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기떨기 Mar 18. 2020

02. 몽생미셸에서 만난 낯선 여자

파리에서 만난 언니들




처음 만난 여자가 자꾸만 밥을 사겠다고 했다.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만한 음식도 아니고 가이드가 추천한 양고기 전문점이었다. 수중에 돈이 없는 건 사실이었지만 낯선 이의 호의가 부담스러웠다. 한 사람당 적어도 5만 원, 맥주라도 한잔 마시게 되면 6만 원은 나올 법한 식당이었다. 그녀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밥을 얻어먹기에는 과하다 싶었다.      


“오늘이 엄마 기일이어서 그래”     


희주 언니와의 첫 만남이었다. 우리는 한국인만 가능하다는 몽생미셸 투어에서 만났다. 해가 뜨기 전에 도착한 모임 장소에는 45인승 버스 두 대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가능하다면 도망치고 싶었다.      


이날 투어는 코끼리 바위로 잘 알려진 에트르타와 항구 도시 옹플뢰르를 지나 몽생미셸 야경을 보고 새벽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버스 좌석에 앉자마자 마이크를 집어 든 가이드가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귀담아듣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많이 불고 치즈가 맛있다는 말 같았다.      


하나둘 무리 지어 다닐 때도 나는 줄곧 혼자였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에 대해 소개하는 일이 꼭 변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일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여행객도 아니고, 소속이 정해진 유학생도 아닌 나.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무작정 파리에 오긴 했지만 1년을 다 채울 자신도 없었다. 무엇보다 말은 통하지만 마음이 닿지 않는 사람을 만날까 봐 두려웠다.      


요즘도 인터넷에서 몽생미셸 수도원 사진을 보면 ‘내가 저기에 갔다 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감흥이 없다. 다만 그곳의 거센 바람을 한 번 더 느껴보고 싶긴 하다. 도심에서는 저마다 바람을 피하는 방법이 다르다. 누군가는 안락한 소파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커피를 마실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이는 박스 상자를 깔고 누워 행인에게 손을 내밀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모두가 같은 장소에서 자신의 옷깃을 여민 채 비바람을 맞았다.      


파리에서 유일한 취미는 엽서를 쓰는 일이었다. 그날도 몽생미셸이 그려진 엽서 한 장을 집어 드는데 버스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슬며시 다가왔다. 그녀는 파리 메종 에 오브제 출장을 왔다가 관광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별말 안 했는데도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걸 보고 쉽게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여자는 지루하지도 않은지 한참 동안 엽서를 고르는 내 옆을 떠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녀도 한때 엽서를 꽤 모았다고 했다. 큰 상자에 온갖 엽서를 모으곤 했는데 중국 유학을 다녀와서 찾아보니 엄마가 그 많은 걸 모조리 버려버렸다고 한다. 그녀는 우리 엄마가 원체 쓸데없는 걸 눈앞에 두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과 행동이 분명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엄마를 회상할 때마다 과거형을 쓰는 걸 보고 아마 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그녀의 이름을 물었고, 괜찮으면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날 저녁 내내 빵에 버터만 발라 먹어도 뭐가 좋은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희주 언니는 끝끝내 엄마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배고파”였다며 내게 저녁을 사줬다.     


우리는 언니가 파리에 있는 일주일 동안 세 번을 더 만났다. 추석에는 밤늦게 만나 비프 부르기뇽과 달팽이를 먹었고, 몽쥬 언덕에서 커피를 마신 날에는 내가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레스토랑에 가서 푸아그라를 먹었다.     


언니는 한 번도 빠짐 없이 제사와 명절을 챙겼다고 했다.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기도 전에 식구들이 느끼는 빈자리를 채워야만 했다. 모두가 자신에게 의지했고 때때로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매번 마음을 숨겨야만 했다고 했다. 이번에 출장을 핑계로 처음으로 제사를 챙기지 않았는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이렇게까지 막연하고 답답한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와인 잔을 들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에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 그건 다른 이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온전한 자신의 몫이라는 사실. 본인은 이 모든 걸 너무 늦게 알게 된 것 같다며 내게 파리에 더 오래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그게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지 않냐면서 되레 묻기도 했다.   

  

늘 상상하던 외로움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파리까지 왔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일에 더 익숙하고 능숙했다. 한 시인이 이곳에서 혼자 시를 쓰고 등단을 했다는 말에 그가 있던 곳에서 글을 쓰는 일상을 상상하고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지독하게 이기적인 나에게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외로움이라는 감정도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언니를 만나고 돌아올 때마다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파리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물었더니 “네가 있는 곳이잖아”라고 말했다. 그 맹목적인 사랑에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마음이 유약한 나의 엄마는 내게 사랑을 받는 것과 기쁨을 만끽하는 것만 알려주고 슬픔과 외로움은 자꾸만 숨기려 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건 오르세 미술관이었다. 언니는 출국 하루 전날 뮤지엄 패스를 써야겠다며 미술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내게 이곳에서 잠깐 보자고 했다. 당시 나는 기간이 한참 지난 국제학생증을 척 보기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매표소 직원들에게 슬쩍 내밀고 들어가곤 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학생 신분으로 속인 다음에야 미술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언니는 시간이 없어서 거의 듣지 못했다며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기계를 내밀었다. 지난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미술관에 갈 때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고 말한 걸 기억한 것. 미술관에 갈 때마다 빌릴 순 없으니 파리를 떠나는 날 대여해보려고 마음먹은 걸 언니가 내 손에 쥐여줬다.      

그날은 미술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귀가 새빨개지도록 오디오 가이드를 들었다. 그 음성이 희주 언니 목소리 같아서 말의 마디가 끊길 때마다 대답하기도 했다. 매년 몽생미셸에 다녀온 날이면 언니가 사랑한 여인이 배가 고프지 않길, 외롭지 않길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01. 낭만주의 미술관 옆 홍차 카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