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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May 23. 2022

17. 일기떨기

혼자는 정말 좋은데, 혼자는 너무 외롭다.




독립을 한지 이제 곧 두 달이 되어간다. 완전한 내 공간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나를 더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데, 그 책임감이란 나를 돌보는 일에 관해서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공간, 내 것으로만 가득한 나의 공간, 일과를 끝내고 돌아가면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 그런 곳이 있다는 건 나를 부지런하게 만든다. 

요즘은 눈을 뜨면 청소를 하고, 아침을 먹고, 씻고, 나갔다가 돌아오면 내가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내일 아침으로 먹을 요거트를 만들고 때에 따라 아침에 널어두고 간 빨래를 개고, 책을 정리하고 또 읽는다. 일기를 쓰는 시간도 부쩍 많아졌는데, 그 이유는 혼자 있다 보니 불가항력적으로 우울해지고 그 우울을 막기 위해 무작정 글로 옮기는 습관이 생겨서다. 

혼자는 정말 좋은데, 혼자는 너무 외롭다. 외로운 건 지독한데 나는 그 외로움을 좋아하고, 조금 쓸쓸하게 잠들었다가 아무렇지 않게 깨는 아침이 좋아졌다.

코로나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엄마를 근래 며칠 동안 함께 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동안 외면했던, 병원에 홀로 있는 엄마의 외로움을 확인했다. 엄마는 외롭다. 엄마는 아프기 전에도 외로웠는데, 나는 왜 아픈 후의, 치매에 걸린 엄마는 덜 외로울 거라 생각했을까? 그걸 두 눈으로 본 이후로 며칠은 혼자 있는 집에서 고장 난 것처럼 울었다. 나도 외롭고 엄마도 외로우니, 우리 집에서 엄마랑 같이 사는 생각을 했다가도 그게 당장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 속상해하고는 했다. 

함께 살아도 연락을 자주 하는 자매는 아니었는데, 요즘은 부쩍 언니와 연락하는 빈도가 늘었다. 우리는 이제 은연중에 서로가 외롭다는 걸, 서로가 엄마 생각에 슬프다는 걸 알아서 아침마다 좋은 하루 보내라고 이야기를 한다. 

혼자 있는 건 너무 외롭지만, 그래도 조금 즐거운 이야기도 해볼까? 나는 혼자 살게 된 이후로 내가 머리카락 생성기라는 걸 깨달았다. 내 존재는 오로지 머리카락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는 걸, 내가 아직도 대머리가 아닌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생활 속의 사고가 정말 많이 일어난다는 것. 이사를 온 이후로 도어록이 고장 나서 교체했고, 신발장을 정리하다 두꺼비집을 건드려 껐는데 그걸 몰라 꽤 애를 먹고, 세정제가 변기에 들어가 변기가 막히고, 오늘은 빨래 건조대를 망가트렸다. 방충망에 구멍이 나 있는데 이것도 조만간 수리해야 한다. 예전에는 이런 일을 하나도 겪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면 엄마나 아빠가 다 해줬구나, 싶다. 요즘에는 사고가 일어나면 한숨 팍 쉬고, 인터넷에 찾아보거나 아빠한테 전화해서 해법을 묻는다. 자잘한 전기요금이나 정수기 설치도 아빠한테 자주 묻는다. 생활 지혜를, 삶의 방식을 전해 들을 수 있는 아빠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나는 한동안 혼자 살겠지만 요즘 언니와 제주도살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딱 1년 만이라도 엄마랑 같이 제주도에서 편하게 살고 싶은 계획이다. 아마 그때 또 가족들이랑 살면 그 나름의 피곤이 있을 것이고, 혼자 있을 공간을 그리워할 테니 지금 마음껏 외로워두어야겠다.



대화 주제 


■ 독립/자취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생활 팁을 알려주세요.

■ 내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던 경험이 있나요? 

(ex. 변기 막혔을 때 물어볼 수 있는 아빠가 있어 다행이었다)

■ 꿈꾸는 미래 삶의 모습이 있나요? 제주도살이처럼 단기간 목표도 좋아요.

(독립을 한 혜은과 선란에게) 집을 고를 때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 어쩐지 인테리어에 일가견이 있을 것 같은 소진은, 독립하게 된다면 어떤 집을 꾸미고 싶나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2. 선란

『무너진 다리』 『어떤 물질의 사랑』『천 개의 파랑』『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나인』을 썼습니다.

  환경파괴, 동물멸종, 바이러스를 중심으로 SF소설을 씁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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