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이드른 거, 뚱뚱한 거, 팥 드른 눔

by 세인트

지난봄 아내가 집 앞에 조그만 편의점을 냈다. 아내가 바쁠 땐 일을 거드는데, 한 번은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시며, 대뜸 "아스크림이 얼마여?" 하신다.

"네? 종류마다 다 다르죠., 찍어봐야 알아요." 했다.

"아 긍께, 찌이드른 거"하시며 검지 손가락을 세워 위아래로 흔드신다.

"네, 그러니까 찌이드른 거도 여러 가지라 이름을 알아야 해요."

"거 참 귀찮어 죽겄네, 형님! 그거 가지구 와봐유, 봐야 안디여!"

하며 다시 밖으로 나가시려는데 다른 할머니 한 분이 이미 그 찌이드른 비비빅을 맛나게 빨며 들어오신다.

가게가 좁아 밖에 둔 아이스크림 냉장고에서 꺼내 드시는 것.

"아이고, 어르신, 계산 찍고 드셔야지요."

해도 들으신 건지 못 들은 척하시는 건지 다른 말만 하신다.

"이 찌이드른 거 말고 밖에 있는 뚱뚱한 거슨 얼마여?"

"뚱뚱한 거요? 뭐지?"

"아, 있잖여, 팥 드른 눔"


우리 동네는 오래된 동네라 어르신들이 많이 사신다. 그분들의 주 휴식처는 편의점 옆 어린이 놀이터. 겨울철을 빼고는 일 년 내내 거기 모여 노신다. 인근에 경로당이 있어도 가지 않으신다. 놀이터 파고라에 앉아 노시면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하고, 노는 아이들 구경도 하고, 무엇보다 답답하지 않아 좋으시단다.


어르신 여럿이 모여 계시면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종종 군것질 거리를 사다 드린다. 평소 어르신들 간식을 자주 드리는 아저씨 아주머니도 그리 넉넉한 살림은 아니어 보인다. 이삿짐센터, 건물철거, 그리고 한 사람은 냉동트럭으로 육류를 납품한다. 그들 서넛이 우리 편의점에서 지난여름 내내 어르신들 아이스크림 사드린 것만 해도 제법 될 거다.


그들이, "어르신들 아이스크림 뭐로 드실래요?" 하면 내게 한 것과 똑같이 각자 주문하신단다.

"찌이드른 거", "뚱뚱한 거", "팥 드른 눔"이라고.

그래도 척척 다 알아듣고 사간다. 나는 아직 배울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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