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기떨기 Feb 08. 2022

11. 일기떨기

올 명절에도 엄마와 함께 보냈다. 행복하고 힘들게.



올 명절에도 엄마와 함께 보냈다. 행복하고 힘들게. 명절은 그렇다. 행복하고, 힘들다. 중증장애인인 엄마는 휠체어 없이 이동이 불가능하고 도움 없이 움직일 수가 없어 24시간 옆에 사람이 붙어 있어야 한다. 9년 넘게 집이 아닌 재활병원에 있는 이유 역시 이 두 가지 이유다. 휠체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고, 간병인이 필요하다. 뇌질환 중증 환자의 보호자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면 명절이 두렵다는 글이 많다. 명절에는 간병인분들도 가족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데, 이 노동이 정말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을 나는 이럴 때 쓰고 싶다. 그래서 이제는 간병을 하며 겪는 정신적 고통과 슬픔을 타인에게 굳이 말하지도 않는 편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언니와 나는, 특히나 요즘처럼 전염병 시국에 엄마를 못 본지 6개월이 넘어갈 때는 장시간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무척 소중하지만 힘든 건, 정말 어쩔 수가 없다. 한 사람의 하루를 두 사람이 나눠가진다는 건, 하나의 몸으로 두 사람의 삶을 살 수 없으니 한 사람의 하루를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엄마와 함께 있으면 나는 내 하루를 포기하는 편이다.      

  몸이 힘든 건 상관없다. 올 설에는 진행 중인 기획안을 다시 써야 하는 일까지 겹쳐서, 엄마를 밤 10시에 재우고 새벽 3시까지 일하고 아침 6~7시 사이에 일어나 종일 엄마의 수족이 되어야했는데 이런 육체적인 건 전혀 힘들지 않다. 정말 힘든 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은 엄마의 치매를 보는 것, 엄마가 화를 낼 때 왜 화를 내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 엄마가 아픈데, 엄마가 아픈 걸 몰랐다는 것. 함께 있던 5박 6일 동안 엄마가 내내 짜증냈던 이유가 열이 나서라는 걸 알았을 때, 그래서 열이 떨어지고 난 후 평소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우리를 불렀을 때, 언니랑 나는 엄마를 붙잡고 미안하다고 또 쭐쭐 울었다. 엄마였으면 바로바로 알았을 텐데 딸들은 서툴어. 엄마처럼 못해. 엄마는 해줬을 텐데 딸들은 늘 좀 모자라. 이번 명절도 지독히도 힘들고 행복했다. 다음 명절에는 더 잘 해야지. 



대화 주제 


■ 이번 설 명절에 다들 뭘 하고 지내셨나요?

1) 명절에 봤던 콘텐츠(영화, 드라마, 책)

2) 나의 베스트 명절 음식

3) 명절하면 떠오르는 기억들 (친척, 사촌!)

■ 저는 가끔, 이기적이지만 제가 처한 상황을 모르는 체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모든 것이 온전히 나의 삶이라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제 삶을 사랑하려고 노력해요. 혹시 여러분들한테도 부정하고 싶지만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삶의 한 부분이 있을까요작은 것도 좋아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2. 선란

『무너진 다리』 『어떤 물질의 사랑』『천 개의 파랑』『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나인』을 썼습니다.

  환경파괴, 동물멸종, 바이러스를 중심으로 SF소설을 씁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매거진의 이전글 10. 일기떨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