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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Apr 04. 2023

37. 일기떨기

내 사랑은, 경상도 사투리로 짜치다 못해 형편없기만 한 걸까.




 우리 집 자전거가 몇 대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몇 해 전에 아빠랑 남동생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걸 본 적 있으니 두 대 이상이라고 추측할 수 있지만, 그마저 확신하긴 어렵다. 종종 서울에서 따릉이를 대여해서 한두 시간 타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집 자전거의 행방은 알 수 없다. 사실 자전거 핸들 모양이나 바퀴의 크기부터 오래된 자전거의 도색이 얼마나 어떻게 벗겨졌는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알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 맞는 걸까. 줄곧 집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아빠나 남동생이었고, 남동생이 고등학생이 되고 지하철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으로 통학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우리 집 자전거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빠뿐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일찍 도착해서 저녁을 먹으면서 8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봄이면 불어닥치는 황사 예보부터 기이할 정도로 잦은 산불 소식까지 듣고 있는데, 앵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들으려고 하면 아빠가, 듣는 건 고사하고 자료 이미지라도 보려고 하면 엄마가 텔레비전 화면을 가로막았다. 차례대로 내 시선을 끌어모으던 엄마와 아빠는 더는 답답해서 안 되겠다는 듯 본격적으로 말을 꺼냈다. 내용인즉, 오전에 아빠가 부당한 일을 겪었고 그 사연을 인터넷에 올려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직 밥공기가 반이나 남은지라 무슨 얘기인지 차근차근 말해보라고 했다. 얼핏 자전거가 어쩌고, 주인이 저쩌고 하는 걸 들은 것 같아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자전거 가게 얘기였다. 아빠랑 남동생이 어느 순간 발길을 뚝 끊은 야산 아래 삼천리 자전거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구시가지 종합 상가 안에 있는 자전거 수리점 얘기였다.


 아빠는 멀쩡하던 자전거 바퀴가 헛돌고 자꾸만 가다가 주저앉는 게 심상찮아 집에 오는 길에 종합 상가에 갔다고 했다. 그런데 주인이 자전거를 살피지도 않고 이건 기름칠을 하거나 바퀴에 바람을 넣는 거로는 되지 않고 하나하나 부품을 다 뜯어고쳐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몇 번 아빠가 자전거 가게에 오가는 걸 기억했던 주인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가라고 하자 아빠는 너무 불친절한 거 아니냐며 항의했고, 주인은 또 주인 나름대로 성을 냈다는 얘기. 그러다 주인의 친구로 보이는 아저씨가 와서 아빠의 멱살을 잡더니, 길에서 봤으면 가만두지 않았을 거라고 엄포를 늘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아빠의 얘기를 찬찬히 듣던 나는, 내가 들어도 너무 억울한 얘기라고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게 아닌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 일어난 일이니 쌍방과실인 듯하고, 이런 상황에서 가게 상호까지 밝히면서 인터넷에 올리면 무고죄가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가만히 얘기나 듣고 입에 밥알이나 넣을 것을, 말이 한 번 나오기 시작하니 겉잡을 수없이 얘기가 길어졌다. 괜히 감정적으로 대응하다가 정말 큰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그러다 낯선 사람한테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떡하라고 그러냐고도 덧붙였다. 내 얘기를 가만히 듣던 아빠는 너한테 무슨 얘기를 하겠느냐며 베란다로 담배를 태우러 가고, 엄마는 꼭 그렇게 말해야만 했냐며 한숨을 쉬었다. 그날 이후로 아빠와는 별다른 대화 없이 서로 데면데면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만약 밖에서 멱살을 잡혔다면, 아니 누가 의도적으로 어깨를 툭 치고 가기라도 했다면 아빠는 참지 않았을 것이다. 감히, 누구한테 그러냐며 앞뒤 안 가리고 화를 냈을 사람이다. 왜 이렇게 부모에 대한 내 사랑은, 경상도 사투리로 짜치다 못해 형편없기만 한 걸까. 그 와중에도 아빠의 마음보단 훗날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단 생각에 답답해진 나를 보며 부모는커녕 좋은 딸이 되기에도 글렀단 생각이 들었다.




화 주제

■ 부모님이 주는 사랑에 비해 내 사랑이 현저히 부족하단 생각이 든 순간이 궁금해요.

■ 엄마와 아빠를 대신해 크게 화를 내본 적 있나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부모상이 있다면? 혹은 자식의 모습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3. 소진

낮에는 책을 만들고, 밤에는 글을 씁니다.

그 사이에는 요가를 하고요.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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