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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Apr 24. 2023

38. 일기떨기

책을 덮고, 다시 또 쓰는 하루를 맞이한다.




  처음 문학 행사라는 것을 참여한 건 열아홉 가을이었다. 일기장엔 10년도 넘었지만 꼭 어제 인쇄한 것 같은 새파란 브로셔가 붙어 있다. (정이현 소설가와 신경림 시인의 대담이 있는 날이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작가였다!) 아쉽게도 그날의 기록은 행사를 늦지 않고 참여할 수 있었음에 대한 안도 정도만 남아 있어서, 정확히 어떤 저녁을 보냈는지는 모르겠다. 모두가 둥그렇게 둘러 앉은 객석에 나만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이 좀 신경 쓰였고, ‘의자’가 거듭 등장하는 시를 낭독한 것, 그리고 ‘자리’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 것이 기억의 전부다. 심지어 중간고사 기간이었는지 앞뒤 일기들도 한숨이 나오는 시험 점수들과 다가오는 수능에 대한 걱정들로만 채워져 있다.

  그런데도 이틀 후 일기를 보면 해당 인문주간 행사의 마지막 프로그램을 들으러 또 홍대에 다녀온 흔적이 있다. (이날은 갈색 브로셔를 받았고, 딱 한 줄이 써 있다.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만들자’라고….) 모르긴 몰라도 그때 나는 뭔가를 만났고, 그걸 다시 만나고 싶었거나 아님 새로운 무언가를 더 만나고 싶었던 거겠지. 

이제는 책방에서 직접 행사를 여는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스스로 찾아가는 북토크나 낭독회를 좋아한다. 감탄하며 읽은 책 덕분에 난생처음 들어본 장소를 다소 긴장한 채 향하게 되는 것도 좋다. 어젯밤 <소설 보다: 봄> 행사를 듣는 내내 유독 옛날 생각이 났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구하게 될 지도 알 수 없는 마음으로 향했다가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나서야 깨닫게 될 것들을 안고 돌아온 학창시절을 떠올리면서, 내가 지나간 어떤 경로들이 지금 글을 쓰는 마음과 무척 닮아 있단 생각을 한 것 같다.

  와인도 마시고 세 작가님의 말씀을 문득문득 받아 적으면서 신이 났다. 앞으로 무엇을 더 하게 될 지는 몰라도,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는 명확해져가고 있는 나는 또 어느 문학 행사 한 켠에 즐거운 마음으로 앉아 있겠구나 싶어서. 그리고 <소설 보다: 봄>과 같은 분홍빛으로 가방 속에 나란히 누워 있는 <세 개의 바늘>에 꼭 이와 같은 마음이 있었음을 확인하며 혼자 크게 벅찼다. 밑줄 그은 문장을 일기에도 옮겨본다.   


“쓰는 이와 읽는 이가 함께 하는 공간에 다녀온 날이면 온통 말하고 싶고 쓰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자체도 충만했지만, 내가 좋아했던 건 홀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오는 동안, 고요한 밤거리를 걷는 잠시 동안 내 안에서 많은 것이 쏟아져 나왔다. 같은 호흡으로 책을 읽고, 같은 순간에 책장을 넘기고, 같은 마음과 기분을 나누었던 시간이 남아 입을 뗄 수 있는 심정이 되었다. 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책을 덮고, 다시 또 쓰는 하루를 맞이한다.




대화 주제     

■ 저희가 스티커사진을 찍으면서 놀았던 게 3월 24일인데, 오늘이 4월 24일이니까 딱 한달만에 다시 모이는 거더라고요. 일기 이야기를 하기 전에, 봄근황을 잠깐 풀고 지나갈까요? 어떻게 4월을 보내셨는지 궁금해요.  

 최근 책방에 일기떨기 청취자가 방문하셨어요. 방송에서 추천한 책, 저희가 이벤트로 선물해드린 책을 잘 읽고 있다면서 새 책을 만나고 가셨는데요. 오랜만에 책 영업을 해볼까요? 재미있게 읽은 책, 혹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눈여겨 보고 있는 신간이 있다면 이야기해봐요! / 언제나처럼 책이 아닌 영상이나 오디오 콘텐츠 영업도 환영!     

 문학행사를 좋아하는 혜은…. 이제 일기떨기 멤버들은 관객이 아닌 호스트로 문학행사를 대하고 있을 텐데요, 편집자로서 기획해보고 싶은 행사, 작가로서 진행해보고 싶은 행사가 있나요? (내가 편집한, 내가 쓴 소설이 이런 식으로 독자와 닿았으면 좋겠다! 하는)     

 일기는 ‘책을 덮고, 다시 또 쓰는 하루를 맞이한다’로 끝는데요. 소설 연재를 하고 있는 저는 세이브 원고가 거의 바닥이 나고 있어서 아주 곤란한 상황입니다. 매주 새 소설이 공개되는 하루가 정말 두근거리면서도 부담스러워요. (그런데 제 옆에 놓인 잡지 표지 위로 “어려운 문제일수록 푸는 보람이 있는 법이죠”라는 박서련 작가님의 멘트가 보이네요….ㅎㅎ) 일기떨기 여러분들이 요즘 직면하고 있는 문제… 그러나 열심히 풀고 있는 문제는 뭔가요…. 꼭 개인적인 고민이 아니라도 좋겠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1. 혜은

『아무튼, 아이돌』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을 썼습니다.

  망원동 '작업책방 씀'에서 다음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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