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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Jul 06. 2022

20. 일기떨기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창피해진다는 것




에스파는 둘이 될 수 없었지만 나는 둘도, 셋도, 넷도 될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지나치게 ‘하나의 나’에 집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 3년이 훌쩍 넘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나’란, 내가 가진 무수한 페르소나 중 하나만이 나라고 착각하는 것인데, 이를테면 몇 년 전까지 나는 행복하면 죄책감을 가지는 딸이었다. 그때 내가 처한 상황 중 가장 큰 것은 엄마의 간병이었고, 엄마가 아프다는 거였고, 엄마 스스로가 힘들다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다른 곳에서 웃으면 죄책감을 느꼈다. 엄마 옆에 있을 때도, 홀로 있을 때도 행복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것을 이겨보고자 떠났던 숱한 여행지에서도 나는 나를 둘러싼 슬픔의 막에 꽁꽁 싸여, 지금도 여행지를 생각하면 그 노을을 바라보며 슬퍼하던 내가 떠오른다. 뭐, 그래서 싫다는 건 아니다.    

시간이 지나 소설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소설에 대한 평가에 지나치게 몰두했던 시절도 있다. 그곳에서의 인정이 내 삶의 인정 같았던, 짧게 스쳐간 순간인데 그때 불현듯 내 삶의 가치를 이 소설 따위에 전부 몰두해버릴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소설의 흥행과 인정이 나의 인정처럼 느낄까 봐. 물론 소설이 인정받으면 좋고 더할 나위 없는 성취감이겠지만 그건 직업적인 나의 성과이고 내 삶을 다 설명하지 않는다는 걸, 그러므로 동시에 내 소설의 실패가 나의 실패는 아니며, 나는 내 소설의 성과와 상관없이 내 삶을 옳은 방향으로 꾸준히 밀고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이제 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매우 바쁘다. 이전에도 바빴지만, 소설도 써야 하고 또 다른 내가 이루고자 하는 삶의 업적들을 하나하나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매일 되시기는 말! 언제나 최고의 성과를 낼 순 없다면,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창피해진다는 것. 열심히 한다고 모든 결과가 다 좋을 순 없지만 적어도 창피함을 피할 수 있다는 것. 그거 하나만을 새기며 한 장, 한 장, 아직 형체가 나오지 않은 한지를 덧바르고 있다. 




대화 주제 


■ 여러분은 어떤 다양한 나가 있으신가요저는 소설가임과 동시에 사업가이고아이돌 팬이고엄마의 간병인 등등 휙휙 바뀌는 모습이 정말 많아요어떤 모습일 때 어떻게 일하고어떤 모습일 때 행복을 느끼는지 다양하게 말해봐요.

■ 직업의 성과가 내 삶의 성과가 아니라는 것저는 이걸 정말 중요하게 여깁니다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학업직업에서의 성과가 자신의 전부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아요이 부분에 대해 주변 사람이나 현대 삶의 모습을 같이 이야기해봤으면 좋겠어요.     

■ 또 나를 강력하게 해주는 것 중에 취미가 있잖아요특히 나 혼자 꽂혀있는 것들취미라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저는 가사 뜯고 분석하는 거 진짜 좋아하거든요그래서 노래 한 곡만 돌려 들어요, 보통여러분들도 이런... 나만 은밀하게 하는 취미 있으신가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2. 선란

『무너진 다리』 『어떤 물질의 사랑』『천 개의 파랑』『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나인』『노랜드』를 썼습니다.

  환경파괴, 동물멸종, 바이러스를 중심으로 SF소설을 씁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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