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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Jan 19. 2022

10. 일기떨기

걱정보다 잘해낸 일들이 더 많았으니까.

발신인은 절친, 발신장소는 강릉에 위치한 보현사.



"혜은이 안녕! 오늘은 20년 8월 7일이야. 정말 지겨운 비가 계속 내리고 있는 여름이야. 원래 너랑도 템플스테이 하기로 했지. 예습 겸 먼저 와봤어. 우린 올해 템플스테이를 같이 했을까? 이 편지를 올해 말에 보내주신대. 날 좋은 날 꼭 같이 체험 했었으면 좋겠다. 지금 막 스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엽서를 받았는데, 제일 여름 느낌 나는 예쁜 엽서로 너에게 깜짝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어. 올해는 정말 통째로 없어진 느낌이야. 이 엉망진창인 2020년, 울 혜은이는 걱정이 없구나? 온앤오프도 아마 1등을 했을 거야. 10월 쯤 멋진 책방도 오픈했겠지?"


 정말 걱정이 없구나? <아무튼, 아이돌>도 너무 멋지게 잘 쓰고 있겠지? 모두 다 이뤄졌으면 좋겠다. (...)’   

십년 일기장의 가름끈을 맨 앞으로 넘겨 2022년 새해 일기를 쓰는데 엽서 한 장이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작년 새해에 도착한, 2020년 여름으로부터 온 느린 편지였다. 발신인은 절친, 발신장소는 강릉에 위치한 보현사. 2년 전 여름, 친구는 여름휴가 차 템플스테이를 하러 강릉으로 떠났다. 나와 생일이 딱 일주일 차이라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는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며 함께 템플스테이를 가기로 했었다.     


 그리고 편지에 써있듯 우리는 함께 하지 못했다. 그해 여름 나는, 그때는 잘 몰랐겠지만, 향후 몇 년 간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약속을 해둔 상태였다. 7월에는 <아무튼, 아이돌> 출간계약서에, 8월에는 <작업책방 씀> 상가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그 다음부터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돌이켜보면 지난 2년간의 일들이 ‘싸인을 했다, 그리고 2022년이 되었다.’라고 압축할 수 있을 만큼의 속도감으로 진행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친구의 편지 속에 반복되는, ‘혜은이는 걱정이 없구나?’란 말이 이제와 엄청 역설적으로 들린다. 그것이 나를 향한 확신의 믿음과 응원인 줄 그 당시에도 알았고 지금까지도 느껴지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많겠어’로 읽히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나를 잘 아는 친구는 어쩌면 짐작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제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인해 틀림없이 괴로워지리란 것을. 걱정의 소용돌이를 앞두고 있는 나에게 주문처럼 걱정이 없구나? 라고 말을 건넸는지 모른다. 걱정하는 것을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걱정하지 않아도 잘 해낼 테니까.    


 응. 덕분에, 결과적으로는 잘 해낸 것 같다. 걱정했던 만큼의 일들만 일어나서 다행이었고, 걱정보다 잘해낸 일들이 더 많았으니까. 책방은 자리를 잡아 가고 있고, 나는 여전히 케이팝과 아이돌을 좋아하며 그와 관련된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 내가 사랑하게 된 것들을 더 큰 마음으로 계속 사랑할 수 있어 다행이다. 아직까지는.     


올해 새해를 몇 분 앞두고 마지막으로 쓴 일기는 이렇다.     

‘이런 날, 애써 긴 인사를 풀어내지 않아도 아쉬움 없이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게 도착하는 모든 것들을 온 마음을 다해 마중 나가서 정성으로 함께 하고, 오래 배웅하며 보낸 한 해였다. 일이든 사람이든. 하루끝에서 불을 끄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고마워해야 하나... 그런 생각으로 겸손해지는 밤이 많았다.’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고마워해야 하나? 우선은 친구 혼자 느린 편지를 쓰게 만든 20년 여름으로 돌아가 고마움을 전해야겠다. 올해는 꼭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그곳에서 서로의 미래를 향해 ‘우리 은하는 참 걱정이 없구나?’라고 미리 응원의 편지를 쓸 수 있기를.     



대화 주제     

■ 여러분은 최근 누구에게 편지를 썼나요? 혹은 받았나요? 기억에 남는 편지나 편지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 편지를 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여기서 공개적으로 말하고, 우리 편지를 쓰기로 합시다!     

■ 여러분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1. 혜은

『아무튼, 아이돌』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을 썼습니다.

  망원동 '작업책방 씀'에서 다음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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