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를 발도르프 어린이집에 보내는 이유
"엄마, 새 어린이집에는 장난감이 별로 없어."
첫째 아이는 발도르프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언니 오빠 동생들과 다 함께 역할놀이, 흙놀이, 숲 놀이를 즐기고,
가공되지 않은 유기농 재료 음식과 어느 하나 반듯한 것이 없는 나무토막 놀잇감을 누린다.
차로 20분의 거리에,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비인가 어린이집이라
주변 사람들은 발도르프 어린이집으로의 입소를 응원해주지 않았다.
단 한 사람, 나를 제외하고.
육아관을 정립해 오며 당연히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아이가 행복한 어른으로 자라기를"
그러나 세상의 기준은 아이를 지나치게 옥죄어 오는 듯했다.
첫째는 올해 만 3세.
만 3세면 유치원을 갈 수 있는 나이다.
유치원은 유아학교로서 교육이 중요한 목표이고, 누리 과정에 따른 학습이 들어간다.
보육 중심인 어린이집이라 할지라도 학부모들의 요구에 따라 자유놀이보다는 교육시간이 들어가는 편이다.
영어와 한글, 코딩, 바둑, 악기...
글자에 갇히지 않고 이미지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때는 지금이 유일할 텐데.
하루 10분이라 할지라도 지금보다는 학령기에 만난 영어와 한글이 재미있지 않을까?
나중에 진짜 공부할 때 '다 아는 거야'하며 거들떠보지도 않으면?
'내가 공부한 유아기는 그런 게 아닌데...' 고민해 봐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했다.
아이의 놀이시간과 낮잠시간을 보장하는 어린이집을 찾아보니 옆 도시에 단 하나,
발도르프 어린이집이 있었다.
확실히 만 2세까지는 보육과 놀이 위주의 활동이 대부분이라
오직 까다롭게 보는 것은 선생님과의 관계가 다였지만 시간이 지나니 달라졌다.
건강한 밥과 간식을 먹고 자유놀이가 많은 곳,
영상을 보여주지 않고 노출하지 않는 곳,
플라스틱이나 용도가 정해진 장난감이 아닌 자연 속에서 자연물과 노는 곳.
육아를 정말 책으로 배운 나라 나는 이렇게 배웠는데,
이런 육아관을 가진 보육기관은 거의 없었다.
영어 유치원(바른 표현은 아니지만), 놀이학교라는 프리미엄 선택지는 늘어났지만
이와 다른 방향을 표명하는 보육기관은 수가 참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ADHD 확진 이후 아이 보육기관에 관한 고민은 더 깊어졌다.
내가 전두엽 발달과 관련한 문제를 가지고 있어 아이에게 유전적인 성향을 쥐어주었을 거라
더 건강하게 먹고, 더 잘 자고, 더 자연에서 뛰놀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첫째 아이는 감성이 풍부하고 완벽주의인 신중한 성격이라
조기 교육을 시킨다면 두말할 것 없이 잘 따라갈 순종적인 아이이지만,
그보다는 상상력 속에서 헤엄치고 경쟁하지 않는 시간을 더 보내길 바랐다.
문제는 선택권이 거의 없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포함해 여러 보육기관을 알아보게 되었다.
숲 유치원이라고 불리는 유치원은 우선 이름만 숲 유치원인 곳도 많았다.
마음에 드는 숲 유치원은 인기도 너무 많았을뿐더러 집과의 거리가 너무 버거워 포기했다.
학습을 그나마 덜 시킨다고 하는 병설유치원은 방학이나 등하원 문제가 있었고,
무엇보다 전체 원아 수가 거의 10명 미만으로 정말 적어 사회성 발달에 있어 아쉬웠다.
우리 집에서 차를 타고 20~25분, 왕복거리만 36km인 발도르프 어린이집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 스스로도 공부하며 발도르프는 한국에서 실천하기 어려워라는 생각으로 접어두고 있었다.
만 3세 학습에 대한 부담이 본격적으로 밀려오자 나는 진지하게 발도르프 어린이집으로의 전원을 고민했으나
먼 거리와 월 60만 원 이상의 학비라는 부담이 있었고 주변분들은 모두 말렸다.
평범하게 남들 하는 학습하는 게 뭐 어때? 그래봤자 하루 30분인데.
그 돈이면 차라리 영어유치원을 보내지?
1년 안에 또 이사를 할 텐데, 그때 또 전원 할 거야?
네가 할 수 있겠어? 매일 애들을 태우고 오가는 게 힘들 텐데.
아이를 위해, 나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몇 달간 고민한 끝에, 발도르프 어린이집으로 전원을 결정했다.
육아에 있어서는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남편이 있었고,
새로운 곳에서 금방 적응해 주는 첫째 아이가 있어 가능한 결정이었다.
발도르프 어린이집을 보내며 바라건대,
학습을 미루고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이 기간이 아이에게 기쁜 휴식 같은 날들로 기억될 것이라 믿었고,
아이의 인생 첫 기억을 가져갈 이 시기가 행복하길 바랐다.
그 결과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처음 어린이집에 등원하던 날 아이에게 했던 말이 있다.
"여기는 노는 거 배우러 가는 곳이야. 언니, 오빠, 동생들이랑 열심히 놀고 와!"
나의 말대로 아이는 언니, 오빠, 동생들과도 함께 놀며 규칙을 배우고, 새로운 말도 배워온다.
매일 오는 키즈노트 사진도 없고, 아이 옷은 늘 진흙에 젖어서 오지만,
외출을 하더라도 영상 없이, 바깥 풍경과 사람과 눈을 맞출 줄 알고
직접 키운 감자의 맛과 여름의 오미자차 맛을 즐길 줄 알며
장난감이 없으면 장난감을 만들어낼 줄 아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
하루는 첫째가 예전 어린이집을 그대로 다니고 있는 둘째에게
"둘째랑 지금 어린이집 같이 다니고 싶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니 새 어린이집에 만족하는 듯하다.
(둘째는 아직 어려서 발도르프 어린이집에 입학을 못함)
그러나 만족도 잠시,
이사를 앞두고 또다시 어린이집, 유치원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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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일,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운 자기계발 중독 엄마작가
성인 ADHD여도 육아와 자기계발은 계속된다
작품 제안은 jennifer7113@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