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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May 04. 2022

16. 일기떨기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한 중년의 회사원은 말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한 중년의 회사원은 말했다.


“시간에서 완전히 해방될 순 없겠지만, 할 만큼 했으면 쉬고. 잘 만큼 잤으면 일어나고. 그렇게 내 템포를 갖는 게 나에게 가장 필요한 해방이 아닐까.. 그래서, ‘내 템포대로’라고 정했습니다.”


최근 나도 모처럼, ‘이것이 나의 템포’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만한 하루를 보냈다. 첫차를 타며 퇴근하고, 동이 틀 때 잠이 드는 엉망진창의 루틴이 아니라. 그날의 일기는 이렇게 쓰였다.     

오늘 새벽엔 쓸데없는 오기를 부리지 않았다. 잘 만큼 자고 일어나 두 끼를 천천히 만들어 먹었다. 남은 한 끼도 곧 직접 해 먹을 것이다. 나는 내가 만드는 음식을 꽤 좋아하니까. 까다롭지 않은 입맛이기도 하지만 늘 내 마음에 들게끔은 요리해낸다는 작은 신뢰가 있다. 그런 걸 점점 어쩌다 한 번씩 깨닫곤 한다. 오늘처럼 계획이 없는, 드문 휴무 때나 겨우. 이제 집에 좀 있어야지. 평일에도 요리에 쓸 기력과 부지런함을 남겨둬야지. 좀 없더라도, 나눠줘야지.     

시간을 들여 하는 요리는 확실히 나를 돌보는 느낌을 주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휴식은 느긋한 마음으로 세탁기를 여러 번 나눠 돌리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세탁기가 돌아가는 한 시간 남짓한 공백 동안 좋아하는 무용한 일을 하나 골라 가능한 한 아무 알람에도 한 눈 팔지 않고 그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온전한 휴식에 스스로를 잠시 묶어두는, 삶으로부터 잠깐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예컨대 두 다리가 L자 모양이 되도록 벽에 붙이고선 눈을 꼭 감고 최근 젤루다가 꽂힌 음악 한 곡만 반복해서 듣기 같은. 책읽기처럼 좋아하지만 일과시간에도 쉽게 할 수 있는 건 이때에 하지 않는다. 아주 작은 성취나 변화와도 무관한, 노력 없이 마음이 잔잔해지는 것들을 한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일들은 꼭 이렇게 시간을 내야만 할 수 있게 됐으니까.     

오늘은 세탁기를 세 번이나 돌렸다. 그만큼 많은 휴식들이 주어진 하루였다. 요즘 챙겨보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식으로 말하자면 내가 나를 ‘추앙’한, 무엇보다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아주 기념적인 근로자의 날이다.


대화 주제     

■ 제가 요즘 챙겨보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는 ‘추앙’, ‘해방’ 같은 단어를 대사에 마구 때려 넣으며 낯설어하는 시청자들의 가슴을 이상하게 뛰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추앙은 ‘무조건적인 열렬한 응원’으로, 해방은 ‘다른 삶을 꿈꾸는 연습’ 정도로 치환돼서 서사에 스며드는데요. 이런 맥락에서- 여러분이 추앙한/추앙받은 경험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 여러분은 ‘다른 삶’을 꿈꿔본 적 있나요? 혹은,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느껴본 적 있나요?      

■ 최근의 날들 중, 인상 깊은 휴식을 보내셨다면 들려주세요. 혹은 그러할 휴무의 계획이 있다면 자랑해주세요!     

■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요리가 아니라도 각자 맡은 업무 외에, 삶의 영역에서 스스로 믿음직스럽다 여기는 종목(?)이 있다면?

■ 일기떨기를 통해 저희가 종종 영업하는 책이나 콘텐츠들을 청취자 분들도 관심 있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최근 소진이 일기떨기 인스타그램 계정에다 책추천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죠. 요즘 영업하고 싶은 콘텐츠가 있다면?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1. 혜은

『아무튼, 아이돌』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을 썼습니다.

  망원동 '작업책방 씀'에서 다음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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