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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Mar 28. 2023

36. 일기떨기

그냥 빨리 여름이나 왔으면 좋겠다.

 

문득 내가 의자 끝에 걸터앉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자가 아무리 깊고, 넓고, 푹신하고, 편해도 나는 언제나 의자 끝에 엉덩이를 두고 앉아 허리를 꼿꼿하게 편다. 자세를 망가뜨리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긴 습관인데, 좋기야 좋겠지만... 편안하지 않다. 너무 긴장되어 있고 너무 위태롭게 앉아 있다. 어쩐지 의자의 기능을 다 쓰지 못하는 모양새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대체로 그렇게 있는 편이다. 늦잠을 잘까 봐 약간 불편한 자세로 잠들고, 잠깐 낮잠을 잘 때도 보통 베개를 등에 받친 뒤 앉아서 잔다. 며칠 전에는 짧게 눈을 붙였다가 무언가 잘못되어 다 망가지는 꿈을 꾸고 일어났다. 눈을 뜬 뒤에도 현실 감각이 빠르게 돌아오지 않아서 낯설어 보이는 내 방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최근 열림원 웹진에서 에세이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첫 글을 올라가기 전까지, 담당 편집자님을 귀찮게 괴롭혔다. 정말로 이 에세이가 세상에 나와도 되는지, 괜찮은지만 몇 번이나 물은 것 같다. 그러고도 확신이 서질 않아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이게 에세이로서의 가치가 있는지도 물었다.

1년째 반복되는 시나리오 회의에서도 나는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이 이야기가 지니는 가치가 뭘까요? 이게 세상에 나와야하는 이유는요? 이걸 보는 사람들은 뭘 얻어갈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거침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가로 막는다. 나도 안다. 소설 쓰는 것을 즐거워한다고 말하지만, 내가 말하는 즐거움의 쓰기란 이 질문을 내 안에서 전부 통과한 이후의 쓰기이다. 명확하고 뚜렷한 정답은 아니지만 내 나름의 답을 내린 결론을 품고 있다.

의자 끝에 불편하게 걸터앉고, 침대에 앉아 잠을 자고, 질문의 답을 내리지 못하면 왔던 길을 계속 돌아가는 나를 느낀 이후로 내가 바짝 긴장한 채 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마 맞을 것이다. 주변에서 보이기도 그럴 것이다. 언제쯤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 물론 당장 몸에 들어간 힘을 빼고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닥쳐 온 일에, 벌어진 일에, 두려운 일에 대담하게 대처하는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경위를 따지고 보면 긴장할 대로 긴장한 채 준비한 시간들이 먼저여서 일까. 결과에는 도통 에너지를 쓸 기력이 없는 것 같가도 하다.

근 몇 개월간 일기를 잘 써왔는데 3월은 일기를 거의 통으로 쓰지 못했고, 그냥 빨리 여름이나 왔으면 좋겠다.     


대화 주제 


 긴장감의 극대화, 강방적인 루틴이 있는 선란의 하루. 여러분들이 지키는 사소한 루틴들이 있나요? 저는 하루 전체가 정해진 시간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루틴이 강한 만큼 저는 목표 쟁이이기에도 합니다. 최근에는 운동에 빠졌는데, 운동 중독이 되지 않으려고 목표를 세우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에요. 그만큼... 일단 목표를 세우면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최근에 그랬던 경험이 있나요?

 나만의 불편한 습관이 뭔지도 궁금합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2. 선란

『무너진 다리』 『어떤 물질의 사랑』『천 개의 파랑』『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나인』『노랜드』를 썼습니다.

  환경파괴, 동물멸종, 바이러스를 중심으로 SF소설을 씁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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