친 선배가 여유를 되찾기에 적당해 보였다.      


우리는 테라스에 앉아 안부를 주고받았다. 나는 이제 막 파리 외곽에 작은방을 구하고 한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참이었다. 우리가 밀린 일기를 쓰는 내내 선배의 양 볼은 차가운 바깥공기 때문에 점점 발갛게 물들었다. 선배의 머리칼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사방으로 헝클어졌다. 그의 짙은 입술은 하얀 유리컵 표면에 선명한 자국을 남기더니 홍차를 마실 때마다 서서히 옅어졌다. 우리가 차를 다 마실 때쯤에는 입술 위로 살짝 어두운 선홍빛만이 남게 되었다.      


선배는 내게 파리에서의 일상에 관해 물었다. 한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을 제외하면 거의 외출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이미 집 계약과 함께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누군가 만나자고 하는 날이면 책상 위에 있는 2유로짜리 동전이 몇 개인지 세어본다고 했다. 그 개수가 손가락을 이용하지 않고 눈으로 대중 봐도 될 정도로 몇 개 없을 때면 외출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부터 나온다고도 고백했다.     


선배는 내게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나의 파리 일상이 시작되었다고 여겼지만 정작 나는 늘 이별을 유예하는 기분으로 지냈다. 그날 선배와 만났던 카페 정원에서도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느껴졌다. 집 앞 슈퍼나 빵집에 갈 때도 오늘의 인사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곳을 떠날 마음은 없었지만 오래 머물러야 할 구실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선배의 입술 색이 완전히 지워졌을 무렵 카메라에 새로운 필름을 넣었다. 방금 넣은 필름 한 롤로 카페에서 몽마르트르 언덕까지 가는 선배의 모습을 담을 거라 했다. 수동 카메라를 다루는 게 어색한 내가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기 위해서는 선배가 볕이 잘 들 때마다 멈춰 서서 나를 바라봐야 한다고도 했다.


몽마르트르 언덕을 오르는 내내 선배 뒤에서 걸었다. 나란히 걸어도 될 법한데 다섯 걸음 정도 간격을 유지한 채 그의 뒤를 살폈다. 혹 지나치는 풍경이 있을까 싶어 건물과 건물 사이, 벽에 그려진 캐리커처까지 들여다보았다.      


가장 많이 마주한 건 선배의 뒷모습이었다. 그중에서도 몸의 중심인 어깨나 허리가 아닌 걸음걸이가 눈에 띄었다. 선배는 원고지 네모 칸 위에 흑심으로 글을 쓰는 것처럼 걸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 전체를 지면 위에 꾹꾹 눌러 걸었는데 참 정성껏 걷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 길의 지도를 발바닥으로 기록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렇게 공들여서 걷는 사람이라면 마음으로 가는 길 또한 까먹지 않을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길눈이 밝은 사람들은 낮이고 밤이고 한 번 가봤던 골목은 자기 감각에 그대로 맡긴다는데 선배 역시 몽마르트르 언덕 곳곳에 자신의 시간을 통째로 내맡긴 채 걸었다. 확실히 하루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숨을 참고 걷는 나와는 달랐다.       


결국 사크레쾨르 성당이 주황빛으로 물들 고서야 언덕 위에 도착했다. 선배에게 우리가 매일 아침 오르던 학교 언덕을 기억하는지 물었다. 그는 당연한  아니냐며 매년 봄이면 언덕을 오르기도 전에 머리 위로 쏟아지던 벚꽃 잎이 생생하다며  예쁘지 않았냐고 했다. 나는 짧게 피고 지는 벚꽃을 떠올리려 했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숨을  참고 어금니를  깨문  언덕을 오르는  모습밖에 없었다.     


선배에게 오늘 찍은 필름을 한국에 가자마자 인화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아직은 외롭지 않기에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늘 그랬듯이 선배는 내 말에 물음표를 달지 않았고 우리는 언덕 아래에서 다음에 만나자는 약속도 없이 헤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가 인화한 사진들을 파리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버건디라고 생각했던 입술 색은 햇볕 아래에서 맑은 빨강이었고 산뜻한 그녀의 인상과 참 잘 어울렸다. 그날 밤, 아름다운 것을 두고 아름답다고 여기지 못한 채 불편하게 여겼던 내 마음이 가난하게 느껴졌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숨을 참는 것보단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는 방법을 체득하려 했다. 언덕은 늘 같은 자리에서 늘어지거나 짧아지는 법 없이 그대로인데 내 마음에 따라 멀고 가까워진다는 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여전히 내게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은 몽마르트르 언덕이고 나는 그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한다. 하지만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 비밀의 정원처럼 푸른 나무로 둘러싸인 카페를 하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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